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 제작을 위한 최고의 재료
<오버워치>가 출시된 지도 2달 남짓한 시간이 지났습니다. 출시한 이후 한 달도 채 되기 전에 절대강자였던 <리그 오브 레전드>를 꺾고 피시방 점유율 1위 자리를 차지한 오버워치.
7월 2주 차 기준, 오버워치의 점유율은 31.99%를 기록하며 두 주 연속 1위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2위는 24.06%의 롤입니다. 격차가 점점 더 벌어지고 있죠. (참고로 서든어택2의 점유율은 1% 입니다.) 출처
오버워치가 롤을 이길 수 있었던 이유는 다양하게 제시되고 있습니다.
블리자드의 신작이라는 버프, 개성 있는 캐릭터, 쉬운 인터페이스, 빠른 플레이 시간 ... 혹은 단순히 롤에 대한 피로도 때문일 거라는 말도 있습니다만.
이 글에서 주목하고 싶은 건 오버워치만의 독특한 특징인 "최고의 플레이", 즉 하이라이트 영상 기능입니다.
(Play of the game 을 줄여서 해외에선 POTG라고 함. 이하 '팟지' 라고 칭하겠습니다.)
오버워치는 게임이 끝나면 가장 멋진 활약을 한(또는 '캐리를 한') 플레이어의 개인 화면을 15초 정도로 짧게 보여줍니다.
누가 가장 멋진 플레이를 보여줬는지 게임 안에서 바로 확인이 가능해졌습니다.
게임스팟과 오버워치 팀의 리드 소프트웨어 엔지니어 Rowan Hamilton의 인터뷰를 참고하겠습니다. 출처
GameSpot:
'최고의 플레이' 메카닉을 선보이게 된 배경은 무엇인가요?
Hamilton:
게임을 하면 수많은 멋진 순간들을 만나게 됩니다. 친구와 함께할 때 엄청난 걸 해냈다면 "야 방금 봤냐?" 같은 말들을 하게 되지만, 친구는 "나 저 놈 죽이느라 못봤는데..." 와 같은 상황이 벌어지게 되죠.
최고의 플레이는 이러한 스쳐가는 순간을 포착한 아이디어였습니다. 우리는 게임의 끝에 훌륭한 소셜 모멘트를 만들고 싶었어요. 여러분의 팀뿐만 아니라 적팀도 멋진 순간을 볼 수 있도록요. - 아, 물론 그게 부디 멋진 순간이었길 바랍니다. - 그래서 아군과 적군에 관계없이 메르시의 어마어마한 구원을 보고 하나가 되어 놀라도록요.
오버워치의 '최고의 플레이' 기능은 신의 한 수 였습니다.
아군과 적팀이 함께 한 명의 플레이를 본다는 것. 자신의 하이라이트를 모두가 감상하게 된 겁니다. 12명의 플레이어가 자신의 활약상을 본다면? 카타르시스가 빵빵 터지기 마련입니다.
'최고의 플레이' 기능은 여기에 그치지 않습니다. 오버워치는 플레이어 개인의 하이라이트 영상을 게임 내부에 자동 저장되도록 해줬습니다.
메인화면에서 '하이라이트' 버튼을 누르면 오직 본인이 주인공인 하이라이트 영상을 다시 볼 수 있습니다.
아직 아쉬운 점도 있습니다. 하이라이트가 게임 내부에 자동 저장되긴 하지만, 최대 5개까지만 저장할 수 있으며 게임을 종료하는 순간 사라집니다.
오버워치는 전체 리플레이 기능도 지원하지 않습니다. 하이라이트가 아니라 개인의 플레이 전체를 다시 보려면 별도의 외부 녹화 프로그램을 이용해야 합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녹화하는 수밖에 없는 것이죠.
<리그 오브 레전드>는 게임 내부에서 리플레이를 저장하는 방법은 없지만, OPGG 와 같은 사이트를 통해 게임 전체를 녹화해서 파일 형태로 저장할 수 있습니다. 외부 녹화 프로그램으로 녹화하지 않아도 파일만 가지고 있으면 언제든지 다시 볼 수 있는 것이죠.
하지만 <리그 오브 레전드>엔 하이라이트 기능이 없었습니다. 영상 제작자가 매드 무비나 몽타주(montage)와 같은 영상을 만들기 위해선 리플레이를 처음부터 다시 보며 장면을 하나하나 뽑아야 합니다.
자신이 직접 플레이했던 게임이라면 어디서 멋진 장면이 나왔는지 얼추 기억하겠지만, 남들의 리플레이라면 다시 재생해보면서 하이라이트를 발굴해내는 수밖에 없는 거죠. 게다가 이런 식의 작업은 '주관성'이 크게 작용합니다.
내 눈에는 멋진 장면이어도, 남들이 볼 땐 별 거 아닐 수도 있는 거죠. 그래서 롤 플레이 영상들은 주로 프로게이머들을 포함한, 게임을 정말 잘 하는 사람들의 영상이 대부분인 게 사실입니다. '프로게이머의 플레이'라고 하면 딴지를 걸 사람들도 줄어들 테니까요.
게임이 숫자에 근거해서 직접 뽑아준 하이라이트이기 때문입니다. 완전 초보들의 싸움일지라도, '최고의 플레이'는 선정됩니다. 그 플레이가 생각보다 허접한 것일지라도(적어도 웃음을 줄 수는 있겠죠.) 모든 하이라이트는 '최고의 플레이'라는 이름 아래에서 평등할 수 있습니다.
