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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전호 Aug 19. 2017

우리의 여행을 자극하는 책

내 여행의 뽐뿌질

필자는 개인적으로 "여행"을 하는 방법엔 두 가지가 있다고 생각한다.

가장 좋은 방법은 직접 스스로의 발을 내디뎌 미지의 세계를 걸어보는 것일 테고, 만약 시간과 물질의 제약으로 그것이 여의치 않을 경우는 타인이 만든 세상을 염탐하는 독서일 것이다.


여행과 독서, 이  두 가지엔 모두 장단이 있다.

여행의 장점이라면 직접적인 경험인 만큼 빠르고 강렬하다는 것이다. 불이 뜨겁다는 것은 만져보지 않아도 알 수 있겠지만 여행이 왜 좋은지는 직접 해봐야 안다. 반대로 독서의 장점은 조금은 느리고 여리지만 시공간을 초월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엔 어느 제약도 존재하지 않다는 것.

물론 여행과 독서의 단점은 서로의 장점이 될 것이다.

두 가지 모두를 할 수 있다면 가장 최선일 것이고, 둘 중 하나라도 지금 하고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행운이다. 그러데 두 가지 모두 놓치고 있다면 음... 아무리 생각해봐도 역시나 그건 좀 불행할 것 같다.

무던히도 책상을 건져내는 것이 어려웠던 필자의 학창 시절, 필자는 수험생활이 끝나고 법적으로 성인이 된 스스로에게 꼭 여행을 선물해주겠다는 욕심이자 희망을 품었다. 그리고 그 희망의 힘으로 지루한 의자에 엉덩이를 붙이고 그것보다 더 지루한 시간들을 잠자코 버텨냈었다.


그 시절 필자에게 여행이라는 푸른 꿈을 꾸게 해주었던 책들이 있었다. 

야간 자율학습 시간, EBS 문제집 사이에 끼워서 감독 선생님 몰래 도두처럼 읽었던 책에서부터, 성인이 되고 난 뒤 여행 앞두고 읽었던 책들 까지. 

그 책들이 필자의 여행의 시작이자, 여전히 진행되고 있는 여행의 원동력이라고 감히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그것들이 없었다면 아마도 무언가를 놓친 채(그리고 그것이 무엇인지도 모른 채) 꾸역꾸역 현실을 살아내고 있었을 것이다.


오늘은 지극히 개인적인(사실 누구나의 삶은 모두 개인적이겠지만) 필자의 여행을 뽐뿌질 했던 몇 권의 책들을 소개하고자 한다. 모름지기 독서라는 활동이 독자와 작가만의 은밀하고 개인적인 귀속말이기 때문에 이 글이 어느 정도의 공감을 이끌어낼지는 자신이 없지만, 개인적인 취향이라는 커다란 방패막 뒤에 숨어 조심스럽게 글어 적어보고자 한다.


01. 여행이란 위대한 여정을 알려준 책_바람의 딸



필자에게 처음 "배낭여행"이라는 세상을 알려준 책은 한비야 씨의 <바람의 딸> 시리즈이다. 

한비야 씨는 한국 배낭여행의 1세대였고, 그녀가 취했던 여행의 모습들은 후에 많은 후배 여행자들의 롤 모델이 되기도 했다. 물론 그녀의 여행 방법에 대해선 다양한 재평가가 이루어지고 있고, 각자의 호불호가 있을 것이다. 필자도 한비야 씨의 여행 방법에 대해선 공감하지 못하는 부분도 있지만(무턱대고 따라 하기엔 상당히 위험합니다!!), 오늘은 그저 책에만 집중해 보겠다.


한비야 씨의 책은 그 시절 내가 살고 있는 대한민국 외에 다른 나라는 그저 월드컵에 출전한 서른두 개의 나라들로 한정되었던 필자의 세상을 넓혀 주었다. 그녀가 여행을 했던 나라들은 대부분 처음 들어보는 나라들이었고, 그 나라의 사람들과 문화와 음식들은 내 상상의 범위를 벗어나 가늠조차 불가능한 세상이었다. 

책장을 한 장씩 넘기며 예기치 못했던 풍경들을 만나면서 내가 살고 있는 세상이 얼마나 비좁았는지를, 내가 갈 수 있는 세상이 얼마나 넓은 지를 알 수 있었다.

도서관의 한 쪽 귀퉁이에서 찾아낸 보물 같았던 이 책은 처음 필자에게 "여행"이라는 꿈을 꿀 수 있게 해주었다. 그리고 언젠간 그녀처럼 나도 내 발로 직접 미지의 세계를 걸어보겠다는 다짐을 노트 한편에 적어두기도 했다.


