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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화평론가 홍수정 Jan 16. 2023

당신과 나의 고독이 하나가 되길 원해요

<3000년의 기다림> 속 그 대사

<3000년의 기다림> 스틸컷


<3000년의 기다림>. 이 영화는 조금 위험한 거 같다. 특히 기분이 이렇게 말랑말랑한 날에 보면. 이렇게나 춥고 추적추적한 겨울날에 작은 영화관에서 보면. 집에 와서 멍하니 앉아 있다. 기운이 없어. 커다란 바람이 몸통을 때리고 지나가듯, 영화가 나를 세게 관통하고 지나간 것 같다.


이 영화 꼭 보세요, 여러분. 너무 좋아요.

아니야, 보지마세요. 그냥 나 혼자 좋은 것 같아요.

아냐 꼭 봐, 아냐 보지마...

 

알려졌다시피 이건 어느 이야기 수집가가 정령 '지니'를 만나 천일야화를 듣는 이야기다. 영화가 진행되는 중에 어느 사랑 고백의 타이밍에 저 대사가 나온다.

당신과 나의 고독이 하나가 되길 원해요.

이 문장이 머리를 한 대 치듯이 다가왔다.


그렇구나. 사랑은 둘의 고독이 사라져 0이 되는 것인줄 알았는데. 하나가 되는 것이었구나.

나는 그런 태도로 사랑을 대했는지 모르겠다. 우리 사이에 남아있는 고독의 조각을 볼 때마다 불안했던 것 같다. 사실은 그걸 공유할 사람이 있다는 것조차 축복일 수 있는데. 내가 누군가의 고독안으로 들어간 적 있나 생각해본다. 모르겠다.


이 대사는 결국 하나의 장면으로 돌아와 스크린을 아름답게 물들인다. 처음 볼 때 명장면이라 생각한 장면은 따로 있었는데, 다시보니 이 영화에서 가장 아름다운 장면은 바로 그 장면인 것 같다. 두 사람의 고독이 하나가 되는 순간.

<매드맥스>, <꼬마 돼지 베이브>를 연출했던 조지 밀러가 이런 놀라움을 안기다니. 노령의 감독도 전작만으로 평가할 수는 없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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