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언어 번역기> 서평
제가 브런치를 시작한 이후로 재밌게 읽던 매거진이 있습니다. Peter 작가님의 <흔한 전략기획의 브랜드 지키기>란 매거진입니다. 최근에 작가님이 매거진을 엮어 책을 내셨습니다. <회사언어 번역기>라는 제목의 '경영 소설'입니다. 소설이지만 다큐멘터리에 가까울 정도로 정교하고 현실적으로 회사 생활을 묘사해주셨습니다.
<회사언어 번역기>의 주인공 Peter는 어느 대형 외식 프랜차이즈 업체의 '전략기획팀'으로 막 이직한 직장인입니다. 전략기획팀은 어떤 업무를 하는 팀일까요? 브랜드의 매출을 높일 방법을 연구하고 실무진에게 지시를 내리는 팀? 회사 차원의 핵심 가치를 전사에 공유하는 팀? 경영진과 실무진의 입장을 조율해서 최선의 전략을 수립하는 팀?
모두 맞는 말입니다. 하지만 위와 같은 업무 진행은 세련된 채용 공고에서나 볼 수 있는 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주인공 Peter가 맞닥뜨리는 전략기획팀의 업무는 매뉴얼대로 진행되지 않았습니다.
기획팀에서 일하면서 회사의 경영진과 실무진이 서로 답답해하면서도 대화를 진전시키지 못하는 상황들을 자주 목격했습니다. - Peter
Peter의 눈으로 본 전략기획팀 업무는 억지로 고구마를 삼키는 것 마냥 답답하기만 했습니다. 사업전략은 작년의 포맷과 거의 비슷하지만 말만 바뀐 수준이었고, 전략은 늘 현장에서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습니다. 업무 하기도 바쁜 실무진에게 매주 실적 중간보고를 시켰습니다. 예산을 늘려주진 않았지만 작년보다 나은 성과를 요구했습니다.
주인공 Peter는 답답하게 흘러가는 전략기획팀의 현실을 보며 어떻게 생각했을까요? 책에는 문제가 되는 상황에 대한 '피터의 생각'이 적혀 있습니다. '피터의 생각'은 정답에 가깝습니다. 하지만 직장 생활이란 것은, 정답을 안다고 해도 고칠 수 없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권한이 없거나 현실적인 이해관계들이 뒤얽혀 있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올바른 방향'을 생각해봐야 합니다. 직장에 말도 안 되게 비효율적인 업무가 있다면, 어떻게 고치는 게 올바른 방향인지. 직장 내 성폭행 문제가 있다면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지.
본인에게 권한이 없다고 외면하고 수긍하는 사람들은, 나중에 리더가 되더라도 회사를 바꿀 수 없습니다. 끊임없이 의문을 제기하고 효율적 업무 체계를 고민하는 사람들만이 훌륭한 리더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런 리더가 회사를 변화시킵니다.
Peter작가님은 전략기획팀의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괴로워하며 10년 이상을 보낸 프로 직장인입니다. 그리고 그 10년 간의 고민을 약 400페이지짜리 책으로 내셨습니다.
저는 <회사언어 번역기>를 읽으면서, 전략기획팀의 업무나 경영에 대한 인사이트를 얻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부러웠습니다. 이런 책을 쓰시는 분이 재직하는 그 회사가 부러웠습니다.
10년 동안 회사를 다닌 직장인은 많지만, 그 10년 동안의 경험을 책으로 쓰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마냥 회사를 비판하고 '일하기 싫음'을 역설하는 책은 많지만 '올바른 경영'에 대한 이야기를 전하는 책은 거의 없습니다. <회사언어 번역기>는 그래서 귀한 책입니다. 많은 분들이 읽으셨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