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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전호 Dec 13. 2016

예쁜 말하기

별 것 없는 이야기

그러니까 세상을 딱 절반으로 잘라서 한 쪽에는 말을 하는 사람, 다른 한쪽에는 글을 쓰는 사람으로 나눈다면 난 아마도 글을 쓰는 사람 쪽에 서있을 것이다. 말이란 건 순간적이고 빠르며 주어 담을 수 없어서 항상 나를 긴장하게 만든다. 반면에 글은 느리고 곱씹어 생각해볼 수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적어도 수정도 가능하다는 점이 무척 매력적이다. 

세상에 쨘, 하고 등장하기 전 말보단 글이 더 오래도록 내 안에 머물러 있는 것이다. 


생각과 수정이 개입할 여지가 있는 건 아무래도 말보단 글 쪽이니까.


그래서 그런지는 모르지만(일단 떠넘기고 보자고요) 나는 말을 예쁘게(?) 하지 못한다. 

적어도 내 말엔 형용사가 별로 포함되지 않는다. 주어와 동사, 그리고 가끔 목적어. 

말이 짧다 보니 꾸며질 여지가 없고, 꾸며지지 않는 말은 도무지 예쁘지가 않다.

가령 형과 함께 이야기를 나눌 때를 생각해보면(전 형과 함께 살고 있습니다. 두 마리의 고양이도 있지만 녀석들은 도무지 제 말을 알아듣지 못하거든요. 전 가끔 고양이들의 말을 알아듣지만요. 생각해보니 불공평하네요) 쉽게 알 수 있다.

“왜 설거지를 하지 않는 거야?”

“양말은 좀 뒤집어서 세탁기에 넣지 그래?”

“찌개가 너무 짜. 이걸 어떻게 먹어?”

이런 말을 내뱉는다. 만약 내가 말을 못하는 사람이라든지 혹은 형이 듣지 못하는 사람이라면 우리의 대화는 좀 더 예쁜 글로 표현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설거지가 많이 쌓여있어. 내가 방에 걸레질을 하는 동안 형은 설거지를 좀 해줘>

<빨래 통속의 뒤집힌 양말을 다시 뒤집는 건 여간 힘든 게 아니야. 가끔은 손에서 발 냄새도 나거든. 그러니 조금만 더 신경 써줘>

<대한민국 사람은 세계에서 나트륨 섭취량이 가장 높다고 해. 우리 음식을 좀 싱겁게 만들어보자>

아… 생각만으로 아름답다.

다시 현실로 돌아와 나는 예쁜 말을 하기 힘든 상황에서는 본능적으로 침묵해버리는 경우가 많다. 전혀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한 마디도 하지 않는다. 말이라는 걸 애초에 모르는 사람처럼. 이런 침묵은 적어도 나에게 예쁜 말을 하지 않을 가능성을 본질적으로 없애주지만 반대로 나를 본의 아니게 이상한 사람으로 만들어버린다. 적어도 우리 사회에서 대화중 갑작스러운 침묵은 정상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지지는 않으니까. 

“저기 왜 갑자기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거예요? 무슨 기분 나쁜 일이라도 있어요? 아니면 저한테 불만이라도?”라는 질문에 “갑자기 나쁜 말이 튀어나올 것 같아서요”라는 대답은 역시 억지스러우니까. 그리고 침묵하는 사람에게 저런 직접적인 질문을 하는 사람도 드물다. 그러니 나의 침묵으로 대화의 공기는 무거워져 버리고 결국 서로의 눈치를 보다 이내 대화는 종료된다. 


때론 생각나는 대로 거침없이 이야기하고 싶을 때가 있다. 그러나 일단 그런 식으로 마음먹고 나면 걱정되는 게 한두 가지가 아니다. 세상에 나를 온전히 이해해주는 사람은 드물고, 짧은(거기다 가끔 약간은 신경질적인) 나의 말을 예쁘게 받아들여주는 사람은 더 드물다. 그러니 이러다 외톨이가 되는 건 아닌지 모르겠군, 이라는 걱정도 든다.

그래서 나는 종종 글을 쓴다.

원래 제 뜻은요, 제 마음은 말이죠, 따위의 변명을 글로 늘어놓는 것이다.

그리고는‘것 봐. 이렇게 글로 쓰니까 얼마나 편하고 좋아?’ 하는 나에게만 낭만적인 결론을 스스로 지어버린다.

세상의 많은 사람들이 말로 상처 주고 말에 상처받는다.

그리고 그 상처들이 종종 따듯한 글로 보듬어진다. 사과의 말보다는 사과의 편지가 더 진하고 빠를 때도 있다.

그러니까 여러분도 저처럼 예쁜 말을 하지 못할 때라든지 혹은 본의 아니게 뱉어낸 말 때문에 오해를 받을 때는 다시 말을 되돌려주기보다는 조용히 글을 한 번 써보시길.

저는 나름 그렇게 잘 살고 있거든요. 뭐 멋있어 보이진 않지만요.


*알 수 없는 신조어들이 많이 생겨나고 있습니다. 제가 도무지 따라잡을 수 없을 정도로요. 이러다 이제는 정말 말을 몰라 말을 하지 못하게 되는 상황이 제게 생길지도 모르겠네요.



가르치고, 여행을 하고, 사람을 만나고, 글을 씁니다.
저서로는 “첫날을 무사했어요” 와 “버텨요, 청춘”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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