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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전호 Oct 29. 2016

날아가 버린 꿈

별 것 없는 이야기

그러니까 아침에 면도를 할 때까지만 해도 분명 꿈의 내용이 생생했었다. 

그래서 오늘은 이 이야기를 원고로 한 번 써봐야겠군, 이라고 생각했다. 선명하게. 그런데 면도 크림을 턱에 바르고 나니 그 꿈이 전혀 생각이 나지 않는 것이다. 

정말이지 전혀. 

이게 무슨 황당한 상황이란 말인가. 

그런데 요즘 종종 이런 황당한 상황을 겪고 있으니… 어쩌면 황당한 게 아니라 내가 나이를 먹는 건지도 모르겠다. 

꿈을 기억하는 뇌의 용량이 나이를 먹어서 이미 넘쳐버린 것이다. 


그동안 수많은 꿈을 꾸고 기억하고 있으니. 그래서 새로운 꿈이 기억의 공간을 비집고 들어 가보려 하지만 이내 차고 넘쳐 사라져 버리는 뭐 그런 상황.


나는 꽤 꿈을 잘 꾸는 편이다. 

사실 꿈을 잘 꾼다, 잘 꾸지 못한다, 를 수치로 나타내긴 어렵지만 그래도 아마 세상 모든 사람들을 꿈을 잘 꾸는 순서로 줄을 세운다면 난 상위 10% 안에 들 자신은 있다. 몇 되지 않는 내가 잘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냥 그러려니 해주시길. 그런데 내가 그나마 잘하는 것인데 요즘 이게 자꾸만 삐걱거리니 기분이 우울해지는 것이다.

경험해보신 분들도 있겠지만 내가 꾸는 꿈의 대부분은‘이건 꿈이다.’라는 인식이 있는 꿈이다. 그러니까 꿈을 꾸고 있다는 것을 꿈속에서 스스로 인지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번뜩이는 원고의 아이디어라든지, 정말 대박 날 것 같은 사업 아이템이 꿈에 등장하면 꿈속에서지만 난 정말 기분이 좋아진다. 꿈이 너무 선명하고, 꿈이라는 인식도 너무 선명하기 때문에 난 스스로를 과신해버린다. 내가 꿈을 깬다고 해도 꿈에서 생각했던 그것을 분명히 기억하고 있으리라고. 왜냐고? 정말이지 말 그대로 너무 선명한 기억이니까.


<메멘토>라는 영화를 본 적이 있으신지? 그 영화의 주인공은 꿈이 아니라 자신의 삶을 기억해내지 못한다. 잠을 자고 일어나면 바로 어제 자신의 삶이 말 그대로 제로가 되어버리는 것이다. 이건 나보다 더 심각한 문제이다. 나는 적어도 꿈을 기억하지 못하는 것이니 뭐 괜찮은 편이겠지. 하지만 자신의 삶을 기억하지 못한다는 건 나로서는 도무지 상상이 안 간다. 

다시 영화로 돌아가서. 어제의 삶을 기억해내지 못하는 남자 주인공이 선택한 방법은 바로 자신의 삶을 몸에 문신으로 새기는 것이었다. 삶의 작은 단서를 자신의 몸에 남기는 것. 그것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처절한 행위였을 것이다. 하지만 결국 주인공은 자신이 삶을 기억하기 위해 문신을 새겼다는 사실조차 잊어버리고, 새겨진 문신들은 오히려 지난 삶을 엉망진창으로 재구성해버린다. 

영화를 본지 너무 오래라서 영화의 결말이 잘 기억나진 않는다. 어렴풋이‘정말이지 고약하군. 아무리 영화라지만 저런 삶은 너무하잖아.’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내가 만약 꿈의 기억을 잊어버리기 싫어서 잠에서 깨어나자마자 그 기억들을 몸에 문신으로 새긴다면 난 거울 앞에서 한참을 문신만 바라볼 것이다. 그리고 꿈을 기억하지 못하는 것보다 더 혼란스러워하겠지. 또 아직 해보진 않았지만 몸에 문신을 새기는 행위 자체도 꽤나 고통스러울 것이다. 난 주사도 잘 맞지 못하는데 날카로운 바늘이 수백수천 번 내 몸을 찌른다니. 차라리 꿈을 기억하지 않겠습니다. 꿈 따위가 뭐라고요,라고 말하며 꿈의 기억을 포기하는 편이 내 인생을 훨씬 더 수월하게 만들지도.

결국 꿈을 기억하는 걸 포기해야겠다고 생각하며 나도 모르게 그만 면도크림을 씻어내고 말았다. 아직 면도도 하지 않았는데 말이다. 정말이지 요즘은 삶이 너무나 힘들어진다. ‘더 이상 꿈은 꾸지 않았으면 좋겠어.’라는 생각을 나는 면도크림을 다시 턱에 바르며 했다.


*그래서 요즘은 무언가를 잊어먹지 않기 위해서 메모를 많이 하는 편입니다. 주머니나 가방에 항상 작은 메모지와 볼펜을 넣어두고 다닙니다. 하지만 문제는 볼펜을 자주 잃어버린다는 겁니다. 역시 세상엔 쉬운 일은 없습니다.



가르치고, 여행을 하고, 사람을 만나고, 글을 씁니다.
저서로는 “첫날을 무사했어요” 와 “버텨요, 청춘”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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