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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화평론가 홍수정 Jul 10. 2023

혼자라는 공포, 혼자라는 안도 <악귀> 6화 리뷰

※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김은희 각본의 <악귀>를 제법 재밌게 보고 있다. 지난번 6화에 인상적인 연출이 있었다.


#장면 1

구산영(김태리)은 엄마와 싸우던 중에 자기 안에서 악귀의 속삭임('죽여줄까?')을 듣는다. 엄마를 해칠까 봐 두려워진 그녀는 문을 잠그고 문에 테이프를 덕지덕지 붙인 채로 잠에 든다.

다음날 아침. 침대에서 깬 산영. 우두커니 앉아있다.

방문을 본다. 열려있다. 엄마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이 순간의 정적이 묵직한 공포를 일으킨다. 그 감정의 끝은 상대가 아니라 구산영 자기 자신을 향한다. 다름 아닌 내가 사랑하는 엄마를 해쳤을지도 모른다는 무서움. 카메라 앞에서 오래 앉아있는 산영의 모습은, 엄마의 안녕을 확인하기 전까지의 불안과 두려움을 고요하고도 격정적으로 표출한다.


#장면 2

누군가를 해칠지 모르는 자기 자신을 시골에 유폐시키기로 결심한 산영. 도시를 떠나 아버지가 살던 집으로 향한다. 외딴 마을, 수풀 사이에 자리 잡은 단정한 한옥.

산영이 한옥 마루에 앉는다. 해는 산자락에 가까워졌다. 편안하고 따스한 오후의 햇볕. 문에서부터 바람이 불어와 산영의 머리칼을 스친다. 선선한 평온.

이 장면에서도 카메라는 홀로 마루에 앉은 산영을 오래 비춘다. 하지만 앞선 장면과는 느낌이 다르다. 장면 1이 혼자일 때의 혼란과 공포를 전한다면, 장면 2는 마침내 온전히 혼자여서 맞이하는 내면의 평온에 집중한다. 혼자 앉아있는 여자. 같은 형상을 완전히 다르게 보여주는 작품의 연출이 인상 깊다.


건너기 힘든 간극을 둔 위에 장면들이, 실은 우리의 감정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 같기도 하다. 실제로 혼자 있는 순간은 양면적이다. 악귀 때문이 아니라도 우리는 그리 심각하지 않은 범주에서 서로를 해친다. 해침을 주고받을 이가 더 이상 곁에 없다는 사실은 축복이자 공포다. 고독, 평온, 위안. 다양한 감정의 레이어를 지나 그 순간은 우리에게 온다. 위에 장면들이 유독 머리에 남는 것은, 혼자인 시간의 다채로운 얼굴을 알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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