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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화평론가 홍수정 Jul 03. 2023

<블랙미러> 시즌6에서는 '악마 79'를 보세요

세려되고 참신하며 고전적인 에피소드

※<블랙미러> 시즌6, 제5편 '악마 79'에 대한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넷플릭스 <블랙미러> 시즌6 예고편 캡쳐

<블랙미러> 시즌6은 대체로 기대에 못 미쳤다.

기대가 너무 높은 탓도 있을 것이다. 내게 <블랙미러>는 아무 사전 정보 없이 본 시즌1의 1화, '공주와 돼지'가 가장 충격적이면서 인상적이었다. <블랙미러>의 어둡고 신랄하며, 한 줌의 빛도 희망도 없이 인간성을 소진시켜 태워버리는 특유의 감성이 와닿았던 에피소드였다. 나는 그때의 기억으로 계속해서 <블랙미러>를 본다.


시즌6은 대체로 예상가능하고, 예상보다 약했다.

<블랙미러> 입장에서는 억울할 수도 있겠다. 나는 시즌1이 방영되던 시기보다 콘텐츠의 잔혹성에 훨씬 익숙해졌으니까. 물들었으니까. 관객으로서 내 멘탈은 웬만해서는 깨지지 않는다. 그러나 이런 점을 감안해도, 서서히 긴장감을 자아내다가 끔찍한 결말에 기어이 도착함으로써 관객을 좌절시키는 실력은 약간 녹슬었다. <블랙미러>의 배드 엔딩은 예상 불가능해서가 아니라 예상 가능해서, 그럼에도 충격이 줄지 않아서 놀라웠다. 이런 점이 다소 약해졌다.

그러나 인정하는 부분도 있다. 시즌6의 포문을 연 '존은 끔찍해'부터 '메이지 데이'에 이르기까지 이 시리즈는 우리 시대의 대중이 공포로 받아들이는 현실을 정확 포착해서 스크린에 펼쳐놓는다. <블랙미러>가 얼마나 동시대의 감각을 담으려고 치열하게 노력했는지 느껴지는 대목이다. 그 점만큼은 고개를 끄덕이며 된다. 고민하는 콘텐츠는 존중받을 자격이 있다.


넷플릭스 <블랙미러> 시즌6 예고편 캡쳐

다소 맹숭맹숭한 에피소드 가운데서 나의 눈길을 잡아끈 것은 '악마 79'라는 에피소드였다.

이 에피소드는 우연히 악마를 소환해 낸 여자에 대한 이야기다. 여자는 악마로부터 3일 내에 3명을 죽이지 않으면 온 세상에 멸망한다는 이야기를 듣게 된다. 이것은 악마 자신이 사탄의 세계에 입회하기 위한 테스트이기도 하다. 그녀가 자신의 임무를 완수해야 악마도 사탄으로서의 자격을 얻게 되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영원한 망각의 세계에 떨어지게 된다.


넷플릭스 <블랙미러> 시즌6 예고편 캡쳐

처음에는 악마의 속삭임에 의존해 가며 우발적으로 살인을 저지르던 그녀는, 어느덧 자신 안의 본능에 눈뜬다. 그리고 피해자를 물색하던 중, 미래에 수많은 사람을 죽이게 될 인종차별주의자를 찾아내어 그를 죽이기로 결심한다. 이 과정에서 점차 그녀는 자신의 임무에 확신을 가지며 매력적이고도 악마적으로 변해간다. 그녀는 누구도 아닌 자신의 의지로 살인에 몰두한다. 그 과정에는 인종 차별에 대한 따끔한 이야기도 내포돼 있다. 대의가 주어졌을 때 인간은 어디까지 변할 수 있을까. 또 그 모습을 두고 우리는 손쉽게 선악을 가를 수 있을까. 마지막에 미련 없이 악마를 따라 나서며 영원한 형벌을 받기로 결심하는 모습까지. '악마 79'는 살인이라는 극단적인 소재에 정치와 액션과 낭만을 솜씨 좋게 버무려 성공적으로 마무리한다. 세련되고 참신하면서 고전적이다. <블랙미러> 시즌6은 이 에피소드 덕에 볼 만한 가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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