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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화평론가 홍수정 May 15. 2023

건강을 회복시켜 준 <택배기사>

<택배기사> 포스터

몸살로 앓는 주말.

전기장판+과일+넷플릭스의 황금 콤보를 맛볼 절호의 기회다. 나는 짜증 반(이 좋은 날 이게 뭐람) 설렘 반(바로 이거지)으로 자리에 누웠다.


뜨듯하게 등을 지지며 <택배기사>를 보니, 둘의 시너지에 쏟아지는 잠을 참기 어려워 2화를 다 못 보고 잠들었다. 낮에 이렇게까지 달게 잔 건 오랜만이다. 2시간 뒤 일어나서 2화를 마저 보다 다시 혼절.  처자려던 건 아니었지만 덕분에 몸살이 나은 것 같다. 마워요 <택배기사>.



<택배기사>는 지금 한국에서 제작되는 넷플릭스 시리즈물이 얼마나 방만한지를 보여주는 하나의 표지 같이 느껴진다.

'택배기사' 일종의 히어로처럼 설정한 상상력은 신선하다. 그러나 그게 다는 게 문제. 디스토피아적 풍경은 레퍼런스를 나열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익숙하고, 거대 기업의 음모와 계급 차별의 코드 낡다. 나는 이번을 계기로 넷플릭스가 적당한 비주얼과 액션만 갖추면 서사, 연기 등 다른 요소를 얼마나 너그럽게(혹은 하찮게) 대하는지를 알았다. 아니면 히려 플릭스의 영향으로 작품들이 이렇게 변해가는 것인가? 요즘 OTT 시리즈물들은 마치 최소한의 개연성과 볼거리만 제공하면 그만이라고 말하는 듯하다. 뻔뻔할 정도로 클리셰, 다른 작품의 시그니쳐 이미지, 현실의 사건들을 그대로 차용해 작품 여기저기에 박아 넣는다. 고민해 창조한 흔적이 부족하다.


<퀸메이커>는 클리셰 범벅이지만 연기 9단들이  연기를 구경하는 잔재미라도 있는데 <택배기사>에는 그마저도 없다. 오히려 이 작품은 이런 류의 장르물, 분위기가 중요할 뿐 연기력을 크게 요하지 않는 것처럼 보였던 다크 액션물들이, 실은 우리가 몰랐던 독특한 방식의 연기력 요구하는 장르였음을 깨닫게 한다. 예를 들어 <존 윅> 시리즈에서 키아누 리브스는 대체로 무표정이지만 전혀 어색하지 않은데,  모습이 훌륭한 연기 결과였음을 새삼 게 되는 것이다.


<택배기사> 포스터

<택배기사>에는 카리스마 있는 히어로가 없고, 위협적인 빌런도 없다. 그걸 연기하는 무르익지 못한 스타들만 있을 뿐이다. 그리고 이 작품은 배우들의 결점을 숨기지 못한 채 그대로 노출시킨다.


꾸준히 느낀 점인데 김우빈 배우는 목소리 연기가 괜찮은데 비해 표정 연기가 부족하다. 그래서 <우리들의 블루스>(2022)처럼 대사만으로 꽉 찬 작품에서는 연기가 좋아 보이지만, <택배기사>처럼  대사에 비빌 언덕이 없고 비주얼에 기대는 바가 큰 작품에서 상대적으로 힘이 빠진다.


이솜 배우는 넓은 영역을 소화 중이고 미래가 기대되지만, 대사를 할 때마다 입술 주변에 힘을 주 일종의 쪼가 생긴 것 같아 교정이 필요해 보인다. 무표정이 좋지만 표정 연기 디테일이 부족하다. 한 마디로 타고난 자질에 비해 전반적으로 기본기가 부족한 것인데, 호흡이 긴 정극 연기에 도전하는 게 좋을 듯싶다.


미숙한 히어로물은 무가내인 빌런을 내세우고, 그가 미친 짓을 하다가 홀로 삐끗하는 순간을 기다려 해치워 놓고는 영웅 행위를 했노라고 자축한다. <택배기사>의 류석(송승헌)도 나라를 지배하는 악덕 기업의 수장이라고는 믿을 수 없는 판단력을 지녔다. 그래서 결말 부분도 별다른 쾌감 없다.



최근 줄줄이 기대에 못 미치는 한국 콘텐츠들은 볼 때, 한류니 뭐니 떠들어댄 기억이  민망해진다.

봉준호 개인의 능력에 기댄 <기생충>의 수상이나, 사실은 넷플릭스의 어마어마한 영향력을 재확인시켜 준 <오징어게임>의 시끌벅적한 인기에 현혹되는 동안, 국내 콘텐츠들은 앞선 작품의 성공코드를 베끼고 스타와 볼거리와 마케팅, 그러니까 자본발라 흥행을 기대하는 나쁜 습관에 젖어들고 있다.

한류라는 거품이 꺼졌을 때, 그때에도 전 세계 관객이 한국의 콘텐츠를 찾을 이유가 있을까? 지금의 수준으로는 부정적이다. 2년? 3년? 나는 이미 끝이 오고 있음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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