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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예거 Jul 19. 2016

자본주의와 재벌

15세기에, 영국의 이웃나라 플랑드르(지금의 벨기에 북부지역)에서는 모직물 산업이 크게 일어났습니다. 


또한 그 모직물은 영국을 비롯한 유럽의 여러 나라에서 비싼 값에 팔렸는데 ... 모직물 수요가 늘어나자 당연히 원료인 양털의 수요도 늘어났고, 가격도 급등하게 됩니다. 


그러자 당시 영국의 귀족들은 자신들의 땅에서 일하던 농부들을 내쫓아버리고, 그곳에 울타리를 친 후 양을 기르게 됩니다. 


소위 "인클로저(enclosure) 운동" 이라 하는데 ... 하지만 대부분의 땅을 양을 기르는 데 사용하면서 정작 중요한 먹거리(식량)는 자신들 땅에서 구하지 못하게 되었고, 대신 양털을 팔아 식량을 구하게 됩니다. 

또한 쫓겨난 농부들도 식량을 구하지 못해 무언가 팔아야만 했는데 ... 농부들이 팔 수 있는 것은 오직 자신들의 노동력 밖에는 없었습니다. 


한마디로 날품(일당벌이) 밖에는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때부터 세상은 양털이든 노동력이든 ... 아무튼 무언가 팔아서 자신이 필요한 것을 사게 되는 경제가 뿌리를 내리게 됩니다. 


하지만 매번 양털과 곡식을 교환하는 물물교환만으로는 무언가 사고파는 경제가 번성하는데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마침 당시 유럽 사회에는 '화폐' 사용이 보편화되어가고 있었기 때문에 사고파는 경제와 인클로저 운동이 크게 번성하는 계기가 됩니다. 


그래서 다수의 학자들은 인클로저(enclosure) 운동을 "자본주의의 출발"이라 얘기하고 있습니다.




한국사회에서 정치권력을 넘어서는 거대한 "재벌" 이라는 존재는 사실 알고 보면 일본의 "종합상사"가 바로 그 모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일본 경제의 거품 붕괴 초입이었던 1994년 통계를 잠시 살펴보면 당시 전 세계 10대 무역회사 중에 5대 업체가 모두 일본의 '종합상사' 였으며, (참고로 한국은 1975년 '삼성물산'이 최초의 종합상사였습니다.)


또한 2,000 년 초반, 일본의 9대 종합상사의 자회사 수를 모두 합하면 무려 5,000 개가 넘는 규모였습니다. 


그러나 이보다 더 놀라운 건 이들 종합상사의 정보력인데, 과거 '러.일 전쟁'때 러시아 발틱함대가 일본 해군에게 패한 결정적 이유가 어느 일본 종합상사의 발틱함대에 대한 석탄수급 방해와 발틱 함대에 관한 상세한 정보수집이 있었기 때문이라 합니다. 


미쓰이물산, 미쓰비시상사, 스미모토상사, 이토추상사 등으로 대표되는 당시 일본의 종합상사의 위력(정보력)이 얼마나 대단했었는지, 일본 정보국은 물론, 전 세계 국가정보국 수준을 넘어선다는 이야기도 있었는데, 그래서 해외에서 큰 사건이 터지면 기자들이 정부 관계자보다 먼저 미쓰이물산(三井物産)이나 미쓰비시상사(三菱商事) 등의 기업 관계자를 먼저 찾아갔다는 것이 공공연한 사실이었습니다. 


대한민국 사회에서 삼성의 정보력을 생각해 본다면 충분히 공감이 가는 얘깁니다.


소위 ‘세계화, 국제화’라는 추세 속에서 범국가적인 수준에 도달한 오늘날 세계 글로벌 기업들은 치밀한 전략과 계획으로 자신들의 이익을 추구합니다. 


