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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전호 Dec 22. 2018

시리아에서 만난 친절함 한 조각

벌게진 마음

몇 번을 망설이다가 결국 데이르에조르로 향하는 버스 티켓을 사고 말았다. 

사실 요르단에서 만나기로 한 지인이 있어서 시리아에서의 시간이 촉박했었지만 다시 한번 데이르에조르에 가고 싶었다. 


2년 전 나는 시리아의 동쪽 끝자락, 작은 마을인 데이르에조르에 간 적이 있다.

꽤 오랫동안 머물렀었지만 머무는 내내 별다른 감흥이 없었던 마을이었다. 그냥 그곳에선 시간이 조금은 느리지만 두껍게 흘렀다는 것과 그것 만큼 그곳 사람들의 미소가 여전히 나에게 또렸했다는 것. 

그것뿐이었는데 한국에 돌아와 왜 그리도 많이 생각이 나던지. 도무지 무엇 때문인지 나도 잘 모르겠어서 이번 기회에 다시 한번 가봐야겠다 마음먹었던 것이다. 

기억의 작은 파동이 방향이 다른 큰 물결을 일으켜버린 상황.



어쩌면 시간이 촉박했기 때문에 갈 수 없지 않을까 생각도 했었다. 그런데 가지 못할 이유들이 늘어날수록 꼭 그곳에 꼭 가고 싶었다. 참 알 수 없는 고집이다. 

조금은 늦은 저녁, 데이르에조르의 터미널에 내리자 익숙한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한 숨 크게 들이쉰 뒤 멈춰있던 택시에 올라탔다. 시리아의 여느 시골 마을과 마찬가지로 이곳의 택시는 호객행위가 없어 좋았다. 하지만 좀처럼 영어를 할 줄 아는 기사가 만나기가 힘들어 난감하기도 하다. 좋은 두 가지를 다 가지려 하는 건 욕심이다.



택시 기사에게 2년 전 내가 머물렀던 호텔의 이름을 말하고는 창 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얼마만큼 변했는지를 확인하려는 것보다는 변하지 않고 멈춰서 여전히 여전히 이길 바라는 마음이었다. 

하지만 시선에 담긴 변하지 않은 풍경도 내가 다시 이곳에 온 이유를 알려주지는 않았다. 알려주지 않는 무언가를 계속 바라보기엔 몸도 마음도 지쳐있었으므로 그냥 눈을 감았다. 

그런데 택시기사가 내가 알아듣지 못하는 시리아 말을 하면서 자꾸만 출발을 하지 않는다. 나에게 손을 휘저으며 연신 다른 호텔 이름을 말했다. 자신이 말하는 호텔에 가자고 하는 것 같았다. 순간 마음이 좋지 않았다. 여행지에서 택시기사들은 자신들과 연관이 있는 호텔에 여행자들을 데려가려 한다. 그리곤 그 숙소에서 일종의 커미션을 받는 형식. 

이 택시기사도 그런 사람이란 생각이 드니 벌컥 화가 났다. 그리고 아득바득 스스로에게 우겨서 온, 순수했던 데이르에조르도 이런 모습으로 변해버렸다고 생각하니 씁쓸하기도 했다. 오지 말았어야 했나 라는 후회가 스멀스멀 올라오기 시작한다. 

그냥 좋은 기억으로 끝낼 걸. 



나는 단호하게 내가 가고자 하는 호텔의 이름을 다시 한번 큰 목소리로 뱉어냈고 입을 닫아 버렸다. 표정은 무정하고 단단하게. 여행지에서 흔히 발생하는 작지만 뼛속까지 날 지치게 만드는 전쟁이 시작된 건이다. 기사는 자꾸만 난감한 표정을 짓더니 졌다는 듯 택시를 출발시켰다. 결국 내가 승리한 것이다. 속으로 조금은 뿌듯해했다. 


10분쯤을 달린 택시는 나를 시장 옆 골목에 데려다 놓았다. 기억에 익숙한 골목과 자주 갔던 음식점이 눈에 들어오니 나는 마음이 조금 누그러졌다. 조금은 가벼워진 마음으로 택시비를 치르고 짐을 내렸다. 골목으로 걷기 시작하는데 택시기사가 뒤에서 날 따라왔다. 

