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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전호 Oct 25. 2016

괜한 심술

별 것 없는 이야기

분명 옳은 말을 하고 있고, 

몇 번을 생각해봐도 정답이지만, 

난 가끔 맞는 말만 하는 사람에게 심술을 부려보곤 한다. 

그러니까 나 스스로도 분명 옳다고 생각하지만 그 사람의 말 가운데 작은 결점이라도 찾아내려 노력하고, 찾아낸 그 결점을 핑계 삼아 그 사람의 말 전체를 부정하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이건 몇 번을 다시 생각해봐도 알 수 없는 바보 같은 심술이다.

그런데 이런 알 수 없는 심술 시스템이 내 마음속에 한번 자리하기 시작하면 나로서도 어찌할 수가 없다.

 

아무도 나의 심술에 브레이크를 잡을 수 없는 것이다.


가령 이 심술이라는 시스템이 작동을 시작하면 누군가 “지구는 둥글다니까.”라는 말을 해도 나는 “아니야. 지구가 네모일 거란 생각은 해 본 적 없어? 네 말처럼 정말 둥근 모양일까?”라고 말하고 싶은 마음에 입술을 실룩실룩거린다. 그리곤 가끔은 “정말?”이라는 반문을 해버리기도 한다. 

그럼 대화는 순간 정적. 

왜냐면 그 사람의 말은 정말이지 누가 봐도 맞는 말이니까. 거기에 비하면 내 대답은 유아적 수준의 유치한 심술이니까 말이다.


하루는 가만히 내가 왜 이렇지, 라는 생각을 곰곰이 해보았다.

말을 한 그 사람 자체가 싫은 걸까? 하지만 그건 아닐 것이다. 이 심술 시스템은 사람을 가리지 않고 나타나 버린다. 전혀 예고도 없이 불쑥 말이다. 그러니 이건 사람을 봐가며 적당한 사냥감을 골라 발동되지 않는다. 

그럼 결국 문제는 나에게 있다는 결론에 수렴하게 된다. 온전히 나의 문제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이 조금은 억울하기도 하지만 차라리 마음은 편하다. 

“앗, 죄송합니다. 이건 제 문제니까 너무 신경 쓰지 마세요. 당신은 아무 잘못이 없습니다.”라고 말하며 대화의 정적을 무마하면 그만이니까.

물론 그렇다고 해서 내가 그렇게 못된 사람은 아니다. 

그러니까 가끔 제가 괜한 심술을 부리더라도 너그러이 이해해 주시길. 



*그런데 당신도 그런 것 하나쯤 가지고 있지는 않나요?

가령하려고 했던 일도 누가 하라고 하면 하기 싫어지고, 시키려 마음먹었던 메뉴도 일행이 먼저 시켜버리면 갑자기 먹기 싫어져 버리는 그런 것 말이에요.



가르치고, 여행을 하고, 사람을 만나고, 글을 씁니다.
저서로는 “첫날을 무사했어요” 와 “버텨요, 청춘”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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