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은 자신을 비추는 거울'이라는 말은 보통 아름다운 맥락에서 통용되는 것 같다.
하지만 나는 저 말을 한 사람에게 "그래서 문제다 이 사람아"라고 말해주고 싶다. 잘 세팅된 이쁜 내 모습을 거울이 비추는 것이야 문제가 없지만, 아직 마음의 준비도 되지 않은 야생의 얼굴에다 거울을 들이대는 것은 여간 곤란한 일이 아니다. 그런데 내 글을 다시 보는 과정에서 이런 민망함과 괴로움은 심심찮게 우리를 찾아오고는 한다.
자기가 쓴 글을 읽는 일은 누구에게나 힘이 든다. 물론 '내가 쓴 이 글을 너무 사랑해' 라고 말하는 경우도 있겠지만, 그런 글조차 한결같은 사랑을 받기는 힘들다. 자신의 글을 보는 일은 글쓰기의 실력을 불문하고 부끄러움과 오금저림을 수반하는 고행의 과정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의 글을 마주하는 일은 중요하다. 이 과정을 보통은 '퇴고'라고 한다. 글이 완성되기 전에 끊임없이 그것을 마주하며 수정하는 일. 하지만 나는 좀 다른 시기에서의 퇴고를 강조하고 싶다.
글을 모두 송고하고 난 뒤, 그러니까 블로그나, SNS나, 지면이나, 어디에든 그것을 보내고 내 손을 완전히 떠난 글을 다시 한번 마주하는 일은 중요하다. 그때가 되면 글이 다르게 보이기 때문이다. 이전에는 몰랐던 일이다. 아니, 어슴프레 알았지만 부끄러워 시도하지 않았다. 그저 지면에 실린 내 글을 확인하는 수준이 아니라, 정말로 그것을 다시 쓰겠다는 마음가짐으로 찬찬히 읽는 일 말이다.
얼마 전에 <씨네21>에 보냈던 '3000년의 기다림'에 대한 비평(https://brunch.co.kr/@comeandplay/838)을 다시 꺼내 읽었다. 이 글을 송고하기 전에 못한 2%의 퇴고를 마저 채우겠다는 생각이었다. 그런데 각을 잡고 자리에 앉아 찬찬히 그것을 읽으며 흥미로운 경험을 했다. 글을 쓸 당시에 보이지 않았던 부분들이 보였고, 어떤 점을 보완할지가 투명하게 눈에 들어왔다. 마치 다른 사람의 글을 감수하듯. 내 손을 떠난지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났을 때, 다른 시각으로 그것을 보게 됐다. 마치 아주 오랜만에 만난 친척이 새롭게 느껴지듯. 내 글이되 내 글이 아닌 것 같은 그런 상태.
사실 글쓰기의 가장 큰 배움은 스스로에게서 온다. 거기까지 닿는 부끄러움과 괴로움, 마치 화장하지 않고 머리를 모두 쓸어올린 상태에서 정면에서 찍은 셀카 사진을 보는 듯한 그 고통을 참을 수만 있다면, 자기 자신이야말로 가장 혹독한 스승이 아닐까.
나는 앞으로도 종종 오래전에 품을 떠난 글들을 불러와, 찬찬히 읽으며 다시 한번 퇴고하는 과정을 거치기로 했다. 그리고 이것을 '늦은 퇴고'라고 부를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