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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전호 Oct 27. 2016

애증의 기아타이거즈

별 것 없는 이야기

나는 나고 자란 고향이 광주인 관계로 정말 자연스럽게 타이거즈 야구팀의 팬이다.

내가 스스로의 의지를 가지고 응원하는 야구팀을 선택할 수 있는 시기엔 이미 타이거즈가 워낙 나의 인생에 깊이 관여하고 있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라기보다는 어쩔 수 없이 팬이 되었다는 것이 더 맞는 말일 것이다. 

내 선택이 아니었으므로 책임질 필요도 없지만 내 삶은 기아타이거즈 야구팀의 승패에 따라 몹시도 많이 휘둘린다. 정말 많이 말이다.


일단 봄에 야구 시즌이 시작되면 나의 큰 관심사는 바로 타이거즈의 야구가 된다. 요새 선수들의 성적이 어떤 지부터 선발 투수가 누구냐에 따라 혼자 조심스레 승부를 예측해보기도 한다. 새로운 선수의 영입에 그 누구보다도 전문적인 분석을 내놓기도 한다. 

타이거즈는 분명 야구명가이다. 아니 명가였다. 과거형이라 슬프긴 하지만 사실 2009년 이후로 여태껏 우승을 하지 못하고 있으니(우승은커녕 포스트시즌에 올라간 경우도 거의 없었으니) 그건 어쩔 수 없는 사실이다.

어릴 적, 아버지를 따라 종종 야구경기장에 가곤 했었다. 

아버지도 나와 마찬가지로 타이거즈의 골수팬이었기 때문에 우리 부자는 정말 온전히 야구경기에만 집중을 했고 서로 대화는 거의 하지 않았다. 그건 일종의 아버지와 나와의 암묵적 유대였으며 어머니가 끼어들 공간이 없는 치밀한 우리만의 결합이었다. 

그렇게 삶의 대부분이었던 타이거즈의 성적이 요즘 신통치 않아 아버지와 나와 유대가 느슨해지는 듯도 해서 서글퍼지기까지 한다. 나의 감정이 고작 응원하는 야구팀의 성적에 따라 요동친다는 것이 스스로도 어처구니없지만 누구든 응원하는 운동 팀이 있다면 나의 이런 상황을 이해하리라 생각한다. 이건 정말 도무지 어쩔 수 없는 일인 것이다. 정말로 말이다.


여자 친구와 야구경기를 보러 야구장엘 가기도 한다.

여자 친구는 타이거즈 야구팀에 빠져버린(정말로 깊이) 못난 남자 친구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야구의 세계에 입문해버렸고, 이제는 종종 나와 비슷한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그녀도 결국 “타이거즈의 승패에 따른 삶의 감정 변화”라는 묘한 메커니즘을 장착하기 시작한 것이다. 뭐 아직까진 덤덤한 편이긴 하지만 말이다. 이게 좋은 건지 안 좋은 건지는 나도 잘 모르겠지만 그래도 동료가 생겼다는 생각에 마음이 조금 든든해졌다. 그녀가 타이거즈 야구팀의 패배로 인한 나의 슬픔을 함께 나눠주니 조금은 견딜 만도 하다. 

세상에 나와 비슷한 사람을 조금씩 늘려간다는 건
아무리 생각해봐도 기분 좋은 일이니까. 


세상이야 어떻게 되든 말든 말이다.

내년 시즌 타이거즈는 다시 한번 새 도약을 준비할 것이다.

조금 걱정이 되기도 한다.

물론 나도 골수팬으로서 할 말이야 많지만 일단 지켜보기로 했다. 

내년엔 아버지와 함께 웃으며 야구를 볼 수 있는 날이 많아지길 기대해본다. 그리고 여자 친구가 직구와 변화구의 차이를 이해했으면 좋겠다.

어쨌든 타이거즈 파이팅!!


*2016년 프로야구 시즌이 끝났습니다. 타이거즈는 리빌딩과 성적이라는 두 가지 목표 중에 리빌딩을 선택했고 나름 괜찮은 성과를 냈습니다. 하지만 역시 이긴 경기보단 진 경기가 많았으므로 전 2016년을 잘 살아내지는 못했습니다.



가르치고, 여행을 하고, 사람을 만나고, 글을 씁니다.
저서로는 “첫날을 무사했어요” 와 “버텨요, 청춘”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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