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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전호 Dec 02. 2016

카페에서 난감한 일

별 것 없는 이야기

몇 번인가 카페에서 생긴 일을 원고에 썼던 것 같은데요. 

이번에도 카페 이야기입니다. 죄송합니다. 집 아니면 주로 카페를 가는 이동 반경의 장소의 범위가 꽤나 편협한 사람인지라 어쩔 수가 없네요. 뭐 죄송한 건 죄송한 일이고 일단 한 번 써보도록 하겠습니다.


저는 카페를 꽤 자주 가는 편인데(일주일에 세 번 이상은) 주로 혼자 갑니다. 

아무래도 사람을 만나는 일은 그리 자주 있는 편은 아니고 카페란 모름지기 혼자 가더라도 샷 추가한 라테(이 이야기도 전에 썼던 것 같습니다만) 한잔이면 충분한 곳이잖아. 안 그래?,라고 생각하는 편이거든요.

무튼 혼자 카페를 가게 되면서 전 가끔 난감한 일을 겪게 됩니다.

저는 주로 여러 명이 함께 사용하는 큰 테이블의 구석진 자리에 앉는 걸 좋아합니다. 아무래도 커피 한잔 시키는 주제에 4인용 테이블을 떡하니 차지하고 앉아있는 건 영 눈치가 보이거든요. 게다가 한 번 앉아 원고 작업을 시작하면 두세 시간은 기본으로 앉아있습니다. 

그러니까 저는 카페에 돈을 많이 벌어다 주는 손님은 아니죠. 또 집이 바로 코앞이라 종종 자리를 비우고 고양이들의 동태를 살펴보고 오기도 합니다. 자식을 떼어 놓고 온 부모의 마음이랄까요? 그래서 8명이 함께 사용할 수 있는 큰 테이블의 구석진 자리는 저에겐 퍽이나 잘 어울리는 자리인 겁니다. 마음도 편하고요. 

그리고 저는 가끔 단체손님이 오면 슬그머니 자리를 비켜주는 센스까지 갖추고 있습죠.

그렇게 구석진 자리에 혼자 앉아 커피를 마시며 원고 작업을 하고 있으면 종종 제 옆자리에 한 무리의 손님이 앉아 이야기를 나누는 경우가 있습니다. 한 번도 본 적 없는 사람들이기에 당연히 제가 신경 쓸 일은 없지만 문제는 그들의 이야기가 제 귀에 너무 잘 들린다는 겁니다. 그래서 본의 아니게 저는 그만 그들의 대화에 빠져들어 버리고 맙니다. 

‘아니. 뭐라고? 여자를 그렇게 매몰차게 버리는 나쁜 놈이 있다니!’, 

‘저기 아가씨. 그건 아가씨가 잘못 알고 있는 거라고요. 실은 그 가수는 그래도 꽤 괜찮은 편인데.’

‘잠깐만요. 고수를 드실 줄 아신다고요? 정말요? 대단하시네요.’

따위의 말들이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게 됩니다. 

이렇게 “카페 옆자리 사람들의 대화에 몰래 참여하기”를 시작하면 전 그때부터 아무것도 하지 못합니다. 

원고의 내용들은 도무지 떠오르지 않고 몸의 모든 신경이 오롯이 귀에만 집중 되어 그들의 대화를 염탐(?)하기 시작합니다. 그러다 가끔은 혼잣말로 중얼거리는 경우도 있습니다. 구시렁구시렁.


물론 여기 까지라면 별 문제는 없을 겁니다. 그런 문제 상황에 제가 빠져든다면 일단 귀에 이어폰을 꽂고 정신을 집중해서 하얀 건 종이요 까만 건 활자니… 라는 주문을 외우며 다시 원고에 집중하면 되니까요. 그런데 문제는 제가 몰래 그들의 대화에 참여하여 속으로 알은체를 하는 그 순간 그들 중 한 명과 눈이 마주치게 되어버리면 발생합니다. 저는 저도 모르게 그만 제 속마음을 눈빛에 담아버리고 순간 말 그대로 정말 그들의 대화에 참여해 버리고 말거든요. 

아, 저라는 사람은 꽤나 피곤한 사람입니다. 그들이 이런 저의 일종의 염탐을 고운 눈으로 바라보느냐, 그건 절대 아닙니다. 저와 눈이 마주치면 꽤나 당황하거나 불쾌해하며 서로에게 눈빛으로 신호를 보냅니다. ‘옆자리 저 녀석 꽤나 이상해 보여’라는 신호를 말이죠. 뭔가 남을 험담하고 있었던 사람은 갑자기 말을 아끼기 시작하고 달콤한 사랑을 나누던 연인들은 갑자기 시시콜콜한 일상적인 이야기를 해버립니다. 본의 아니게 그들을 대화를 제가 방해한 것이죠. 참 난감한 일입니다. 


차라리 제 앞에 커다란 인형 하나를 두고 그 인형과 이야기하고 싶은 마음도 있습니다. 이상한 녀석으로 몰릴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다른 사람들의 대화를 방해하진 않을 테니까요.

혼자 카페에 간다는 건 이렇듯 예상 밖의 암초를 만나는 위험을 동반합니다. 그래도 어쩌겠습니다. 저희 집 고양이들은 제가 집에서 원고를 쓰는 걸 허락하지 않고, 그렇다고 카페에 친구를 앞자리에 앉혀놓은 채 혼자 원고 작업을 할 수만은 없는 노릇이니까요. 

눈이 보이지 않는 새까만 선글라스를 쓰고 카페에 가는 것도 좀 웃기겠죠?

아, 어렵습니다. 정말로요.


*중학교 시절 담임선생님은 시험 감독을 하실 때면 까만 선글라스를 쓰고 하셨습니다. 어딜 보고 계시는지 도무지 알 수 없어서 커닝을 할 생각은 아예 하지도 못했었죠. 참 기발한 아이디어입니다.



가르치고, 여행을 하고, 사람을 만나고, 글을 씁니다.
저서로는 “첫날을 무사했어요” 와 “버텨요, 청춘”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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