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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전호 Mar 30. 2018

낯선 곳에서 지낸다는 것에 대해서

여행인 듯 아닌 듯

일단 여행에 관한 이야기는 아닙니다. 

여행이라는 일종의 “행위”에 대해 내리는 정의는 사람마다 각자 다르겠지요?라고 말하는 건 너무 뻔한 이야기 입니다만, 정말이지 각자가 생각하는 여행은 다릅니다,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하지만 여행에 관한 각자의 다른 정의 가운데에서도 분명 공통점은 있을 겁니다. 그것조차 없다면 우리가 여행을 떠올렸을 때 생성되는 이미지는 아마 각자의 안드로메다로 흘러가버리고 말 테니까요. 

 

그 공통점이란 우선 여행은 자신이 지내온 곳에서 벗어나 스스로에게 생경한 곳으로 떠나는 것이라는 겁니다. 그건 잠자리가 바뀌는 경험이 될 것이고, 매일 가던 단골집이 아닌 새로운 음식점에서 새로운 음식에 일종의 도전을 해야만 하는 상황을 포함합니다. 자신의 일상이 겹치는 곳에서 장을 보고, 매일 가는 단골집에서 무얼 시켜도 별로 다르지 않을(쉽게 말해서 별로 기대가 되지 않는) 메뉴로 저녁을 해결하고, 자신의 살 냄새가 배어 있는 침구에서 잠이 드는 건 아무래도 여행이라고 하기는 힘들 테니까요.  



또 여행은 기본적으로 불편함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앞에서 말했듯이 여행은 스스로에게 익숙한 환경에서 벗어나는 것이기 때문에 “당연히” 불편한 상황들을 맞닥뜨리게 됩니다. 

입에 맞지 않는 음식 때문에 부실한 식사를 하게 되는 경우도 있을 것이고, 불편한 잠자리에 뜬눈으로 밤을 새우는 경우도 있을 겁니다. 통하지 않는 언어로 오해를 쌓아갈 수도 있고, 진심은 단절되는 경우도 허다할 것입니다. 그러니까 여행이라는 세계는 핑크빛의 아름다운 상황만 존재하지는 않는다는 것이죠. 정말로요. 


이런 여행의 기본적인 공통점 위에 여행에 대한 자신만의 정의를 덧붙여가며 우리는 꾸준히 여행이라는 행위를 해오고 있습니다. 혹 하지 못하더라도 항상 꿈을 꾸면서 말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여행을 하거나 여행을 희망하는 추세(혹은 성향성)는 계속해서 증가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제는 누구의 입에서 여행이라는 단어가 흘러나온다 하더라도 전혀 어색하지 않은 세상이 되어버린 것이죠. 저희 부모님은 제 입에서 여행이라는 말만 나오면 여전히 아들은 멀리 떠나보내야만 하는 가여운 눈으로 저를 바라보시지만 말입니다. 

그것만 제외한다면 바야흐로 “여행이 일상이 되어버린 세상”에 우리는 살고 있습니다. 


 

그럼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서, 글의 첫 부분에 저는 일단 이번 이야기가 여행에 관한 이야기는 아닙니다,라고 글을 시작했습니다. 

그런 말로 글을 시작한 이유는 언제부턴가 제가 정말 기본적인 여행의 공통점조차 제대로 담아내지 못하는 여행을 하고 있어서입니다. 그러니까 이번 이야기는 여행에 관한 이야기는 아니고 여행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는 저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이건 어찌 보면 참 슬픈 일이기도 합니다. 한 사람이 어떤 분야에 10년을 넘게 종사했다면 그래도 우리는 못 이긴 척하고 그 사람을 전문가라고 불러줍니다. 저는 여행이라는 행위를 이제 10년이 넘게 해오고 있고, 제 삶에서 그것에 쏟아붓는 물리적인 시간과 공간을 늘려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럴수록 자꾸만 저의 여행은 삐걱거리기만 합니다. 그래서 요즘은 정말이지 누군가 저에게 당신의 여행은 어떠십니까?라고 물어본다면 어떻게 대답을 해야 할지를 몰라 종종 곤란해지곤 합니다. 


뭐 사실 적당히 둘러댈 수 있는 대답이야 이미 몇 개쯤 가지고 있습니다. 

나이를 먹는다는 것이 그런 것입니다. 적당히 둘러댈 수 있는 대답 몇 가지를 머릿속에 담아두고는 상황에 맞게 하나씩 꺼내 보여 줄 수 있는. 하지만 그 대답들은 분명 진실은 아닙니다. 저란 사람은 거짓말을 꽤 자주 하는 편이지만 여전히 능숙하게 하지는 못하는 터라 금방 들키고 맙니다. 

