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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예거 Feb 06. 2017

우려먹기만 하는 입문교육은 이제 그만.

스스로 구원하는 인턴 일기 4

(메인 사진은 본 글과 아무 연관이 없는 참고용 사진입니다.)


A는 1이에요. B는 2라고 합시다. 이런 식으로 단어에 점수를 매겨서 합쳐봅시다.


행운(Luck)은 47점이에요. 돈이 많으면? Money는 72점이에요. 지식(Knowledge)이 많아도 96점이랍니다.

그러면 100점짜리 단어는 무엇일까요 여러분?


...


여기는 신입사원 입문교육 강의실. 지금 강의실에 있는 신입사원 약 40명 모두 답을 알고 있었다. 지금 이 글을 읽는 분들도 아마 답을 알고 계실 거다. 또 말해 무엇하랴, 답은 태도(Attitude)였다.


신입사원에게 100점 짜리 인생을 가르치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태도가 곧 100점이라는 단순한 계산법은 도대체 언제 적부터 우려먹어왔을까? 확실한 건,  내가 고등학교 1학년 때 이 계산법을 친구에게 해줬던 기억이 있다. 그게 약 10년 전이다.


태도가 중요하다는 말은 고대 불교 경전인 <화엄경>에서부터 나왔다. 그 유명한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 모든 것은 오로지 마음이 지어내는 것이라는 멋진 말. 그리고 이어지는 원효대사 해골물 썰.. 해골물 이야기는 초등학교 때 들었다.


80~90년대 신입사원 연수는 '일체유심조'와 원효대사 해골물 이야기를 통해 태도의 중요성을 강조하지 않았을까? 00년대부터는 그 방법이 Attitude 계산법으로 자연스럽게 바뀌었나 보다.


Attitude 계산법은 그저 우연이다. 정말 우연히 100점에 도달한 것이고, 태도 말고도 100점을 기록하는 단어들도 많다. 예를 들면, 고자되기(Impotence)라던가. 그냥 노력(Effort)은 70점인데, Effooort(노오오력)은 100점이라는 우스갯소리도 있다.


Attitude 계산법은, 솔직히 원효대사 해골물 썰 보다 그 파급력이 약하다. 원효대사 해골물 썰은 스토리텔링이라도 있지만, Attitude 계산법은 애들 장난 마냥 말도 안 되는 숫자 맞추기에 불과하다.


그런데 강사라는 사람들이.. 한 시간에 몇 십만 원을 받는 신입사원 연수 전문 강사라는 사람들이 아직도 현장에서 그걸 강의한다. 내가 약 10년 전에 들었던 뻔한 얘기를 아직도 반복하고 있는 강사들이야말로, 태도에 문제가 있다고 본다. 참으로 아이러니하다. 입문'교육'을 진행하는 사람들이, 정작 자신들의 교육 자료는 업데이트하지 않는다. 그 촌스러운 PPT마저 기업 이름만 바꿔가며 돌려썼을 것이다.


태도 0점이다.


100점인 단어는 무엇일까요?


뻔뻔한 표정으로 저 질문을 던지는 강사의 모습을 보며, 내가 더 부끄러워졌다. 만약 신입사원 면접에서, 면접자가 "A에 숫자 1을 대입하고.. " 라고 운을 뗀다면, 면접관은 다 듣지도 않고 중단시킬 거다. 너무 뻔하니까. 그런 뻔하디 뻔한 교육이 아직 우리 사회에 팽배한 걸까? 과연 저 강사만 그랬던 걸까?


...


나는 비록 인턴이지만, 그저 형식적인 입문교육을 위한 교육을 제공하는 것 같아서 미안했다. 이건 강사의 문제도 있지만, 미리 체크하지 못한 교육 기획자의 책임도 크다고 느꼈다.


직접 찍은 건 아니지만, 이런 촌스러운 피피티를 보여주는 강사가 너무 많다.


그렇게 어영부영 교육이 끝났다. 신입사원들은 지친 표정이었다. 아무것도 배운 게 없다는 표정. 강사는 서둘러 짐을 챙기고 자리를 떠난다. 그래. 어차피 한 번 보고 말 사이니까. 똑같은 교육 계속 우려먹어도 돈은 벌리니까.


해병대 극기훈련 보내는 기업은 정말 무슨 생각인지.. 이게 정말 최선일까?


기업 입문교육의 구조에 대해 다시 생각해봐야 한다. 과도한 기업 가치 세뇌, 보여주기 식 율동 맞추기, 뜬금없이 해병대 캠프 보내기, 의미 없는 등산 등.. 온갖 기이한 것들로 가득 차 있지는 않은가. 신입사원들이 열정과 창의력을 가졌으면 좋겠다는 기업들이 왜 발전도 없고 재미도 없는 식상한 입문교육을 진행하는 걸까?



신입사원에게 입문교육은 기업과의 '소개팅'이다. 내가 선택한 기업의 시스템, 사고방식, 더 나아가 '센스'까지 확인할 수 있는 중요한 이벤트인 것이다. 이런 입문교육에서 말도 안 되는 가혹함과 소위 꼰대식 교육을 보여주면, 기업을 향한 신입사원의 호감도는 급감하기 마련이다. 이는 에프터 포기(조기 퇴사)로 이어지는 빌미를 충분히 제공한다.


내가 이렇게 말해도, 계란으로 바위 치기다. 인턴이 바꿀 수 있는 건 거의 없다. 그러나 적어도 한 가지 원칙만은 지키고 싶다. 교육자료 우려먹기만 반복하는 강사들은 절대 쓰지 말 것. 말빨이 조금 부족하더라도, 참신한 교육을 진행하는 강사가 100배 낫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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