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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전호 Sep 02. 2017

빵에 관한 이야기

스리랑카는 왜 빵집이 이렇게 많죠?

나는 스리랑카를 여행한 적이 있다. 

그리고 정말이지 스리랑카를 여행하는 내내 실컷 빵을 먹었다(스리랑카를 여행해보신 분들은 이 말이 무슨 말인지 알 것이다). 

어쩌면 스리랑카라는 나라는 스스로를 증명해 낼만한 많은 것들을(그러니까 무수히 많은 빵들 말고) 가지고 있을지도 모른다. 가령 거대한 불교 유적지라던가, 광활한 립톤의 녹차 밭이라던가, 그것도 아니면 직접 눈으로 보게 된다면 더 놀랍기만 한 시기리야 유적이라던가 말이다. 하지만 이 모든 것들을 뒤로하고 내가 스리랑카를 여행하는 동안 무엇보다도 놀란 것은 스리랑카에는 빵집의 수가 무척이나 많다는 사실이었다. 그리고 빵이 굉장히 맛있었다는 것.

가령 스리랑카라는 나라가(어쨌든 스리랑카는 섬나라니까) 바다에 잠긴다면 스리랑카의 모든 것들이 바다의 심해 깊은 곳으로 가라앉아 사라져 버린다고 해도 왠지 모르게 수많은 빵집들은 바다 위에 둥둥 떠올라 서로 손을 맞잡고는 강력한 스크럼을 짤 것만 같다. 

“걱정 마. 우리들만 있다면 언제든지 스리랑카를 재건할 수 있을 테니까.”라고 말하면서 말이다.


스리랑카에는 내가 느끼기엔 빵집을 제외하고 음식점들은 그 수가 상대적으로 적을뿐더러 대부분 알 수 없는 스리랑카 말로 적힌 알 수 없는 음식들을 팔았다. 그리고 길 위엔 간간히 은행이 있었고, 간간히 잡다한 물건들을 파는 잡화점이 있을 뿐이었다. 그러니까 한 마디로 스리랑카의 상점은 대부분 빵집이라는 사실이다(물론 이건 내가 빵집을 특히 주목해서 관찰해서 일지도 모른다. 나란 사람은 동시에 여러 가지를 신경 쓰지 못하는 사람이니까).

제법 멋들어진 장식장에 여러 종류의 먹음직한 빵을 파는 빵집에서부터 잡화점 한 귀퉁이에 허술하게(그 종류는 상관없이) 빵을 쌓아두고 팔기도 했고, 때론 빵을 한가득 실은 트럭이 동네 곳곳을 돌아다니며 빵을 팔기도 했다. 

도대체 이 나라 사람들은 빵을 얼마나 먹어치우는 거야?라는 생각이 들 정도니 나는 정말이지 많은 빵들을 스리랑카에서 만날 수 있었다.


그렇다면 도대체 왜 스리랑카에는 이렇게 빵집이 많은 것일까? 

아마 스리랑카 사람들은 빵을 무척이나 사랑하기 때문일 수도 있고 빵집을 개업해서는 돈을 꽤나 많이 번 사람들이 많아 너도나도 빵집을 차리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이런 이유들로 나는 많은 빵들을 마주쳤고, 인사했고, 안부를 묻기도 했고, 그것들을 입속에 넣기도...(뭔가 좀 잔인해 보이네요) 하면서 스리랑카를 여행했다. 그리고 머물렀던 시간이 늘얼갈 수록 차츰 예고도 없이 튀어나오는 빵들에게 익숙해졌다. 

그건 일종의 포기였는지도 모르겠다. 존재하는 빵들에게도 분명 이유라는 게 있을 것이고, 그것은 한낱 여행자가 무시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아무튼 스리랑카는 빵집이 많다. 아마 인구 1명당 빵집의 개수를 따진다면 빵의 고향이라고 불리는 프랑스와 1위를 다툴지도 모르겠다. 그냥 이건 내 생각이니 누군가 정확한 수치를 들이대며 반박을 하신다면야 저는 할 말은 없습니다만.


사실 난 스리랑카를 여행하기 전에는 빵과 스리랑카 사이의 어떠한 연관성도 찾지 못했었다. 그러니까 나에게 있어서 스리랑카와 빵은 완전 별개의 것이었다. 

