오랜만에 이 기사를 찾아 읽었다. 형식적인 공모 기사를 굳이 다시 찾은 이유는, 맨 아래에 내가 적은 글 때문이다.
<씨네21>에서는 매 년 영화평론상 공모를 하면서, 그 전해에 등단한 평론가의 짧은 글을 아래에 붙인다. 거기에는 등단하고서 한 해를 막 넘긴 사람들의 솔직한 말들, 부끄러움과 참회와 쑥스러움과 자부심이 묻어나는 뜨끈뜨끈한 단어들이 빼곡했다. 그게 그렇게 멋있어 보이고 부러울 수가 없었다. 솔직히 개간지라고 생각했다. 얘들아 내가 1년 해보니 이 바닥 쉽지 않더라? 그래도 열심히 해라. 이런 느낌이랄까.
등단했을 때에도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기뻤지만, 저 지면에 마침내 글을 쓸 때에는 또 다른 결로 기뻤다. 전자가 방방 뛰어오르는 기쁨이라면, 후자는 잔잔하게 반짝거리면서 가슴을 가득 메우는 기쁨이었다. 그 충만감이 기억난다. 글을 달라는 청탁을 받고, 고민고민하며 한 글자씩 쓰다가 새벽을 지나 아침에서야 글을 보냈다.
막상 써보니 생각보다 스스로가 개간지로 느껴지지는 않았다. 오히려 부끄러웠다. 벌써 1년이나 지났구나 하는 이상야릇한 기분도 들었고, 한 것 없이 개떡 같은 글을 써대다가 선배들의 바통을 이어받아 이곳에 글을 남기는 게 창피했다. 하지만 지면을 이어받은 사람으로서 묘한 책무를 느꼈다. 그리고 당시 나의 생각과 기분을 최대한, 최대한 솔직하게 고백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또다시 시간이 흘러 등단한 지 몇 년이나 지나고 나서, 이 글을 볼 때마다 새삼 놀라고는 한다. 힘겹지만 열정에 차 있던 당시가 생각난다. 자평하기 부끄럽지만, 이 글은 뜨겁다. 그래서 읽을 때마다 전해지는 후끈한 열기에 몸을 싣고 2017년으로 돌아가고는 한다. 그 기분이 좋아 자꾸만 찾아 읽는다.
요즘에는 글을 쓰고 싶지 않다. 나아진 것 없는 문장을 확인하는 것이 괴롭다. 주저앉고 싶고, 일어나고 싶지 않다. 그래도 다시 써야겠다. 뜨거웠던 한 때에 남겼던 짧은 글을 찾아 잠시 마음을 기대 본다. 아래는 내가 말한 그 글.
제21회 영화평론상 우수상 당선자 홍수정
나는 늘 이 짧은 지면이 좋았다. 당선자들의 소회를 담은 글에서는 사람 내음이 풍겨왔다. 이제 내게도 기회가 찾아왔으나, 전하는 것은 부끄러운 고백뿐이다. 나는 줄곧 서툴렀고 힘이 부쳤다. 답을 구하면 질문을 얻었고, 무언가 구축하려고 시도하면 안에서부터 무너졌다. 1년은 내게 철저한 붕괴의 시간이다. 이제 당신의 등장으로 내게는 초입자라는 미약한 핑계마저 사라질 터이다. 그래서 나는 지금부터 더욱 격렬하게 부서질 생각이다. 그리고 1년 뒤 짐짓 모른 척 다시 이곳을 찾겠다. 그때 이 매력적인 지면에는 당신이 있을 것이다. 약속하건대 나는 지금과 다른 곳에서 이곳을 바라볼 것이고, 당신은 내게 매혹적인 이야기를 들려줄 것이다. 나는 쉴 새 없는 무너짐 속에서 답을 찾을 것이고, 우리의 순간을 기다리고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