물론 지금에 와서 이 책을 읽는다면 우리는 상당한 정보의 혼란을 겪게 될 것이다. 그녀가 세계여행을 했던 그 시절은 그야말로 아득한(?) 오래전 이야기니까. 하지만 우리는 이 책을 통해서 여행을 대하는 그녀의 마음을 취할 수 있을 것이고, 그것들을 잘 소화시켜 자신만의 여행 모습을 만들어 낼 수 있을 것이다. 어느 정도의 자극제로선 충분히 충분한 책이다. 

덧붙이자면 다시 한번 생각해봐도 그 아득했던 시절, 그것보다 더 아득했던 세계를 혈혈단신으로 여행했던 한비야 씨의 용기와 마음에 박수를 보낸다.



02. 여행을 떠날 수 있게 도와준 책_그리스인 조르바


자, 일단 한비야 씨의 책을 통해서 필자는 넓은 세상을 알게 되었다. 

반도 국가에 속한, 그리고 북한이라는 참 애증의 존재 덕분에 비행기와 배를 타지 않고서는 다른 나라를 향할 수 없는 대한민국의 국민인 필자의 물리적 한계가 상당 부분 극복된 것이다.  

대학생이 된 뒤 정말로 그녀처럼 여행을 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된 것이다. 하지만 정작 떠날 수 있는 환경이 제공되자 필자는 오히려 두려워졌다. 여행이라는 것을 어디에서부터 어떻게 시작해야 하는지에 대한 절차적 문제는 차치하고서 그것은 마음의 문제였다. 


여행을 떠날 수 있는 마음.

그것으로부터 도망치지 않고 견고히 그것을 받아낼 수 있는 마음.

그 마음이 스무 살의 필자에겐 없었던 것이다. 

그때 읽었던 책이 바로 "니코스 카잔치키스"의 <그리스인 조르바>였다. 물론 이 책은 여행에 대한 책은 아니었다. 누구나 알고 있듯이 꽤 유명한 고전 소설이었고, 당시 지성인이라면 이 정도의 책을 읽어줘야 한다는 부끄러운 허세로 집어 들었던 책이었다. 그런데 이 책이 필자의 뒤통수를 강하게 가격했다. 

책의 주인공인 조르바는 마음의 소리에 정직하고 솔직하게 반응하는 인물이었다. 자신이 무엇을 원하고, 무엇을 잘 하며, 무엇을 해야 행복한지를 분명히 알고 있었고, 그것에 온 열정을 다 바쳐 실행했다. 

성공과 실패는 그에게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다. 책 속에서 조르바는 무모했고 용감했다. 그리고 그는 그가 한 일에 대한 후회를 결단코 하지 않았다. 꿈을 좇아간 방향과 과정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함을 느꼈던 조르바. 여행에 대한 용기가 부족했던 필자와는 정 반대편에 당당히 서 있었던 조르바. 책 속의 조르바가 필자에게 여행을 떠날 수 있는 용기를 주었다.


지금, 바로 여기에서 내가 원하는 것. 그것이 행복이다.


조르바 인생의 가치관이 책을 통해 필자에게 옮아왔고, 그래서 필자는 드디어 떠날 수 있었다. 

지금, 바로 여기에서 내가 원하는 것. 그것이 바로 여행이었으니까. 행복이 눈 앞에 있는데 그것을 모른 척하는 건 비겁하고 슬픈 일이었으므로. 

첫 배낭여행을 떠나는 필자의 배낭 속 소중하게 자리하고 있었던 책도 바로 <그리스인 조르바>였다.


여행을 떠나 자신의 꿈 앞에 망설이고 두려운 사람이 있다면 꼭 <그리스인 조르바>를 읽어보길 권한다. 꿈을 향한 조르바의 무모함과 용기가 우리를 우리만의 꿈 앞으로 데려다줄 테니까.



03. 여행의 기록을 알려준 책_끌림


<그리스인 조르바>의 조르바에게 용기를 얻어 여행을 시작하게 된 필자에겐 당시 두 가지 목표가 있었다.

하나는 서른 살이 되기 전에 30개국을 여행하는 것과, 필자의 여행의 기록물인 책을 출판하는 것. 

무지하면 무모해진다고 했던가. 이제 막 여행을 시작한 녀석치곤 꽤나 당찬 포부였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운이 좋게도(필자의 장점은 운이 좋다는 것이다. 스스로의 노력으로 인한 것이 아니라 자랑하긴 뭣하지만) 필자는 서른 살이 되기 전 두 가지 목표를 다 이루었다.


사실 30개국을 여행하는 것은 그다지 어렵진 않았다. 느긋하고 게으르기까지 한 필자의 성격을 조금만 채찍질한다면 꾸역꾸역 이루어 낼 수 있었다. 문제는 여행의 기록들과 감상들을 책으로 엮어내는 작업이었다. 책을 읽는 건 좋아했지만 이과 출신인지라(그렇습니다. 필자는 이과입니다. 문학보다는 미분과 적분에 강하지요.) 글을 어떻게 써야 하는지에 대한 감이 없었던 것이다. 

