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영화평론가 홍수정
Jun 22. 2022
위험한 파도처럼, 현실감이 몰려올 때가 있다.
평소에는 모른다. 현실 감각을 한 편에 치워두기 때문에. 심장에 넣어두지 않고 배에서 약 1미터 정도 떨어진 거리에. 손이 닿지만 귀찮아서 굳이 뻗지 않을 곳에. 안심하면서 게을러질 수 있는 적절한 거리에 치워둔다.
그러다 한 번씩 그 현실감이 나를 향해 저벅저벅 다가와 내 몸안에 쑥 들어올 때가 있다. 그럴 땐 정신이 번쩍 든다. 혹은 잃어버린다. 지금 뭘 하고 있지. 잘 살고 있는걸까?
일상은 마약성 진통제 같다. 평생에 걸쳐 없어지지 않을 통증을 잊기 위해, 나는 이미 푸르게 멍든 팔목에 그것을 열심히 주사한다. 어쩔 수 없어서가 아니라 그러고 싶어서, 거기 적극적으로 매몰된다. 늦지 않게 약속장소에 가고, 만족할 만한 점심을 먹고, 시시껄렁한 농담에 성공하고. 그런 사소한 것에 집중하며 마치 그것이 인생의 전부인 것처럼 살고 싶어진다. 그것이 대단한 성공인 것처럼. 그런 것들만 있으면 살 수 있는 사람처럼.
하지만 어쩐지 정신이 또렷해지는 저녁이다. 반갑지 않은 손님, 피하고 싶은 각성.
이루지 못한 것들, 놓친 것들, 어떤 멋진 말로도 합리화하지 못할 실패의 조각들이 저 아래 검은 심연에서부터 수면 위로 하나 둘 두둥실 떠오른다.
잠시만 견디면 또 지나갈, 조용하고 아픈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