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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화평론가 홍수정 Jul 17. 2022

[이대로 보낼 수 없어] <헤어질 결심> 편.

※ 스포 있어요


<헤어질 결심>에 대해서는 씨네리에 비평을 쓰면서 한번 쏟아낸 상태라 딱히 할 말은 없다. 그래도 이대로 보내기는 아쉬워서 뇌절 한번 해보자는 뻔뻔한 심정으로 쓴 포스팅. 데 있잖아,


1. 탕웨이는 왜 파란 니트만 걸쳐도 이쁜가

이 영화의 가장 큰 서스펜스는 살인이 아니라 탕웨이의 미모다. 솔직히 살인사건이랑 탕웨이 얼굴 중에 뭐가 더 흥미진진함? 저 푸르딩딩한 니트를 입고서도 얼굴에서 빛이 나는 걸 보고, 역시 탕웨이는 탕웨이인가 싶었다.


박찬욱은 김옥빈, 김민희, 강혜정 이렇게 어두운 계열의 팜므파탈을 카메라에 담을 때 재능이 폭발함. 탕웨이도 <색, 계>, <만추>처럼 분위기로 조지는 영화를 잘 소화하는 걸 보면서 박찬욱이랑 어울리겠다 싶었는데 찰떡이었고. 아래 마리끌레르 화보를 보면서 이 정도로 어두운 컨셉까지 소화한다고? 싶어서 진심 놀랐다.


2. 박해일은 참 멋있게 나이들었어

내게 박해일은 늘 <연애의 목적>에서의 그 능글맞고 음흉한 남자 혹은 <살인의 추억>에서의 우유 향기 나는 변태의 이미지가 강했다. 단정한 생김새와 달리 껄렁하고 치기 어리고, 폭력적이면서 변태적인. 딘지 모르게 위험한 남자.

 

그런데 이번 <헤어질 결심>을 보면서 박해일이라는 배우가 진짜 멋있게 나이 들었다는 생각이 들더라고. 가끔 영화를 보다가 "저건 연기가 아니라 찐이다. 내가 저 배우의 진짜 모습을 엿보고 있다"는 느낌이 확 들 때가 있는데 <헤어질 결심>의 해준이 그랬음.


저 꼿꼿하고 품위 있는 모습이 박해일의 몸에서 우러나오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더라고. 예전의 풋풋했던 박해일이 이렇게 멋지게 나이 들었다는 게 감동이더라. 나는 아래에 이 스틸컷들 볼 때마다 와...

 

그래도 박해일의 대사 중에 좋았던 건 역시 "서래 씨는 몸이 참 꼿꼿해요"였다. 박해일은 이 대사를 진짜 잘 소화하는데, 특히 '꼿꼿해요오'라고 말할 때 독특한 표정과 뉘앙스가 일품임. 순간적으로 예전의 똘끼가 느껴져서 좋았음.


왜 모두들 그런 때 있지 않아? 좋아하는 사람 앞에서 서투르게 진심을 얘기하다보면, 헛소리도 하게 되고 목에서 삑사리도 나고. 자기 딴에는 진심인데 남들 볼 때는 좀 부담스럽고 요상하잖아. 딱 그런 순간을 표현한 거 같아서 와닿더라고.  


3. 이정현, 박정민은 연기를 진짜 잘하는구나

이번에 새삼 느낀 게 이정현은 연기를 정말 잘한다는 것.

이 영화에서 이정현의 남편의 욕망을 통제하는 단단한 캐릭터를 맡았다. 이 캐릭터는 '아내'라기 보다 차라리 해준(박해일)과 서래(탕웨이)가 절에서 본 '사천왕'과 비슷하다고 볼 수 있다. 제자리에 단단히 지키고 서서 율법을 수호하는 수호신. 이때 그녀는 수호하는 것은 가정의 율법이다. 남편 몸에서 담배 냄새가 나자 예민하게 킁킁거리고, "그 음탕(?)한 생각을 뿌리 뽑아야 한다"며 동동거리는데, 이 장면은 그녀의 역할이 무엇인지를 단번에 보여준다.


그러니까 이 영화에서 이정현의 역할은 생각보다 매우 중요하다. 서래와 대비를 이루기도 하고.

이정현은 단정하고, 엄격하고, 은근히 귀여운 이 캐릭터의 매력을 확실히 살려낸다. 특히 저 킁킁거리는 연기할 때 경찰견 같기도 하고 좋았음.


짧지만 강한 인상을 남긴 것은 박정민도 마찬가지인데, 순정 있는 쓰레기의 모습을 제대로 보여줬다. 특히 "여자들은 그런 쓰레기랑.. 왜 자요?" 할 때 그 날카롭고 서글픈 표정과 말투가 오래 기억에 남는다.


4. 박찬욱의 개그

박찬욱의 개그감은 <3인조> 때부터 악명이 높은데, 그가 "가불은 불가"라는 대사를 쓰고 30분을 흐뭇하게 웃었다는 일화만 봐도 그의 개그감이 어떤 짐작할 수 있을 것.

요즘은 '박찬욱 특유의 유머 감각'이라고 표현하더라고. 아니 왜들 그래. 그냥 아재 개그잖아ㅋㅋㅋ 여러분 거장이 되면 아재 개그를 해도 남들이 특유의 유머라고 올려쳐줍니다! 나는 박찬욱을 사랑하는데 영화에서 요상한 개그를 시도할 때마다 애정전선이 흔들리면서 빡이 침.


<헤어질 결심>에서 박찬욱은 또 예전 버릇을 못 버리고 개그를 쳐대는데, 기억들 하실래나 모르겠음. 서래가 두 번째 남편 임호신(박용우)과 통화할 때 임호신이 "우리 사이 문제없는 거지?" 하니까 서래가 "사이는 됐고 이사나 가자"라고 하더라고. '사이'는 됐고 '이사'나 가자... 내가 <3인조>에서 김민종이 박찬욱표 개그를 시전 할 때도 맘이 애잔했는데, 이제는 탕웨이까지 동원해서 저런 개그를 시도하는 걸 보고 할 말을 잃었. 박찬욱은 탕웨이가 저 말을 할 때 속으로 매우 흐뭇해 했을 것이 틀림없음. 저 개그 치겠다고 "우리 사이 문제없는 거지?" 이러면서 빌드업하는 게 특히 킹받는 부분임.


또 그거도 있었어. 임호신이 자기가 '애널리스트'라고 소개하면서, 뭐 항문이 아니고 분석가라고 하던가? ... 그러니까 이런 개그들이 범람하는데도 내가 <헤어질 결심>을 물고 빠는 걸 보면 나의 애정도 바다에 뛰어드는 서래 못지않다고 생각함. 그런데 이게 은근 중독성이 있어서 앞으로 박찬욱 영화에 저 특유의 개그가 없으면 좀 아쉬울 거 같기도 하고. 이게 바로 피학적인 즐거움 뭐 그런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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