그중에 대표적이며 또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이 바로 ‘조세회피’ 인데 ... 영국 가디언지에서는 예전에 잘 나가는 몇몇 기업들의 세금 납부 실적에 대해 조사해 발표했었던 적이 있었습니다.


2006년 세계 3대 바나나 회사인 델몬트, 돌, 치키타의 영국 내 매출 실적이 약 7억 5천만 달러($) 수준이었는데, 그 당시 이들 회사가 납부한 세금 총액은 고작 23만 달러($) 수준이었다고 합니다.

매출이 7,500억이 넘었는데, 납부한 세금은 2억 3천만 원 수준이라는 것은, 다시 말해 이런 황당한 세금 납부 수치는 당시 '맨유 소속 주전 축구선수가 납부하는 세금 납부실적만도 못한 것'이라고 가디언은 꼬집었습니다.


또한, 2007년 영국 감사원은 2006년 당시 영국의 700대 기업 중에서 무려 3분의 1의 기업들의 세금 납부 실적이 없었다고 발표했습니다 ... 이렇게 세금 납부실적이 전혀 없거나 7,500억 매출에 2억 3천만 원 수준의 황당한 세금납부가 가능할 수 있는 것은 대표적으로 조세피난처를 활용한 이전 가격(Transfer Price) 조작 때문인 경우가 가장 많습니다.


예를 들어 설명을 해보면, A라는 바나나 회사가 영국에서 바나나 판매로 1억 원을 벌었는데, 그전에 A는 케이맨제도(조세회피지역)에 A1이라는 금융자회사를 설립하고, A1A에게 100억 원을 대출해줍니다.(물론 서류상으로)


그렇게 되면 결국 바나나 회사 A는 영국에서 벌어들인 1억 원을 고스란히 케이맨제도 자회사 A1에게 이자비용으로 갚아야 합니다. 


결론적으로 A는 영국에서 소득이 제로가 되는 것입니다. 또한 A1은 케이맨제도 세법에 따라 매우 적은 세금을 납부하거나 거의 세금을 납부하지 않아도 되는 것입니다.


실질적으로 대표적 조세회피지역인 영국령 '버진아일랜드'는 총 거주인구가 대략 2만 5천 명이라고 하는데, 이곳에 등록된 (전 세계) 기업의 수가 무려 80만여 개 넘는다고 합니다 ~ ! 


... 저마다 자신이 우위에 있는 산업을 특화하면 무역이 모두에게 행복하다는 리카도의 비교우위론에 펀치를 가하는 순간입니다. 


쉽게 말해, 오늘날 자본과 기업들은 생산성이 극대화될 수 있는 곳으로 이동하는 것이 아니라, 최고의 세제혜택을 누릴 수 있는 곳으로 이동하는 게 어쩌면 진짜 현실일 수도 있다는 뜻입니다. 




'탈세'는 분명한 불법입니다. 하지만 '조세회피'는 아직까지는 합법의 탈을 쓰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이러한 조세회피가 기업들에만 국한된 것이 아닌, 돈 많은 개인(사업자) 차원에서도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마이클 이라는 미국인 사업자가 있었는데, 어느 날 이 사업자가 “펀드(마이클 펀드1)”를 만들어 거액의 자금을 만든 뒤, 스위스에 "마이클 펀드(2)" 라는 회사를 설립합니다. 그리고 마이클펀드(2) 는 얼마 후 한국에 "(주)철수펀드" 라는 자회사를 100% 출자하여 만듭니다.


@마이클펀드(1): 거주지국 = 미국
@마이클펀드(2): 거주지국 = 스위스
@철수펀드: 거주지국 = 한국


그리고 (주)철수펀드는 한국에서 상당한 자본력으로 매우 유망한 소재 기업인 (주)영희소재를 100억에 인수하였다가 1년 뒤 일본 투자펀드인 '(주)사까이' 에게 200억에 매각하였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주식양도 차익인 100억에 대해서 과연 과세를 어떻게 해야 되는가가 문제가 됩니다.

