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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전호 Oct 13. 2016

퇴근 후의 고민

별 것 없는 이야기

몇 번인가 이제는 정말 글만 쓰고 싶다,라고 생각한 적이 있다.

아마 그런 생각이 가장 강력하게 내 맘에 휘몰아쳤을 때는 첫 책을 출판하고 난 후였던 것 같다.

어쨌든 나는 직장이라는 곳에 메인 몸이었고, 그럼에도 글을 쓰는 걸 무척 좋아한다. 거기다가 일 년에 두세 번은 병처럼 무작정 떠나고 말았으니 어지간히 현실이 힘들었던 것이다. 그래서 직장을 그만두고 한 번 풀타임 작가의 세계로 뛰어들어볼까?라고 진지한 고민을 했던 것이다. 그땐 무모했던 건지 아니면 무식했던 건지 글만 쓰면서도 적당히 잘 살아나갈 수 있을 것 같다고 막연히 생각했다.


어쨌든 나는 그런 고민들을 어깨에 짊어지고 살아가고 있었다. 

퇴근 후 집에 돌아와서는 간단히 저녁을 만들어먹고 나는 항상 집 앞의 카페로 향했다.

카페의 구석진 테이블에 자리를 잡고는 커피를 한 잔 시킨다. 그리고 노트북을 켜고는 원고 작업을 한다. 휴식이 필요한 퇴근 후의 시간을 원고 작업에 매달린다는 건 피곤하고 힘들긴 했지만 내 삶에서 큰 부분을 할애하는 거였다. 그만큼 절실했고 또 즐겁기도 했다. 그런데 문제는 그렇게 카페로 가서 테이블을 잡고 커피를 시키고 노트북을 켜고는 원고 작업을 시작해도 생각만큼 글이 잘 써지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글을 쓴다는 건 내가 살아온 삶을 활자에 녹여내 포장하는 작업이었는데 그것이 여간 쉽지가 않았다. 

그것도 그럴 것이 글도 하나의 상품이고 한다면 세상에 완성품을 내놓아야 하는데 내 삶의 조각들은 여전히 진행 중인 것들 투성이었고, 또 그것들의 대부분은 결론에 도달하지도 못한 답이 없는 것들이었다. 게다가 대부분은 불량품에 가까워 누군가에게 내놓기 부끄럽기도 했으니까.

그럼에도 습관처럼 매일 몇 시간을 원고 작업에 투자했고, 대부분은 다음 날 다시 삭제하기를 반복. 그리고는 풀타임 작가의 길은 정말이지 쉽지가 않겠구나 생각했다. 하루의 대부분을 원고를 생각하고 컴퓨터 앞에서 그 결과물들을 쏟아내는 작업은 어쩌면 내가 직장엘 다니고 피곤한 몸과 정신으로 간절히 원고를 써나가는 작업보다 더 어렵겠다고 느낀 것이다.


만약 내가 하루의 전부를 원고 작업에 쏟으려면 그만큼의 삶의 재료를 모아야겠다고 생각했다. 

고양이를 피해 카페의 테이블 위에서 노트북과 씨름을 하는 것만으로는 좋은 글을 써낼 수가 없었으니까. 

사람을 만나고 사람을 겪고 그 안에서 내 나름의 결론을 내려면 난 계속해서 진짜 세상 속에 섞여야겠다고 생각했다. 혼자만의 세상에 갇혀 자판을 두드리는 것이 아니라 말이다.

여전히 직장을 다니며 4년 만에 두 번째 책을 출판했다.

의도한 건 아니었지만 첫 번째 책도, 두 번째 책도 월드컵이 열리는 해에 출판했기 때문에 주변 사람들은 나를 월드컵 작가라고 부른다.

난 오늘도 퇴근을 하면 집에 들어와 고민을 한다.

오늘은 어떤 삶을 살았는지, 뭘 느꼈는지,
무엇에 좌절하고 무엇을 성취했는지. 


그리고 그것들에 대해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결론을 지었는지를.

두 마리의 고양이의 밥을 챙겨주고 난 오늘도 카페로 향한다.

그곳에서 하루의 삶을 돌아보고, 품었었던 감정을 정리하고, 조심스레 그것들을 활자로 옮겨 본다.


*저희 집 고양이들은 제가 집에서 원고 작업을 하는 걸 싫어합니다. 노트북에 대한 질투가 상당하거든요.



가르치고, 여행을 하고, 사람을 만나고, 글을 씁니다.
저서로는 “첫날을 무사했어요” 와 “버텨요, 청춘”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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