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개미 자서전>을 읽고
회사가 싫고, 밉고, 짜증 난다. 어이없을 정도로 꼰대스러운 직장 상사들도 너무나 많다.
공감한다. 나도 회사를 다녀봤고. 퇴사도 해봤으니까.
누구나 저마다의 회사 생활을 한다. 고민도 제각각이다.
신입사원 때는 대학교 친구들과 만나 각자의 회사 생활 이야기만 해도 재밌었다. 입사한 지 몇 달 되지 않았으니까, 서로의 회사에 대해, 처음 만난 사수에 대해 이야기하는 게 재밌었다.
이런 경험은 입사 후 반년만 지나도 바뀐다. 이젠 친구들보다는 같은 팀 동기 또는 선배들과 이야기하는 게 훨씬 재밌어진다. 왜일까? 배경 설명을 하지 않아도 되니까. 그 재수 없는 팀장이 왜 재수 없는 사람인지 일일이 설명하지 않아도 되니까. 소주잔을 채우면서 바로 뒷담화로 진입할 수 있다.
오늘 그 팀장이 무슨 짓을 했냐면요...
<안나 카레니나>의 그 유명한 첫 문장을 다시 보자.
행복한 가정은 서로 닮았지만 불행한 가정은 모두 저마다의 이유로 불행하다
이건 회사생활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좋은 회사는 서로 닮았다. 높은 연봉, 좋은 사람들, 적당한 워크 라이프 밸런스...
하지만 불행한 회사들은 저마다 이유가 있다. 연봉이 심각하게 낮거나, 워라밸이 박살 나거나, 싸이코패스 매니저가 있거나.. (물론 이런 사유를 다 가진 구린 회사도 많겠지만)
아무튼, 나의 불행한 직장 생활 이야기를 쌩판 모르는 남에게 설명하는 건 정말 힘들다. 내가 이렇게 힘들었고, 이렇게 고통받았다고 얘기해도, "왜 오버야? 누군 직장 생활 안 해본 줄 아나."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더 많을 테니까.
<해리포터>에는 기억을 실처럼 뽑아, 그것을 남에게 '라이브'로 보여주는 마법이 있다. 난 회사 다니면서 이 마법이 자꾸 떠올랐다.
내가 겪은 고통을 남에게 설명하기 귀찮고, 또는 힘들 때가 많았다. 그냥 내 기억을 실처럼 뽑아서 화장실 세면대에 담은 뒤에 직장 동료들에게 보여줄 수 있다면 얼마나 간단할까?
그런 점에서, <일개미 자서전>은 잘 쓴 책이다. 상황 설명을 길게 끌지 않으면서도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디테일만 조목조목 제공한다. 특히 '일개미'라는 비유가 인상적이다.
나를 포함한 보통의 일개미들은 그저 각자의 위치에서 이 사회의 조연, 대한민국의 단역을 떠맡는다. 인생의 주인공은 나지만 세상의 주인공은 언제나 나 아닌 다른 누구. 하루 여덟 시간의 노동, 결혼과 출산, 육아와 내 집 마련, 보험료 납부와 노후 대비……. 현대 인간에게 숙명처럼 주어진 의무를 수행하다 보면 일개미의 삶은 엇비슷해진다. 아니, 엇비슷해 보인다.
- <일개미 자서전> 중에서
누군가는 처음부터 여왕개미, 힘이 센 수컷 개미로 태어나 떵떵대며 살아갈 수도 있다. 하지만, 날개 또는 생식기능을 가진 우월한 개미들이라고 '목소리'를 가진 건 아니다.
이 땅 위에는 2,500만 일개미가 오늘도 묵묵히 일하고 있다. 구달 작가는 일개미였을지라도 적어도 그녀는 목소리를 가진 일개미다. 본인의 이야기를 책으로 써낼 용기와 실천력이 있는 일개미는 흔치 않다.
나도 목소리를 내는 일개미가 되고 싶다. 그리고 많은 일개미들의 이야기를 듣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