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영화평론가 홍수정
Mar 06. 2023
내 오른쪽 눈썹은 조금 특이하게 생겼다. 앞머리에서부터 숱이 빽빽하다가 눈썹산을 지나는 부분에 새끼손톱만 한 크기로 마치 머리에 난 땜빵처럼 갑자기 숱이 없는 민둥 한 부분이 나왔다가, 꼬리 부분부터는 다시 숱이 풍성하다. 나는 책을 읽을 때 습관처럼 눈썹 사이의 땜빵을 만지작거린다. 종종 '왜 여기만 숱이 없을까' 생각하지만, 실은 손을 갖다 대기 위한 핑계일 따름이다. 맨들맨들한 감촉이 손끝에 익어 자꾸만 만지작거리는 것이다.
책상에는 노트북을 중심으로 양쪽에 책들이 산처럼, 벽처럼 쌓여있다. 몇 년을 둬도 허물어지지 않는 통곡의 벽이다. 무너지기는커녕 점점 더 공고해지고 있다. 이 책들은 내가 지성인이라는 착각을 스스로에게 안겨준다(언젠가는 다 읽을 거고, 그때 나는 엄청 똑똑해지겠지!). 멍청한 착각인 것을 알지만 뭐 어떠랴. 즐거우니 그만이다.
그 주위로 립밤과 핸드크림이 있다. 입술이 예민해서 립밤은 다섯 종류가 있고, 다양한 촉감이 좋아서 핸드크림도 다섯 종류를 뒀다. 많은 줄은 알았지만 이 글을 쓰며 다시 한번 개수를 확인하고 흠칫했다. 사치스러운 년. 립밤과 핸드크림은 그날의 컨디션과 기분에 따라 바꿔 쓴다. 요즘은 민트향이 도는 립밤과 염소 우유 성분이 들었다는 부들부들한 핸드크림을 즐겨 쓴다. 아, 좋은 냄새.
그 옆에 조그마한 손거울도 있다. 노트북을 하다가 한 번씩 그걸로 얼굴을 본다. 얼굴은 늘 거기에 그 상태로 있지만 물가에 내놓은 어린아이 확인하듯이 자꾸만 쳐다본다. 볼 때에는 늘 그만한 이유가 있다. 볼에 뭐가 난 거 같다거나, 눈썹의 땜빵이 커진 것 같다거나. 돌아보면 다 자잘하고도 쓸데없는 이유들이다. 그래도 거울은 여기 있어야 하고, 나는 그걸 보고 싶을 때 보아야 한다. 어쩌면 거울은 자꾸만 변덕을 부리는 내 마음을 다독이기 위해 여기 있는지도 모르겠다(어차피 니 얼굴은 늘 똑같단다).
책상 뒤로는 침대가 있다. 자취방에 흔히 있는 구도다. 그런데 한번 지적받고부터는 이 배치가 약간 신경 쓰인다. 내가 글을 쓰다가 자꾸만 벌렁 드러눕는 것은 사실 등 뒤에 침대가 있기 때문이 아닐까? 쟤를 다른 방으로 옮겨야 하나? 그래서 이 방이 작업실로 느껴질 수 있도록. 하지만 그냥 두기로 한다. 어차피 내 사고와 게으름과 꿈은 서로 느슨하게 연결돼 있으므로 나는 이 배치가 꽤 마음에 든다. 그런 생각을 하다 보니 또 졸리다.
우연히 고른 것들, 그렇게 내 옆에서 오래 살게 된 것들이 나의 일상을 일구었음을 알았다. 흔들리는 몸을 붙들고 글과 연결해 주었음을. 커다란 목표와 정체 모를 부담에 시달릴 때, 나는 이 자리에 앉아 책을 넘기며 눈썹을 만지작거리고 민트향이 나는 립밤을 바른 입술을 뻐끔거린다. 좋아하는 것들로 채워진 이곳에 틀린 것은 단 하나도 없다. 평온하고 아름다운 나의 세계, 나의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