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영화평론가 홍수정
Feb 01. 2023
얼마나 멀리 왔는지를 생각한다.
되고 싶은 나로부터 얼마나 멀리 왔는지를.
나는 늘 무언가가 되기보다 어떤 사람이 되고 싶었다. 무슨 직업을 갖고, 무슨 상을 타기보다는 멋진 사람, 잘하는 사람이 되고 싶어. 뭘 하느냐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그걸 하는 내 모습이 멋있는지, 완벽하게 해내는지가 중요하다. 이건 꽤 까다로운 주문이다. 멋짐과 완벽에는 끝이 없으니.
그래서 한 번씩 가슴으로부터 온몸으로 뜨거운 게 번진다. 나는 따가움에 맨살을 벅벅 문지른다. 나는 부족하고, 내가 쓴 비평도 부족하고, 내가 쓴 기사도 부족하고, 내가 하는 말도 부족하고. 왜 나의 온몸에는 모자람이 덕지덕지 묻어있을까. 가릴 수가 없어 창피하다.
이런 통증이 처음은 아니다. 그래서 대충 낫게 하는 법을 알고 있다. 스스로의 자존을 세우고. 괜찮다고 다독이고.
그런데 오늘은 이상하게 그러고 싶지가 않다. 같잖은 위로를 투약하고 싶지 않다. 그러면 내일 다시 멍청하고 게을러져서 이 고민을 잊을 것만 같다. 아픈 것을 알지만 낫고 싶지 않다. 지금 이 자리에서 통증에 휩싸인 채로 활활 타다 녹아버리고 싶다. 왜 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마도 내가 내게 하는 화풀이인가 보다.
예전에 누군가가 그런 말을 했다. 밝고 발랄한 글을 쓰라고. 그런 면도 내게 있으니.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내가 오늘 느끼는 감정을 고백하는 것이 글을 쓰는 사람의 의무라고 느낀다. 창피하더라도 나는 이런 사람이니까. 이 글을 남기고 영영 사라질 것처럼 감정을 투명하게 고백하는 것이 숙명이라 느낀다. 그리고 가끔씩 생각한다. 힐링과 치유의 글이 넘쳐나는 요즘, 굳이 이 공간에 찾아와 한 번씩 지랄 나듯 우울과 아픔을 고백하는 글을 읽어주는 이는 누구일까. 나 만큼이나 마음 한구석에 통증을 담아본 적 있는 사람일까. 이렇게 날카로운 말도 받아낼 수 있을 만큼 내면이 포근한 사람일까. 혹은 양쪽을 오가는 사람일까 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