맨땅에 헤딩을 하는 것도 한계가 있었다. 당시 필자는 맨땅조차 보이지 않았었느니까.


그래서 필자가 읽었던 책이 "이병률"작가님의 <끌림>이었다. 

서점의 여행 에세이 코너에서 집어 들었던 이 책을 필자는 처음부터 끝까지 손으로 필사를 하기 시작했다. 여행지의 풍경들과 그곳에서의 생각들, 그 너머의 감상들과 그곳에 엮인 사람들의 이야기들을 어떻게 글로 풀어내야 하는지를 <끌림>을 통해서 배울 수 있었다.

이병률 작가님의 글은 시인답게 간결한 글 안에 많은 감성들을 아름답게 풀어내고 있었다. 또 여행이라는 것이 보고 먹는 것에만 한정되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 많은 감정들을 나의 이야기로 풀어낼 수 있다는 것을 알려 주었다. 그것이 상당히 아름답고 멋있는 일이라는 것 까지.

여담이긴 하지만 후에 필자는 이병률 작가님과 연이 닿아 책을 펴낼 수 있었다. 작가님은 이런 스토리를 잘 모르겠지만 말이다.


물론 여행의 기록이라는 것은 상당히 다양한 모습으로 결과물들을 만들어 낼 수 있다. 

그것엔 옳고 그름도 없을뿐더러 그것들 사이에 순위를 메길 수 있는 문제도 아니다. 

누군가는 사진으로, 누군가는 글로, 또 다른 누군가는 그 둘 모두를 이용하기도 한다. 눈에 보이는 기록물이 아니라 그저 자신의 눈과 마음에 그것들을 세기는 여행자도 있을 것이다. 여기서 필자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여행 중이건, 혹은 여행을 다녀온 후이건 여행을 곱씹고 되새겨보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과정에 많은 도움이 되는 것이 바로 여행을 기록해보는 일일 것이다.



04. 여행을 유지하게 도와준 책_여행의 기술


그것이 무엇이건 십 년 정도의 시간이 흐르면 처음에 품었던 마음이 마모되기 마련이다. 의미는 퇴색되고 마음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버릴 수도 있다.

필자의 여행도 이것을 비켜나갈 순 없었다. 누군가에겐 평생 한 번도 이루지 못한 꿈일지라도 그것이 일상이 돼버린 누군가에겐 그 의미가 닳고 시시해져 버리고 만다.

필자에게 여행이 그랬다. 반복해서 비행기에 오르고, 기계적으로 낯선 곳을 방황하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처음 여행을 대했던 눈부시게 찬란했던 마음이 점점 식어가기 시작했다. 할 수 있는 것이 여행뿐이었지만 그것으로부터 받아오는 마음들이 조금씩 허물어졌다. 쉽게 말해서 매너리즘에 빠진 것이다. 

그런 마음들을 회복하게 도와준 책이 "알랭 드 보통"의 <여행의 기술>이었다. 

드 보통은 철학자답게 책을 통해서 여행이라는 것의 본질과 그것에 얽힌 여행자의 마음에 대해서 철저하고도 날카롭게 분석했다. 여행이라는 것이 단순히 일상의 탈출구로서 환상적인 도피처가 아니라 그것 또한 일상이며 그것을 부드럽게 다룰 수 있는 기술에 대해서 설명해주었다.


여행도 현실 안에 속해있다. 내가 발 딛고 서있는 현실과 분리된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여행이 끝난 뒤. 다시 현실 속에서 여행을 희망할 수 있는 것이다.

우리의 여행이 단 한 번으로 끝날 것이 아니라면, 여행을 유연하게 대하고 현명하게 바라볼 수 있는 새로운 시선도 필요하다. 그것은 다시 한번 시작된 당신의 마음의 어느 부분을 분명히 간지럽힐 테니까.



05. 여행을 떠나는 당신의 노트 위에 적어둘 말


마지막으로 필자의 여행 노트 위에 진하고 선명하게 적혀있는 말을 소개하며 글을 마무리하고자 한다.


아무것도 가진 게 없다고 생각하지 말자.

가진 게 없어 불행하다고 믿거나 그러지 말자.

문밖에 길들이 다 당신 것이다.

당신은 당신이 주인이었던 많은 것들을 모른 척하지는 않았는가._끌림 중.



오늘, 당신이 행복할 수 있는 일을 향해 한 발자국 더 다가가길 바란다. 

그것의 주인은 처음부터 당신이었다.





가르치고, 여행을 하고, 사람을 만나고, 글을 씁니다. 
저서로는 “첫날을 무사했어요” 와 “버텨요, 청춘”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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