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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전호 Sep 29. 2018

먼 곳의 당신께 무슨 말을 건넬 수 있을까요

"지금, 갈게"라는 말

이탈리아라고 했다. 

남은 생을 살고 싶은 곳은. 피렌체에서 지내며 마음에 담아온 몇 장면의 풍경이 다시 그곳에 가면 당신을 반겨줄 것이라고. 그리고 그것만으로도 당신은 그곳에서 충분히 넘치게 행복할 것 같다고 했다. 

당신의 이탈리아엔 나와 함께였던 기억이 엉겨있지 않아 나는 조금 심술이 났다. 뭐랄까, 당신과 나의 세계를 이탈리아가 가로막고 있다랄까. 괜한 심술이 차올라 조금은 침울해졌다.

이번엔 나와 함께 가고 싶은 곳은 어디냐 물었다. 

포르투갈. 

나와 함께 가고 싶은 곳은 포르투갈이라고 했다. 그때부터 난 포르투갈을 사랑하게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그곳에 가서 당신의 이탈리아보다 한 뼘이라도 더 아름다운 기억을 당신과 함께 만들어 오고 싶은 욕심이 생겼다. 우리의 포르투갈을 만들고야 말겠다는 설익은 욕심이.

당신이 좋아하는 말이 있다.

"지금 갈게."

우리가 심하게 다투었을 때, 그래서 불편하게 먹은 저녁이 얹혀 가슴이 속이 답답하고 그것 때문에 눈을 감아도 잠들지 못했던 늦은 새벽에. 또, 먼 곳에서 당신을 발견하고는 서로의 눈이 마주쳤을 때조차 전화를 바로 끊는 것이 아니라 전화기 넘어 "지금 갈게"라는 말을 당신은 나에게 듣고 싶어 했다.


당신은 그런 사람이었다. 내가 부족하고 미안하게 건넨 그 말 한마디면 모든 게 다 괜찮아지는 사람. 가슴에 얹혔던 무언가도 말끔히 씻겨 내려가는 사람. 그래서 이런 모양의 나조차도 당신에겐 괜찮은 사람으로 여겨버리는 버겁게 따듯한 사람.

당신이 먼저 돌아가 버린 리스본의 좁은 골목에서 나는 혼자였다. 

불안정한 통화음 넘어 그거보다 더 불안정했던 먼 곳의 당신은 가슴에 무언가가 얹혀 답답하다고 했다. 함께여서 좋았던 포르투갈도 혼자 돌아와만 했으므로 조금은 싫어졌다고도 말했다. 

시차도 시차였겠지만 당신이 건넨 불안보다 내가 더 불안했던 건 당신에게 "지금 갈게"라는 말을 할 수 없다는 사실이었다. 

그 말 한마디면 모든 것이 다 해결될 텐데. 우리를 통과하고 있는 계절이 이리 추울지라도 당신은 다시 나에게 웃어줄 텐데. 

당신과 함께여서 모든 것이 완벽했던 이곳에서 모든 것을 완벽하게 만들었던 말은 순간 나에게 등을 돌린다. 

당신 없는 곳에 놓인, 지금 당장 갈 수 없는 곳으로 당신을 돌려보내버린 내가 차마 꺼낼 수 없었던 그 말은 차갑기만 했다.

당신에게 "지금 갈게"라는 말을 할 수 없을 때 난 대신 무슨 말을 해야 할까?

기다려달란 말은 비겁할 것 같고, 괜찮냐 묻는 건 위선일 것 같았다. 사랑한단 말은 너무 선명할 테지만 그 말을 꺼내면 정작 당신이 없는 이곳에서 내가 허물 질 것만 같았다. 결국 나는 아무 말하지 못했다.

우리의 침묵이 길어졌다.

침묵의 이유가 무서워 나는 말을 잇지 못했다.

언젠간 당신에게 말할 수 있을까? 

이제는 쓸쓸함을 이해했다고. 외로움이란 건 사랑이 만들어낸 심술궂은 장난이라는 걸 알았다고. 그리고 나에게 남겨진 쓸쓸함과 외로움의 모든 조각들을 모조리 끄러 모아 당신에게 내어줄 완성된 사랑 하나를 만드는 실력도 쌓았다고. 

그래서 지금 갈게, 라는 말보다 더 먼저 당신에게 도착하겠다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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