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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화평론가 홍수정 Oct 23. 2022

쉽게 쓰는 것은 쉽지가 않다

글을 최대한 쉽게 쓰려고 노력한다. 

평론가로서는 글의 난이도는 불문하고 내용에만 집중해도 상관없겠지만. 대중이 보는, 더 많이 보았으면 하는 지면과 플랫폼에 글을 쓰는 필진으로서 그런 태도는 적절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모든 필진들이 그래야 한다고 말할 생각은 없다. 내가 스스로에게 기대하는 태도일 따름이다.   


근데 이게 말처럼 쉽지가 않다. 

어렵게 쓰는 게 더 편하기 때문이다. 특히 비평의 경우 이미 내가 배우고 익힌 비평의 문법과 언어가 있다. 이건 일반 독자들에게 어렵게 느껴질 것이다. 하지만 이미 거기 익숙한 나는 그 언어들을 정제하지 않고 그대로 구사하는 것이 훨씬 편한 일이다. 


"명징하게 직조하는" 같은 표현만 봐도, 처음에 뭐가 문제인가 생각했다. 비평계에서 흔하게 쓰는 용어니까. 평론계 특유의 쪼가 있다. 자주 쓰는 용어도 있고, 잘 쓰는 문장의 구성도 있다. 다른 분야와 비교해 복문과 장문도 많이 쓰이는 편이다. 나 역시 그런 영향에서 자유롭지 않다. 생각나는 대로 쓰면 내 글은 복잡하고 어렵다.


그러다 보니 쉽게 쓰기 위해서 시간과 노력이 소모된다.

글을 마치고 나서는 몇 번씩 퇴고한다. 내 뜻을 전달하는 선에서 최대한 쉬운 표현을 쓴 게 맞나? 치환 가능한 다른 용어는 없나. 문장을 더 짧게 자를까? 그러면 멋이 없어지지 않나. 바꾸고 변형하고 깎아내는 과정을 반복한다. 


어려운 단어를 쉬운 단어로 교체하는 게 녹록지는 않다.  

어려운 말은 제 나름대로 쓰임이 있다. 그 단어 만의 맛과 멋과 맥락이 있다. 대체로 어려운 말들은 더 예리하고 전문적이다. 쉬운 표현을 쓴다는 것은, 이런 점들을 포기하고 그보다 넓고 뭉툭하며 친근한 용어로 가는 과정이다. 그래서 때때로 괴롭다. 조금 과장하자면 살을 깎아내는 기분.


'씨네21'에 <헤어질 결심>에 관한 비평을 쓰며 이런 표현을 쓴 적이 있다. 


" 언어뿐 아니다. 그들의 행동의 기저에는 늘 뭉근한 애정이 흐른다. 초밥. 치약. 깃털. 잠복 수사. “굿모닝”. 재떨이. 핸드크림. 어둡게 찍힌 사진. 그 행동의 표면은 건조한 일상으로 포장돼 있으나, 한 꺼풀 아래에는 파도처럼 일렁이는 애정이 흐른다. (https://brunch.co.kr/@comeandplay/732) "


마지막 부분에서 나는 '흐른다'는 표현을 썼다. 파도처럼 일렁이는 애정이 흐른다. 실은 '회류한다'고 쓰고 싶었다. 마치 마을을 감싸고도는 하천의 물줄기처럼, 그들의 행동 사이사이를 애정의 물줄기가 천천히 감싸고돌며 유유히 흐른다고 표현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회류한다'고 쓴다 해서 이런 뜻이 전달될지 의문이었다. 낯선 한자어라서, 제 뜻을 전달하기도 전에 스쳐 지나쳐질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보다 명료한 '흐른다'는 표현을 선택했다. 그러나 '감아 돈다'는 뉘앙스를 전하지 못한 게 아직도 아쉽다. 기억에 남을 정도로. 게다가 두 번째 문장에서 이미 '흐른다'는 표현을 한 번 썼기 때문에, 같은 동사를 연달아 쓴 셈이다. 여러모로 아쉬움이 남지만, 나의 선택이 맞았다고 느낀다. 이건 하나의 사례일 뿐이다. 단어, 표현, 문장, 문단, 소재까지. 내가 쓴 것들은 계속 고쳐지고 버려진다. 


그러니 내 입장에서 쉽게 쓰는 일은 이것은 일종의 노력이고 희생이다. 

남을 향한 희생은 아니고, 내가 나에게 하는 희생. 평론가 자아가 필진 자아에게 자리를 내어주는 과정이고, 그 과정에서 나는 늘 얼마간 미안함을 느낀다. 그래서 조용히 참고 있는 내 안의 누군가의 눈치를 보고는 한다. 쉽게 쓰려하면 익숙하고 상투적인 용어가 튀어나오기도 하고, 글이 유치해 보이기도 한다. 그래서 때로는 민망함과 부끄러움도 무릅써야 한다. 

하지만 이게 나의 방식. 



그런데 또 하나 강조하고 싶은 것은, 이것은 선택일 뿐 맞고 틀린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요즘은 쉽게 쓰는 게 '맞다'는 생각이 너무 많이 퍼져서 다소 위험하다고 느낀다. 알고 있다. 쉽고 직관적인 글이 대세지. 그건 현학적이고 어려운 글을 숭상했던 시기에 대한 반작용이기도 하다. 


그러나 '글을 쉽게 쓸지 어렵게 쓸지'와 관련해, 옳고 그런 것은 없다. 

비평도 한때 이해하기 힘들 정도로 어려운 글이 더 큰 존경을 받기도 했다. 지금은 쉬운 글의 시대가 왔을 따름. 그런데 어려운 글, 양보 없는 글에 비난이 가해질 때에는 안타깝다. 쉬운 게 절대적인 가치라면 세상에 어려운 단어들은 모두 사라져야 할 것이다. 그러나 모든 단어들은 저마다의 가치와 역할이 있다. 또 독자를 배우게 하고 도전하게 만드는 어려운 글도 있어야 한다. 애초에 쉽고/어렵다는 기준조차 상대적인 것. 


그러니 쉽게 쓰는 것은 의무가 아니라 선택. 나는 그것을 택했다. 더 많은 독자와 만나기 위해. 쉽고 깊은 글을 쓰고 싶다.

그런데 참 쉽게 쓰는 일은 쉽지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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