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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평론가 홍수정
Apr 03. 2021
어린 홍수정은 인생의 출발점이 20살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본의 아니게 재수를 하게 됐으니까, 그럼 21살. 그맘때 쯤부터는 내가 원하는 목적지를 향해, 매일 고속도로를 질주할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미처 몰랐지. 출발선을 찾는 시간이 이렇게 길어질 줄은. 20살은커녕 30살이 넘어도 목적지가 어디일지 고민하게 될 줄은 말이다. 산책길이라 생각하고 슬리퍼 하나 신고 나왔는데, 반지원정대의 원정에 비견할 대장정이었다.
생각해보면 뜨거운 한낮에 늘어진 엿가락처럼 길고 느린 사춘기를 지난 것 같다. 10대에는 공부만 하면 저절로 행복해질 줄 알아서 얌전히 공부를 했고, 20대에는 그게 아닌 걸 뒤늦게 깨닫고 파도치듯 겪하게는 아니지만 잔물결 치듯 잔잔한 방황을 했고, 30대에는 꿈과 현실을 접합하는 법을 어렴풋이 알게 되어 무언가 해보려고 버둥거리기 시작했다.
삶이 직선길이라는 점을 의심해 본 적 없다. 그래서 달리는 속도에 따라 결과가 달라질 따름이라고 생각했다. 아마도 누군가는 그런 삶을 살았을 것이다. 다만 내가 지나온 시간은 허튼 곳들을 들르는 길고 긴 경유의 나날이었다. 원하는 목적지를 찾아 휘청대고, 갔던 길을 돌아오는데 많은 시간을 소요하는. 진정으로 원하는 것을 탐색하는 내 성장기는 지독히도 길었고, 그 사실을 받아들이기까지 다시 얼마간의 시간이 걸렸다.
목적지를 썼다 지웠다, 출발선에 섰다 물러섰다. 그러는데 꽤나 많은 연료를 쓴 것도 같다. 내게 남은 연료가 얼마나 될지를 생각하는 요즘이다. 문득 그런 생각이 스친다. 이제는 우물거릴 시간이 없네.
36살의 봄. 비 오는 토요일.
미루고 미루던 과제를 앞둔 새벽 같은 기분이 드는 오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