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영화평론가 홍수정
Mar 02. 2023
올해 들어 나를 천천히 옥죄다 결국 탈진 상태에 빠트린 고민은, 내가 글을 못 쓴다는 것이다. 개발괴발 못쓰진 않지만 원하는 만큼 충분히 잘 쓰지 못한다는 것. 어째서 이 모양일까. 저 모양이었으면 좋겠는데.
작고 고약한 생각은 인생 전체에 대한 성찰로 번졌다. 나는 과연 과거의 패기 있던 내가 예상하고 기대한 대로 살고 있나. 그때의 내가 지금의 나를 본다면, 과연 만족할까 아니면 화를 낼까. 누구도 답해 줄 수 없는 질문에 답답증이 올라왔다.
예전에는 원하는 삶이 시험 너머에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시험을 통과하기 위해 열심히 했고. 그게 내가 만족스러운 삶을 사는 조건이라고 믿었으니까. 모든 시험을 마친 지금 나는 외려 길을 잃은 기분이다. 더 이상 칠 시험이 남아 있지 않은데도 삶이 만족스럽지 않다면, 이제는 무얼 해야 할까.
글을 대하는 나의 태도도 비슷했다. 어떤 글을 쓰고 싶은지는 모르겠지만, 지금보다는 잘 썼으면 좋겠어. 거기에 이르는 방법이 하나뿐임을 알고 있다. 무수히 읽고 쓰는 것. 하지만 (자기개발서들의 거짓말과 다르게) 필력은 도통 쉽게 늘지 않고, 나는 꿈쩍 않는 일상에 질식할 것만 같다. 충동적으로 휴식을 가진 데는 이런 이유가 있었다.
그래서 한 동안 아무것도 안 하기로 결심했다. 일, 글, 운동, 생산적인 시간을 보내야 한다는 강박이 있었지만 잠시 동안은 아무것도 안 하기로. 공백과 적막 가운데 답이 날아들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냥 머리를 이리저리 돌리며 세상을 구경했다.
그렇게 한산한 시간을 보내는 중에 의외의 생각이 나를 찾아왔다. 그건 '고민해도 괜찮다'는 것이다. 고민의 무게만큼이나 괴로운 것은 내가 그것을 홀로 지고 있다는 느낌이었는데, 눈을 돌려보니 잘 살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이들 중에 상당수가 자신만의 고민을 (허세가 아니라 진심으로) 이고지고 있음을 느꼈다. 이런 게 삶이라는 생각이 떨리는 마음을 진정시킨다. 깜깜한 고민의 방, 나는 여전히 문을 여는 열쇠를 찾지 못했으나 새로운 빛이 비치는 창문을 하나 열었다.
앞으로 내가 좋은 선택을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후회 없는 결정을 내릴 수 있을지도. 그러나 이 고민이 끝나면 나는 아마도 이전과 다른 곳에 있겠지. 어쩌면 우리는 스스로를 다 자란 어른이라고 여겨서 인생의 성장통을 통증으로만 받아들이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인생의 몸통이 자라는 과정에서는 때때로 아픔이 찾아온다는 것, 그런 생각이, 아니 믿음이 오늘을 견디게 한다. 내가 또 망쳐버릴지도 모른다. 지금보다 더 엉망진창이 될지도. 하지만 이 괴롭고 지겨운 시간은 언젠가는 끝이 날 것이고, 그 시간의 끝에서 나는 반드시 나만의 답을 찾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