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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화평론가 홍수정 Mar 19. 2023

내 마음의 가장 맑은 부분

<이니셰린의 밴시> 포스터

<이니셰린의 밴시> 비평을 '씨네21'에 쓸 예정이다. 다음 주 마감이다. 그래서 주말 동안 그의 전작들을 돌아봤다. 지금은 빛을 가려 어둑어둑한 방에 잠겨있다. 한편에는 향이 나는 핸드크림, 한편에는 커다란 아이스 아메리카노.  


마틴 맥도나에 대한 애정을 고백한 적 있다(https://brunch.co.kr/@comeandplay/861). 전작인 <쓰리 빌보드>가 개봉했던 2018년에 영화관에서 느꼈던 압도적인 감각과 황홀감이 기억난다. 어떤 영화를 지지하겠다고 단호히 마음먹었던 흔치 않은 순간. 나는 이때 쓴 내 글을 지금도 좋아한다(http://www.cine21.com/news/view/?mag_id=89714).



무려 5년 만에 돌아온 마틴 맥도나는 어쩐지 생경한 얼굴이다. 나는 섭섭함과 호기심을 동시에 느낀다. 새로이 생겨난 너의 비밀을 반드시 찾아내겠다는 치기 어린 승부욕도. 말했듯이 그는 <이니셰린의 밴시>에서 꽤 변했다. 하지만 의외의 성과도 있다. 이전보다 힘을 뺀 이번 작품에는 마틴 맥도나 세계관의 원류가 보다 선명하게 엿보인다. 그래서 이번 글은 감독론에 가깝게 쓰일 것 같다. 


나는 비평을 하나 쓰고서 만족스러우면 한동안 펜을 잘 들지 않는다. 감상적이고 게으른 습관이다. 조지 밀러의 <3000년의 기다림>을 보고 썼던 글은 꽤 맘에 들었다(https://brunch.co.kr/@comeandplay/838). 그런데 지나고 보니 다소 촉촉하다. 그때의 내가 그렇게 썼으므로 후회는 없다. 하지만 이번에는 좀 다르게 쓸 예정이다. 물기를 말릴 것이다.


비평에 대한 자조 섞인 농담을 떠들어대길 좋아한다. 하지만 마감을 앞둔 나는 어쩔 수 없이 숙연하다. 이 시간을 두고 가벼운 농담을 할 수는 없겠다. 내 안에 있는 가장 좋은 생각, 가장 좋은 언어를 띄우고 싶다. 내 마음의 가장 맑은 부분이 떠오르는 시간. 누가 보면 대작가인 줄. 하지만 누구나 필사적으로 지키고 싶은 것이 있으니까. 평범한 내 인생에도 성스러움이 깃드는 시간이 있다면 지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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