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신문'(http://www.kunews.ac.kr)에 기고한 글입니다.
영화는 그녀가 떠나고 적지 않은 시간이 흐른 뒤에야 우리를 찾아왔다. 설리, 혹은 배우 최진리의 마지막 작품 <페르소나: 설리>에 대한 이야기다. 4년의 간극. 누군가에게는 너무 길고, 누군가에게는 너무 짧은 시간. 그러나 적어도 그녀를 휘감던 어지러운 말과 프레임에서 벗어나 배우 최진리를 마주할 수 있게 만들어 주는 시간이다. 이 글은 누군가를 옹호하거나 추모하기 위해 쓰이지 않았다. 다만 최진리를 온전하게 마주하기 위해 쓰였다. 그러니 그저 어느 배우를 깨끗하게 바라보려는 노력의 흔적이라 받아들여 주면 고맙겠다.
<페르소나: 설리>에서 배우 진리의 비주얼은 충격적이다. 단순히 예쁘다는 뜻이 아니다(물론 그녀는 놀라울 정도로 아름답지만). 그녀가 직조하는 이미지는 환상에 다가선다. 물끄러미 카메라를 바라보고, 알 수 없는 눈빛으로 허공을 응시하는 그녀의 아우라는 관객을 몽환으로 이끈다. 카메라 앞에서 그녀는 자연스레 연기하는 동시에, 아름답게 몸을 쓰고, 자신의 얼굴로 관객의 시선을 온통 빼앗는다. 배우, 모델, 아이돌까지, 그녀는 하나의 몸으로 세 가지 역할을 소화하며 오묘한 아우라를 뿜어낸다.
배우 진리는 지구력이 좋다. 그래서 관객의 멱살을 단단히 붙잡고, 마지막까지 안정적으로 뚜벅뚜벅 걷는다. <페르소나: 설리>는 진리의 일인극이다. 러닝타임은 약 20분. 비록 짧지만, 한 명의 배우가 온전히 장악하기에 짧지 않은 시간. 아니, 사실은 너무 긴 시간. 훈련되지 않은 어린 배우가 침몰하기에 충분한 시간. 그러나 진리는 몸으로, 얼굴로, 목소리로 매 순간 자기 몫을 해낸다. 특히 기억에 남는 장면이 있다. 그녀가 불빛이 새어 들어오는 화장실 안에 앉아서 문틈으로 밖을 바라보는 장면. 이때 감정의 파고에 시달리며 심리적 혼란을 경험하는 그녀의 얼굴은 그저 훌륭하다. 준비되지 않은 배우의 얼굴을 카메라가 오래 비출 때, 배우는 길을 잃고 관객은 지루해하기 십상이다. 그러니 진리는 짧지 않은 클로즈업을 훌륭하게 소화해 낸다. 이 장면에서 진리의 얼굴은 동년배 배우 누구로도 대체될 수 없다.
진리는 색이 짙다. 특히 대사를 소화하는 방식이 그렇다. 영화에서 주인공은 누군가에게 끊임없이 말을 건넨다. 이때 진리의 어조가 퍽 독특하다. 그녀는 나긋하고도 의뭉스럽게 질문한다. 때로 왜 뻔한 것을 묻느냐는 듯 퉁명스럽게, 때로 자신도 자기 마음을 모르겠다는 듯 쑥스럽게. 마치 슬라이드를 타듯 역동적이고도 부드럽게 흘러가는 말의 운율은 매력적이다.
마지막으로 진리는 연기를 잘한다. 어떤 순간에는, 가장 단순한 말이 힘을 발휘하는 법이다. 거짓은 장황하지만, 진실은 간결하니까. 긴 이야기를 둘러 왔지만, 사실 내가 정말 하고 싶은 말은 이 말이다. 진리는 좋은 연기자다. 다시 한번 말하겠다. 진리는 좋은 연기자다. 강렬한 얼굴과 자연스러운 대사 전달력이 강점이고, 연기 스펙트럼도 넓다. 그리고 그녀가 펼쳐내는 연기의 다양한 결 사이에서 너무 많은 가능성이 엿보인다는 점이 마음을 아프게 한다. 하지만 아마도 <페르소나: 설리>에 담긴 가능성은 그 자체로 계속 사랑받게 될 것이다.
조금 다른 시간대에서 우리를 찾아온 배우, 그리고 그녀의 연기. 나는 감상을 누르려 노력했지만 결국에는 좋고, 아름답고, 특별하다고 거듭 속삭이게 된다. 그건 아마도 그것이 진실이기 때문일 것이다. 이 속상한 진실 앞에서 무슨 말을 덧붙여야 할지 아직은 모르겠다. 그러나, 늦은 만남도 만남이다. 나는 배우 진리와의 만남을 감사히 여길 것이다. 이 다짐을 새기며 다른 영화를 향해 발걸음을 옮긴다. 아마도 나는 종종 이 순간으로 돌아오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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