만약 양도차익 100억의 귀속을 '마이클펀드(2)'로 판단하게 된다면 ... 한국과 스위스의 조세협약 체결로 인하여 한국에게는 과세 권한이 없어지게 되고, 오직 스위스에게 권한이 주어집니다.


마찬가지로 양도차익 100억에 대한 귀속을 '마이클펀드(1)' 이라고 판단해도 한-미 조세협약으로 인해 과세 권한은 미국으로 넘어가는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미국은 법인의 주식양도차익에 대한 과세율이 10% 였다면, 스위스는 법인의 주식양도차익에 대해 1%라는 매우 적은 저율과세를 실시하고 있기 때문에 실질적인 회사의 주인인 마이클은 (주)철수펀드의 주식양도 차익 100억에 대한 귀속을 '마이클펀드(2)' 라고 주장하여 스위스의 1% 세율을 적용받게 한다는 것입니다.


결국 마이클은 각 국가마다 상이한 조세협약 규정을 교묘히 활용하여, 페이퍼 컴퍼니를 텍스 헤븐(조세피난처) 국가가 포함된 2국, 3국 등을 거친 매우 복잡한 과정을 통해 세금을 회피할 수 있는 것입니다.


실제로 몇 년 전 구글과 스타벅스 같은 글로벌 기업들이 이러한 역외탈세 수법을 활용해 수조 원의 세금을 덜 낸 것으로 밝혀졌고, 한국에서도 문제가 됐던 론스타 또한 [국세청과의 소송(스타타워 매각차익에 관한 과세)에서 패소하긴 했지만] 복잡한 조세회피 과정을 이용했었습니다.

그 이후 OECD 국가들이 이러한 역외탈세를 막기 위해 협의를 진행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위 사례는 설명의 이해를 돕기 위해 만든 것이므로 실제 세율과 조세협약에서 차이가 날 수 있습니다.]




오래전 ... 목수는 산에서 얻은 나무로 의자를 만들고, 털모자가 필요하면 의자를 몇 개 더 만들어 털모자를 만드는 (의자가 필요한) 장인을 만나 의자와 모자를 (물물) 교환하며 서로의 욕구를 충족했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단순한 물물교환의 경제형태가 어느 날부터는 필요 이상으로 의자와 털모자를 많이 생산하게 됩니다. 

이것은 의자와 털모자가 각각 ‘상품’이 되었기 때문인데, 여기서 상품이 되었다는 것의 본질적인 의미는 의자와 털모자가 (각자의) 필요와 욕구에 의해 단순 교환이 이루어지는 차원을 넘어 이제는 ‘이윤’을 위해 생산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 


그렇다면 단지 이윤을 남기기 위한 것만이 자본주의의 본질일까요?


'이윤'을 단순히 '이득'의 개념으로 본다면 자본주의 이전 시대에도 '이득'을 위한 경제 형태는 존재했었습니다. 

따라서 자본주의에서 ‘이윤’의 개념은 조금은 다른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는데, 한마디로 ‘이윤만이’ 자본주의의 본질은 아니라는 겁니다 ... 이윤도 당연히 포함되지만 자본주의의 진정한 또 하나의 본질은 바로 축적(accumulation) ~ !!! 입니다. 


이윤은 그 자체만으로도 목적이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자본주의에서 이윤의 목적은 더 화려하고 거대한
"축적(accumulation)"을 위해 기능할 때 그 타당성을 인정받기가 더 쉽습니다. 



부자는 사치하는 자이지만, 자본가는 축적하는 자다!


라는 말이 있습니다. 인클로저 운동 이후 자본주의가 세계에 정착되고 ... 오늘날 한국의 재벌과 일본 종합상사와 그들의 정보력, 그리고 글로벌 기업들의 조세회피 등은 ... 결국 한계를 모르는 "자본의 축적" 이라는 본질에 의해서만 설명될 수 있다고 생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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