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린 사람이 그렇듯, 대책 없이 맑은 사람이 그렇듯 나는 해가 바뀜을 조금 늦게 받아들인다.
머리로는 알겠는데 느끼지를 못하겠다. 그러니까 나는 지금이 아직도 2022년의 끝무렵 같다. 2022년이 못 잊을 해여서도 아니고, 2023년이 오는 게 두렵기 때문도 아니다. 그냥 같이 있었던, 그래서 내일도 그 자리에 똑같이 있을 것 같았던 지인이 이제 영영 떠난다기에, 문 앞에서 괜히 허튼소리를 하며 이별을 지연시켜보는 무색한 몸짓 같은 것이다. 이미 벌어진 이별이지만 짐짓 모른 체 너스레를 떨며 아쉬움을 달래 본다.
그래서 새해를 두 손 뻗어 반기지 않았다. 거창한 소망을 빌지도 않았다. 나라는 인간은 해가 바뀌었다고 덩달아 바뀌지 않는다는 점을 굳이 다시 확인하고 싶지 않다. 그래서 가장 간단한 소망을 빌고, 그것이 깨지자 내심 반가웠다. 이쁘긴 하지만 둘 곳 없었던 접시가 와장창 깨졌을 때의 희열 같은 것이 있다.
하지만 소망을 비는 모습만큼은 왜 그리도 아름다운지 모르겠다. 깜깜한 밤에, 추운 밤에, 입김을 후 뱉으며 손을 가지런히 모으고 새로운 무언가를 염원하는 그 모습들은 어여쁘다. 이쁜 것을 넘어 신성하게 보이는 것이다. 조용히 기도하는 사람들의 낯빛에는 인간적인 다짐을 넘어선 초월적인 기운이 살랑거린다. 그건 무수한 사람들이 함께 자신의 운명을 생각하는 새해의 조용한 새벽에 잠시 우리 곁에 머물렀다가 이내 사라진다.
소망. 다짐. 기도. 까만 밤을 향하는 눈과 꼭 모아진 두 손. 그것은 신의 존재를 믿는지, 그것을 들어주고 실현해 줄 누군가가 있다고 믿는지와 무관한 운동이다. 기적이 있다 해도, 나의 중얼거림만으로 인생을 바꿔줄 리 만무하다. 하지만 그 몸짓들은 반짝여서 잊기 힘들다. 이뤄지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알기에 애틋하고, 그래도 마음 다해 바라보는 것이기에 순수하다. 운명을 향해 던져진 그 나직한 기도들이 언젠가 삶의 가장 아름다운 순간에 닿을 것이라고 믿는다.
새해를 맞는 밤. 울리는 종소리. 새로이 다가올 것들을 위해 기도하는 사람들. 우리가 눈에 보이지 않는 무언가를 이다지도 정성스럽게 바라고, 온 몸으로 맞이하는 시간이 또 있을까. 새해의 밤, 조용히 이뤄지는 무신론자의 기도는 성스럽다. 올해는 매일 아침을 그렇게 맞이하고 싶다. 오늘이 올 해의 첫날인 것처럼. 아직은 무언지 모를 새로운 것을 기다리는 가장 깨끗한 마음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