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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화평론가 홍수정 Jan 21. 2023

오늘의 일기_조용한, 비평, 김승락, 물랑루즈!

2023년 1월 21일

#1

요즘은 조용한 것들이 좋다.

조용한 공간. 조용한 음악. 조용한 생각.


특히 조용한 사람이 좋다.

상대를 티 나지 않게 배려하고, 그것에 대해 말하지 않는.

그런 밀도 높은 침묵은 사람을 사로잡는다. 그리고 여운도 길어서 며칠이 지나도 문득 생각으로 떠오른다. 네가 보여준 배려가 옷에 밴 향수처럼 아직도 내 남아있다고 말하고 싶어 진다. 하지만 쑥스러워서 하지 않을 것이다. '사람의 향기'라는 촌스러운 표현을 감당할 수 있는 사람은, 아마도 그런 사람일 것이다.



#2

<3000년의 기다림>에 대한 비평을 써서 씨네리에 보냈다.

별 이유 없이 그 영화가 좋았고, 특히나 한 장면이 좋았고. 그에 대한 글을 앞에 두고 곰곰이 생각하다 어떤 깨달음을 만났을 때 잠시 무너졌다. 이 영화는 내게 불가역적인 변화를 일으켰다. 글을 쓰고 난 뒤 (아마 잠시 동안이겠지만) 감정의 상태가 변했음을 느낀다.


그래서 그런가.

이번 글은 왜 이다지도 떠나보내기 힘든지 모르겠다.

마감이 끝난 지 며칠이 지났지만 매일 틈틈이 다시 열어본다. 부족해서 속상하기도 하고, 예상외로 좋은 부분 때문에 뿌듯하기도 하다. 그래도 일단 솔직하게 썼고, 진심을 다했으니 그걸로 됐다고 생각한다.

마음을 미처 다 표현하지 못한 남자친구처럼 보내질 못하겠다. 한동안 끌어안고 살 것이다.



#3

영화 잡지사들은 내가 스스로에게 느슨해질 즈음에 날 불러서 인터뷰, 대담을 핑계로 사진을 찍어준다. 그리고 인터넷에 올려 송구스러운 마음을 갖게 한다. 내가 뭘 크게 잘못했는지 모르겠지만 겸손의 마음을 잊지 않게 해 주어 늘 감사할 따름이다.


농담이고 웹진 <한국영화>에서 진행한 대담에 관한 기사를 홈페이지에 올린 후, 영화 <영웅> 생각이 나서 인터넷에서 넘버들을 다시 찾아들었다.

다시 들어도 김승락 배우의 노래는 일품이다.

뭐랄까 정성화 배우야 노래 잘하는 것을 원체 알고 있었지만 김승락 배우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한국계 일본 배우이고 이미 일본 뮤지컬계에서 유명한 분이라고.


<영웅>에서 이토 히로부미의 역을 맡아 강한 카리스마를 뿜어낸다.  인물의 가치관에 대해 동의할 수 없는 것은 말할 필요가 없겠으나, 그것을 제쳐두고 배우의 노래와 연기만을 보았을 때 압도된다. 영화사에 매력적인 빌런은 많지만, 이것은 실존 인물이며 우리와 직접적인 연관이 있는 인물이다 보니 싱숭생숭하다. 노래를 들을 때마다 감탄하고, 그런 스스로에게 놀라고 '아냐 예술일 뿐이니까'라고 다독이며 매국노가 된 듯한 기분이 든다. 이것이야말로 길티 플레져인가?

유튜브를 찾아보니 비슷한 증상을 호소하는 이들이 많구나.. 참, 배우의 능력이란.




#4

뮤지컬 <물랑루즈!>를 봤다.

뮤지컬은 처음 봤는데 역시나 외쿡에서 물 건너온 작품은 소화하기가 어렵다고 느꼈다. 정신 나간 듯 절제 없이 화려한 의상, 안무가 특징인 만큼 기본적으로 피지컬도 받쳐줘야 하고, 이 작품의 화려함을 누를 수 있을 정도의 찐 광기가 필요하다고 느꼈다.


진짜와 가짜. 아주 작은, 눈에 보이지 않는 차이인데도 관객은 그 미세한 간극을 느낀다. 예술의 신기함이자 무서움.


이충주 배우는 잘 모르는 상태에서 봤는데 노래를 정말 잘한다. 목소리도 청량하고 노래의 완결성이 높다. 아이비 언니는 대체로 잘하지만 성량의 크고 작은 부분들을 좀 더 매끈하게 컨트롤한다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이런 불만을 까먹게 만들 정도로 이뻐서 절로 박수가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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