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영화평론가 홍수정 Jun 27. 2022

박찬욱 세계의 '사랑'에 관한 썰

박찬욱 세계의 사랑관에 대해 써보려고 합니다. 각 잡고 분석하는 것까지는 아니고, 평소 느껴왔던 점들에 대한 썰을 가볍게 풀어볼까 해요.


'사랑'을 떠올리며 느끼는 정서는 사람마다 모두 다를 것입니다. 누군가에게 사랑은 도톰한 이불을 덮어쓰듯 따듯하고 포근한 것이라면, 누군가에게는 야릇하고 자극적이며, 누군가에게는 씁쓸달콤하고, 누군가에게는 호수의 물처럼 잔잔하고 투명하겠지요. 그리고 박찬욱에게 사랑은 다분히 폭력적입니다.


영화 <박쥐> 스틸컷

그런 정서가 가장 잘 드러난 것이 박찬욱이 연출한 드라마 <리틀 드러머 걸>인데요, 여기에 나오는 남녀는 그야말로 뼈와 살이 으스러지는 고통을 함께 관통하며 사랑을 하죠. <박쥐>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그들은 사랑하지만 싸우고 때리며 고통에 몸부림치지요. <아가씨>에서 숙희의 사랑은 아가씨가 고통받았던 서재를 망가뜨리는 폭력으로 완성됩니다. 이것은 사랑하면 때려도 된다는 쓰레기 논리와는 다른 것입니다. 박찬욱이 이야기하는 러브스토리에는 늘 폭력이 따라붙어요. 그것을 극복하든, 이용하든 어쨌든 그의 영화에서 사랑과 폭력은 단짝처럼 늘 팔짱을 꼭 끼고 돌아다니죠.


홍상수의 사랑이 제게 '단정하게 앉은 채 서로를 마주 보는 두 연인'의 이미지라면, 박찬욱의 사랑은 '멍들고 상처 입은 채로 피를 철철 흘리면서도 서로를 꼭 껴안고 있는 두 연인'의 이미지입니다(봉준호의 사랑은 딱히 이미지로 떠오르지 않네요). 박찬욱의 연인들은 기어코 피를 보고야 말아요. 그러나 그 출혈은 신성한 것입니다. 아릿하고 쓰라리고, 하지만 달콤한 것이 박찬욱 식의 사랑이 아닐까 해요.

박찬욱은 초기에 <복수는 나의 것>, <올드보이> 같이 폭력에 집중한 작품을 거쳐 최근에는 <아가씨>, <헤어질 결심>처럼 사랑에 관한 작품을 많이 내고 있는데요, 제게는 이런 변화가 다분히 자연스러워 보입니다. 그에게 폭력과 사랑은 같은 기질을 나누어 가진 쌍둥이예요. 그러니 무엇이 어느 쪽으로 흘러가든 이상할 것이 없지요.


이 이야기를 길게 하는 이유는, 그의 신작 <헤어질 결심> 역시 이런 경향의 연장선 위에 있기 때문입니다. 이 작품에서 사랑은 폭력과 겹쳐 보여요. 다만 주목할 점이 있는데요, 이 영화에 이르러 폭력의 형상이 조금 달라졌습니다. 예전에는 날카롭고 잔혹했다면, 이제는 은근하고 아릿하게 변화했어요. <박쥐>의 인물들이 사랑을 위해 돌진하느라 뼈가 부러졌다면, <헤어질 결심>의 인물들은 내상을 입고 속으로 피를 흘립니다. 보다 농익고, 깊어지고, 암담해졌지요.


이보다 자세한 이야기를 더 하고 싶은데, 아직은 개봉 전이라 여기까지만 말할게요. 밀당은 작가의 필수 덕목이죠. '사실은 아직 정리가 안돼서 엠바고 지키는 척 말 못 하는 거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든다면, 맞습니다. 다만 이 말은 꼭 하고 싶어요. 여러분이 <헤어질 결심>을 보게 된다면 앞서 말한 부분에 주목해주시길 바랍니다. 박찬욱 세계에서 '사랑'의 정서가 어떻게 달라졌는지. 어떻게 변화했고, 얼마나 성숙했는지. <올드보이>에서 오대수와 미도를 그리던 사람이 맞나 싶을 정도로 그의 세계는 또 한 번 꿈틀대며 변화했습니다. 그 정서를 느끼는 것만으로도 충만한 영화적 체험이 되지 않을까 싶네요.





 

매거진의 이전글 <헤어질 결심> 첫인상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