스리랑카라는 정경엔 빵이 없었고, 물론 빵이라는 정경에도 스리랑카는 없었다. 마치 스타벅스와 해물파전처럼 그 둘은 아무 연관성이 없었다. 게다가 사실 나는 빵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빵은 나에게 언제까지나 밥 대신 이라기보다는 간단히 요기를 할 때나 먹는 음식이다. 바케트나 카스텔라, 호밀빵 등의 빵의 종류를 나누는 것도 나에겐 아무 의미가 없다. 나에겐 그런 모든 종류의 것들은 단순히 빵일 뿐(이 부분은 분명 나름의 개성과 맛을 가지고 각자의 존재를 증명해 나가고 있는 수많은 빵들에게는 미안한 일이다).

어쨌든 스리랑카를 여행하는 내내 난 질리도록 빵을 먹었었고(스리랑카에선 빵으로 끼니를 해결하는 것이 가장 저렴한 식사방법이었다) 때론 매우 괜찮다 싶은 빵집을 발견하기도 했었다. 그런 빵집을 발견하면 왠지 그 도시 자체가 좋아지게 되기도 하고, 계획했던 일정보다 며칠은 더 머무르기도 했다. 단순히 빵 때문이라고 하면 웃길지도 모르겠지만 정말 그랬다. 그렇게 맛있는 빵을 먹고 있을 때면 ‘여행이야 어떻게 되든 상관없어. 어차피 세상은 맛있는 빵 하나면 충분한 곳이니까’라는 이상한 생각을 해버리고 만다. 이상하게도 스리랑카의 빵들은 그런 묘한 힘을 가지고 있었다.

 

계속 빵만 먹을 순 없었기에 나는 종종 다른 음식을 먹기도 했었다. 왠지 빵만으로는 내 몸에 필요한 영양분을 충분히 공급해주고 있다는 생각이 도무지 들지 않았기 때문에. 영양분으로 따져보면 빵은 완전식품은 아니었으니까. 하지만 빵 대신 선택한 다른 음식들은 빵을 먹을 때만큼의 만족감을 나에게 주지 못했고, 결국 내가 다시 빵을 먹어야만 하는 이유를 제공해 줬을 뿐이었다.

스리랑카를 여행하는 동안 난 내가 먹어야 할 1년분의 빵을 모조리 먹어치운 듯했다. 정말이지 수치적으로 따져도 충분히 그 정도의 빵은 먹었을 것이다. 이젠 됐다 싶을 때조차 나는 빵을 먹었었으니까.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난 스리랑카에서 먹었던 빵을 생생히 기억한다. 맛도 향기도 분위기도 전부. 그리곤 정말이지 다시 한번 더 그 빵들을 먹고 싶어 진다. 이상하게 한국에 돌아와서는 빵을 잘 먹지도 않으면서 말이다.

아마도 스리랑카 사람들과 빵 사이에는 내가 온전히 담아내지 못할 만큼의 깊은 유대가 있을 것이다.

유대라는 건 시간과 공간이 쌓여가는 만큼 깊어지는 것이 당연한 것이고, 그것들 사이에 내가 끼어들 여지는 애초에 없었다. 그래서 나는 빵을 먹을 때마다 어느 정도의 현기증을 느꼈는지도 모른다.


스리랑카 사람들은 분명 빵을 많이 먹는다. 그리고 빵을 먹고 있을 때 그들은 정말이지 행복해 보인다. 스리랑카 사람들은 각자 빵에 대한 이야기 하나쯤은 가지고 있는 것 같다. 그런 추억들이 그들이 먹는 빵에 녹아있기에 그토록 맛있는 빵을 만들어 내는 건지도.



*후로 파리를 다녀왔습니다. 스리랑카만큼이나 빵집이 많더라고요. 하지만 파리의 빵과 스리랑카의 빵은 묘하게 달랐습니다. 아무래도 음식은 어디에서 먹느냐도 상당히 중요한 것 같습니다.






가르치고, 여행을 하고, 사람을 만나고, 글을 씁니다. 
저서로는 “첫날을 무사했어요” 와 “버텨요, 청춘”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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