위에서도 얘기했지만, 롤의 경우엔 하이라이트를 뽑아내기 위해선 리플레이를 보며 클립(짧은 영상)을 하나하나 잘라내야 했습니다. 장면 선정도 애매하지만 작업 시간도 오래 걸리죠.
그러나 <오버워치>는 하이라이트를 직접 뽑아줍니다. 전체 리플레이를 다 뒤적이며 편집할 필요가 없는 겁니다.
누구나 간편하게 '최고의 플레이' 영상만 녹화해서 공유할 수 있습니다. 누구나 감탄할 만한 멋진 플레이도, 우연히 뽑힌 코믹한 상황도 전부 다 말입니다.
유저들은 본인의 하이라이트 영상을 자랑하고 싶어 합니다. 남들에게 보여주고 싶어 하죠. 덕분에 인터넷엔 '최고의 플레이' 영상이 넘쳐납니다. 전 세계에서 콘텐츠를 위한 '재료'가 나온다고 볼 수 있는 겁니다.
이런 재료들, 즉 '최고의 플레이' 영상 몇 개만 이어 붙여도 괜찮은 콘텐츠가 뚝딱 만들어지는 거죠.
탁월한 센스를 가진 제작자들은 하이라이트 영상만 이어 붙인 게 아니라, 그 위에 스토리 라인을 입히고 짤방과 특수효과를 붙이며 더 재밌는 콘텐츠를 만들어내기도 했습니다.
예를 하나 들자면, 유튜브에 <오버워치 WTF 모먼트>라는 채널이 있습니다. 평범한 플레이도 이 채널에선 빵빵 터지는 영상으로 '재가공'됩니다. 이미 재밌는 게임에 더 재밌는 스토리를 입히는 것이죠.
유저들은 자신의 플레이 영상을 스스로 제작자에게 보냅니다. 제작자는 영상들이 모이면 특히 웃기거나 멋진 영상들을 추려내어 콘텐츠를 제작합니다. '최고의 플레이'의 편집 간편성 덕분에 이런 모든 과정이 과거에 비해 훨씬 효율적으로 변했습니다.
'최고의 플레이' 기능은 이러한 재가공 콘텐츠만 만들어낸 게 아닙니다. 패러디도 엄청나게 만들어냈죠.
인터넷에선 일찌감치 수많은 패러디가 나오고 있었습니다. 몇 개만 뽑아봐도...
우리나라에선 MBC의 <마리텔>이 최초로 써먹었습니다. 무려 공중파에서 이런 고퀼로 패러디를 제작하다니. 반응이 엄청 좋았죠.
미국의 한 축구 구단은 주전 공격수의 활약상을 POTG 영상으로 제작해서 화제를 모은 적이 있습니다.
오버워치가 단순히 게이머들에게만 영향을 미친 게 아니라 문화적으로도 영향을 끼쳤다는 증거입니다.
'최고의 플레이'는 게임, 인터넷 콘텐츠, 방송, 스포츠에 이르기까지 모든 분야에서 활용되고 있습니다. 전 세계적으로 말이죠.
사람들이 스스로 콘텐츠를 만들어주니 바이럴도 활발하게 일어납니다. 엄청난 홍보효과는 덤이죠. 블리자드와 오버워치는 게임 홍보와 마케팅을 거의 공짜로 하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여담이지만, '최고의 플레이' 기능의 한계도 물론 지적되고 있습니다. 너무 점수에 치중한다는 점이죠. 짧은 시간에 동시 처치를 많이 기록하면 팟지를 받을 가능성이 크게 올라갑니다.
즉, 팟지는 거의 '공격수' 위주로 돌아갑니다. 팟지 단골 멤버들도 있죠. 바스티온, 리퍼, 맥크리와 같은 캐릭터들입니다.
앞에서 열심히 방패 들고, 화물 열심히 옮기는 라인하르트는 팟지를 받기가 굉장히 힘든 게 사실입니다. 탱커들이 고생은 고생대로 하지만 팟지는 받기 힘들다는 건 불공평하다는 말이 많이 나오죠. (메르시와 같은 지원 캐릭터는 힐 꼽는 맛이라도 있는데 ... 라인하르트는 당최 '막는 맛'이란 게 없는 것 같아요. 맞는 맛일지도 ..)
아무래도 숫자에 근거하여 컴퓨터가 선정하는 하이라이트니까, 주관적인 '멋진 플레이'를 뽑기엔 어려움이 따르겠죠. 오버워치 측에선 데미지나 킬 수랑은 별개로 '높은 기여'를 감지하는 새로운 알고리즘 도입을 구상 중이라고 합니다. 출처
또한, 게임 내부에 저장되는 하이라이트 영상들을 따로 저장하거나, 영상 파일로 바로 변환하는 기능을 추가할 계획이라고 밝혔습니다.
하이라이트가 영상 파일로 바로 변환된다면, 이제 외부 녹화 프로그램을 돌리지 않아도 되는 겁니다. 어떤 일이 일어날까요?
아마도 많은 분들이 직접 영상 콘텐츠 제작을 시도할 것 같습니다. 잘 만든 유튜브 콘텐츠가 짭짤한 수익을 가져다주는 시대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