그래서 요즘은 어딘가로 여행을 갈 때에도 여행을 다녀오겠다는 말보다, 그곳에서 지내고 오겠습니다,라고 말하곤 합니다. 스스로 제 여행에 여행이라는 이름을 붙이지 않는 것이죠. 그러면 뭔가 마음이 좀 더 가볍습니다. 이렇게 말을 하고 나면 제가 여행이라는 행위를 통해 얻어 와야 할 당연한 것들을 가져오지 못했다 하더라도 조금은 뻔뻔해질 수 있습니다. 여행을 하고 온 것이 아니라 그냥 좀 적당히 지내다 돌아온 것뿐이야,라고 대답하면 상대방은 아, 그렇군.이라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거든요.


  

물론 가끔은 그것조차 통하지 않는 사람을 만나기도 합니다. 지난번엔 여행 이야기를 나누는 작은 모임에서 제 책을 읽었던(이건 분명 감사한 일입니다. 덕분에 제가 그래도 따듯한 커피 한 잔 정도 마실 여유가 생겼습니다) 여성분이 “작가님 책을 읽어봤는데요, 사실 여행 에세이라고 하기엔 좀 부족했던 것 같아요. 뭐랄까... 책을 아무리 읽어봐도 여행에 대한 기대감이 없다,라고 해야 할까요? 그냥 그곳에 한동안 지내다 온 사람의 일기를 살짝 엿본 느낌이 다예요.”라고 말하시더군요. 저는 그런 말을 들을 때면 순간 제가 손에 들고 있던 결정적인 패를 들켜버린 것 같은 당혹감에 빠지고 맙니다. 

작가님에게 여행은 무엇인가요?라는 질문을 받았을 때 제 여행은 그냥 그곳에서 한동안 머물며 조용히 지내다 오는 것입니다,라고 대답하려 했는데 받아버린 질문에 제가 할 대답이 포함되어 버린 상황이라면 한순간 몸이 허공에 붕 뜬 듯한 기분이 되어 버리거든요. 그리고 대답도 허공 속으로 사라져 버리는 것이죠.

  

사실 그렇게 낯선 곳에서 적당히 지내다 오는 것도, 그리고 그런 생활의 한 귀퉁이를 일기처럼 끄적거리는 것도 여행이진 않을까, 하는 것이 저의 솔직한 생각이긴 합니다. 물론 그런 대답에도 못마땅한 사람도 분명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어쨌든 저는 그런 저의 여행들을 글로 써냈기 때문에 그런 평가에 대해선 일종의 책임감이라는 것도 가지고는 있습니다. 물론 그것들에 크게 휘둘리진 않지만요.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여행을 하게 되면 여행을 통해서 얻을 수 있는 결과물들에 집중을 하게 됩니다. 

유명한 도시, 유명한 관광지의 상징적인 건물이나 장소에서 찍은 사진이라든지, 유명한 음식점에서 그곳에선 꼭 먹어봐야 할 음식이라든지, 아니면 정해진 기간 내에 돌아볼 수 있는 도시와 나라의 수라든지. 

맞습니다. 그건 어쩌면 자연스러운 것이고 여행이라는 건 기본적으로 그런 것들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아니 포함해야 합니다. 그러나 저 개인적으론 그런 여행이나 저의 여행(이라고 말하기엔 좀 뭔가 부족한)이나 별반 다르진 않다고 생각합니다. 

어쩌면 “여행이 일상이 되어 버린 세상”에서는 모두가 똑같이 생각하는 여행이 가지고 있는 이미지에서 살짝 벗어나 자신만의 이미지를 여행에 덧입혀 가야 하지는 않나, 라는 생각도 조심스럽게 해봅니다. 

누구나가 다 같은 여행을 하는 세상은 아무리 생각해봐도 역시나 지루할 것 같거든요. 



많은 사람들이 여행을 하면 할수록, “역시 여행은 이런 것이지” 라던가, “저건 여행이라고 말하긴 좀 뭐하지 않나?”라는 조금은 강박적인 견해들은 희미해질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이건 옳다 그르다 의 문제는 아니기 때문에 제 생각을 누군가에게 강요할 생각은 전혀 없습니다만. 

 

그러니 이제 “작가님의 여행은 제가 생각했던 여행과는 좀 다른 것 같아요.”라는 말을 듣는다면, 저는 “아, 그렇군요. 생각해보니 맞는 말씀 같습니다.”라고 대답할 겁니다. “낯선 곳에서 적당히 지내다 오는 것이 저의 여행입니다만.”이라고 대답한다면 “네? 뭐라고요?”라는 질문을 다시 받고 말 테니까요. 




가르치고, 여행을 하고, 사람을 만나고, 글을 씁니다. 
저서로는 “첫날을 무사했어요” 와 “버텨요, 청춘”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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