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터만 보아도 이미 알 만한 사람들은 알 것이다. 고레에다 히로카즈가 다시 한번 유사가족 이야기를 들고 찾아왔다. 제각기 엉망진창인 그들은 한데 모여 다정한 가족이 되어간다.
그러나 기대만큼 '가족'의 의미를 깊이 탐색하지는 않는 것 같다. 그것은 이 영화를 풀어가는 작은 실마리 중 하나일 뿐이다. 오히려 영화는 '모성 혹은 부성'에 조심스럽게 접근한다. 그들이 어린아이를 두고 느끼는 마음은 무엇일까. 저것도 사랑인가. <브로커>는 그 질문에 대해 성급히 답을 내리지 않는다. 너무 무책임한 태도일까? 그런데 젠체하지 않는 그런 솔직한 태도가 오히려 맘에 든다.
영화의 연출은 생각보다 좋지 않다. 하지만 순간순간 놀라운 장면들이 있어 애정을 버리기 쉽지 않다.
이것만은 자신 있게 말할 수 있겠다.이 영화에서 가장 놀라운 것을 하나만 꼽자면, 그것은 송강호의 연기이다.
<브로커>에서 송강호의 연기는 말 그대로, 기가 막힌다. 처음에는 힘을 쭉 뺀 채로 연기하기 때문에 '뭐 별 거 없네?' 싶기도 하다. 그러나 자칫 집중력이 흩트려질 수 있는 장면마다 그는 귀신같이 관객의 이목을 가져와서 영화 안에 붙잡아둔다. 그러다 마지막, 결정적인 장면(이 장면이 뭔지는 이어지는 글에서 설명하겠음)에서 그의 일렁이는 눈을 보고 나면, 영화관을 나선 뒤 한참이 지나도록 잊히지가 않는 것이다. 방금 그건 뭐였지? 엄청난 것을 보았다는 직감.
<브로커>에서 송강호의 연기는 아주아주 섬세하게 연주되는 현악기의 선율 같다. 오열하거나, 악다구니를 쓰는 격렬한 연기 하나 없이도 시종 빛이 난다. 딱 맞는 곳에 딱 필요한 만큼만. 눈에 보이지도 않는 작고 작은 혈자리를 미세한 바늘로 정확하게 찌르는 느낌.
송강호의 최고의 연기를 볼 수 있는 작품 중 하나로 <밀양>이 있다. 여기서 전도연의 옆에서 적정거리를 오가며 섬세하게 연기의 톤을 조율하는 그의 모습은 마치 최고의 도자기를 빚는 도공의 모습 같다. <브로커>에서 송강호의 연기는 그에 필적할 만하다. 솔직히 송강호가 <브로커>로 칸에서 남우주연상을 탔다길래, 한류 열풍으로 한국 대표 배우에게 상을 준 건 아닐까 잠시 의심했다. 그런 경향이 없으리라는 보장은 없지만, 이 영화에서 송강호의 연기는 칸의 남우주연상을 몇 번이고 받을 법하다.
또 하나. 배두나의 연기는 송강호와 다른 결로 훌륭하다.
고레에다 히로카즈가 리얼리티를 추구하는 것과 별개로 그의 영화에는 늘 어딘가 판타지의 기운이 묻어난다. 현실에 없을 법한 이상한 가족이 뿜어내는 행복하고 동화적인 기운 때문일 것이다. <브로커>도 종종 그런 분위기가 풍기는데, 그게 과하다 싶을 때마다 영화에 현실감을 불어넣는 것이 배두나의 연기이다. 이 이상한 가족을 조용히 따라가며 자신의 본분을 고민하고 실천하는 형사를 연기하는 배우나의 모습은 연기의 새로운 지평을 연다. 오래 회자될, 되어야만 하는 연기인 것이다.
그러니 <브로커>를 보러 갈지 고민하는 사람에게 이렇게 말해주고 싶다. 송강호와 배두나의 연기를 스크린에서 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이 영화를 볼만한 이유는 충분하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