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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전호 Nov 13. 2016

운전을 하며 라디오를 듣는다는 것

별 것 없는 이야기

제가 운전하고 있는 차는 일본차입니다. 아니 왜 한국 사람이 일본차를 몰고 그래?라고 물으신다면야 뭐라 할 말은 많지만 그냥 “아, 제 차가 하필 일본차였군요. 허허 이런.”이라고 말하며 넘어가기로 하죠.

하지만 일본차를 운전하면서 사실 이런 애국심(?)의 문제에(이것도 문제라면 문제겠지만) 때문에 곤란한 경우보다 제 경우엔 운전을 하면서 듣는 라디오 때문에 곤란한 경험을 하게 됩니다. 

제 차는 일본에서 타국에 수출용으로 만든 차가 아니라 내수용으로(그러니까 일본 내에서만 판매하는 목적으로) 만든 차라서 한국에서 운전을 하기엔 몇 가지 문제가 있습니다. 일단 운전석이 한국 차와는 다르게 오른쪽에 있습니다. 그런데 이 문제는 생각보다 금방 익숙해지기 때문에 별다른 어려움은 없었습니다. 거기다 저는 항상 안전한 인도 쪽으로 하차를 하기 때문에(머릿속으로 한 번 상상해보시길) 안전하기까지 하죠. 뭐 옆 좌석에 앉은 동행은 조금 불편하고 살짝 위험하지만 말입니다.


그런데 그것보다 더 큰 문제는 바로 라디오입니다. 일본의 라디오 주파수와 한국 라디오의 주파수가 다른 관계로 제 차에서는 한 채널의 한국 라디오만 나옵니다. 그래서 좋던 싫던 전 운전을 하는 내내 항상 KBS의 라디오만 듣게 되는 겁니다. 아니 이거 노래 선곡이 왜 이래? 라든지, 저 디제이의 목소리는 영 내 취향이 아니란 말이야, 따위의 이유로 라디오의 채널을 돌릴 수가 없습니다. 왜냐면 돌릴 곳이 없으니까요. 주파수를 조절해 봤자 지지직거리는 소리만 들릴 뿐입니다. 그러니 좋든 싫든 그냥 듣는 겁니다. 저에게 처음부터 선택권은 없었으니까요.

저는 주로 출퇴근을 할 때만 운전을 하므로 하루에 한 시간 이상 운전을 하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그러니 그 정도는 참을만한 것이죠. 운전은 아무리 생각해봐도 피곤한 일입니다. 그리고 종종 꽉 막힌 서울의 도로 위에선 저도 모르는 저의 야성적인 모습을 발견하게 되는 썩 유쾌하지 못한 경험도 종종(아니, 꽤 자주) 합니다. 그런 피곤한 운전 가운데 운전을 할 때 제가 좋아하는 노래가 흘러나오면 행운을 만난 것 같아 기분이 좋아지기도 합니다. 선택지가 하나뿐인 라디오의 채널에서 좋아하는 가수의 좋아하는 노래가 흘러나오는 건 분명 큰 행운이니까요. 어제는 출근길에 김동률의 노래가 흘러나와 하루 종일 기분이 좋았습니다.

매번 비슷한 시간에 라디오를 듣다 보니 라디오에 나오는 프로그램의 주제 음악을 거의 외우고 있습니다. 첫 음만 시작되면 운전을 하며 따라 부르곤 하죠. 여러분도 그런 적이 있으신지? 꽤 재밌습니다. 처음엔 몇 구절을 외우는 정도에서 시간이 지날수록 거의 완벽하게 외워버립니다. 말 그대로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요. 물론 음정을 정확하게 따라 부르는 건 여전히 제겐 어려운 문제입니다만. 음치라고들 하죠? 제가 그렇습니다. 

어쨌든 그렇게 한 소 절도 틀리지 않고 라디오 프로그램의 주제 음악을 외우는 날은 뭔가 뿌듯해서 아침을 먹지 않아도 배가 부르곤 합니다. 그리고 또 요일별로 나오는 게스트들도 다 알아맞히게 되죠. 그러니까 결국 라디오와 저만의 묘한 결속감과 유대가 생기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디제이가 휴가라도 가서 다른 디제이가 잠시 라디오를 진행하기라도 하면 전 묘한 배신감을 느끼기도 합니다. 아니 이것 보라고. 난 한 번도 라디오 채널을 다른 곳으로 넘긴 적이 없는데(넘길 수도 없지만) 이렇게 라디오 진행을 다른 사람에게 넘겨버리면 어쩌자는 거야? 라며 혼자 투덜거립니다. 혼자만의 삐뚤어진 짝사랑이죠.

그런데 제 생각에 저 같은 사람은 그다지 정상적인 사람은 아닐지도 모릅니다. 매일 아침 라디오를 들으며 반복되는 주제 음악을 따라 부르고 디제이나 게스트를 두고 투덜거리는 사람은 아무리 생각해봐도 이상하니까요. 분명 주변 사람을 꽤나 힘들게 하는 사람일 것입니다. 꾸준히 최선을 다해 흘러나오는 라디오에 시비를 거는 사람이니. 것 참.

그래서 조금은 정상적인 사람이 되어보고자 종종 라디오 대신 음악 CD를 듣습니다. 집에는 플레이어가 없어서 선물 받은 음악 CD를 차에 보관해 두는데 그게 꽤 여러 장이 되었거든요. 그런데 그것도 여러 번 듣다 보니 질려서 저는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라디오를 켭니다. 아마 라디오에 중독된 듯도 싶습니다. KBS 라디오가 절 오염시켜 버렸습니다. 

라디오는 매일 비슷한 것 같지만 그 안에 작은 변화들이 있기 때문에 제가 시비(?)를 걸 수 있는 여지가 있거든요. 이상하지만 시비를 걸 수 있는 대상이 많아질수록 삶이 즐거워지더라고요. 

역시나 전 이상한 사람인가 봅니다.

출근길에 듣는 라디오에선 아나운서 황정민 씨가, 퇴근길에 듣는 라디오에선 가수 김C가 디제이입니다.

잘 듣고 있습니다. 가끔 혼자 시비를 걸기도 합니다. 그래도 꾸준히 듣고 있으니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


*김C의 뮤직쇼가 종료되었습니다. 저는 뭔가 하나를 크게 잃어버린 것 같아 상실감이 큽니다. 황정민 씨 부디 오래오래 방송을 해주세요.



가르치고, 여행을 하고, 사람을 만나고, 글을 씁니다.
저서로는 “첫날을 무사했어요” 와 “버텨요, 청춘”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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