아니, 내가 처음부터 가려고 했던 호텔에서도 나를 핑계로 소개비를 받으려 하나? 괘씸한 생각이 들어 나는 조금 더 속도를 높여 성큼성큼 걷기 시작했다. 

뒤를 돌아보니 여전히 택시기사는 날 따라오고 있었다. 나는 골목의 두 번째 모퉁이를 돌았다. 기억이 남아있는 익숙한 길이었기에 자신이 있었고, 그러므로 걸음은 당당했다. 이제 곧 호텔이 나올 테고 난 택시기사를 모른다고 분명하게 숙소 주인에게 말할 것이다. 그렇게 마음먹고는 당당히 모퉁이를 돌았는데, 이런 호텔이 없다. 호텔이 있어야 할 건물은 자전거 수리점과 야채가게만 있었다. 당황한 내가 야채가게 주인에게 호텔 이름을 말하니 작년에 폐업했다고 한다. 



아... 마음속에 무거운 돌덩이 하나가 쿵하고 내려앉는다. 

처음부터 택시기사는 내가 말했던 호텔이 없어졌다고 나에게 설명했던 것이다. 그의 말에 귀를 닫고 아득바득 우긴 고집스러운 여행자가 늦은 저녁 이미 사라져 버린 호텔을 찾아 헤맬 것이 걱정이 되어서 자꾸만 내 뒤를 따라왔던 것이다. 

말이 통하니 않으니 설명할 수 없었을 테고, 고집으로 똘똘 뭉친 내가 마음을 닫아버렸으니 나란히 걷지 못했을 테지. 그럼에도 자꾸만 내가 불안하고 가여워 발걸음을 돌릴 수 없었던 것이다.



정말 왜 이 모양인가. 

왜 이리 못나고 왜 이리 제멋대로 인가. 

한 번만, 단 한 번만 남자와 눈을 맞추고 눈을 들여다봤다면 진심을 알았을 텐데. 그 모든 진심들 앞에서 눈을 감아버렸던 나는 얼굴도 벌게지고 마음도 벌게져 버렸다. 

남자가 난감해하는 나에게 다가오더니 가방을 들어주었다. 그리곤 처음에 자신이 말한 호텔로 가자고, 이곳에서 가까우니 걸어갈 수 있다고 몸짓으로 설명했다. 그의 눈은 여전히 진심이다. 처음부터 줄곧. 

그것에 비하면 난 도대체 그에게 무엇을 건넸던 걸까? 무례하다고 말하기도 부끄러웠다. 그렇게 벌게진 마음을 어쩔 줄 몰라하며 나는 죄인처럼 남자의 뒤를 따라갔다.  



잠시 후 도착한 호텔. 하루 숙박비는 350파운드였다. 2년 전 내가 묵었던 숙소는 200파운드. 비쌌지만 이제 돈은 중요하지 않았다. 난 아끼고자 했던 그 돈 이상의 못난 마음을 남자에게 뱉어버렸고, 남자는 그것 이상의 착한 마음으로 날 대했으므로. 

방에 짐을 두고 숙박비를 지불하러 내려왔는데 남자가 숙소 주인에게 자꾸 뭔가를 설명하고 있었다. 오늘 있었던 이야기를 하는 것 같아서 난 다시 한번 창피해졌다. 빨리 저 남자가 사라졌으면 했다. 그때 숙소 주인이 2년 전에는 얼마에 묵었느냐 나에게 물어보았다. 200파운드에 묵었다고 말하니 300파운드에 해주겠단다. 남자가 내 이야기를 설명한 것이었다. 2년 전 머물렀던 싼 숙소를 찾아온 여행자이니까, 그리고 자기가 데려온 손님이 좀 싸게 해 달라고. 


도대체 남자는 나에게 자꾸 왜 이러는 걸까. 왜 자꾸만 나를 이리도 어렵게 만들어 마음이 벌게지게 하는 걸까. 이런 못난 마음을 들켜버렸는데, 진심 앞에 벌컥 화를 내버렸는데, 나는 이제 어떤 마음으로 이곳을 여행해야 하는 걸까.



시리아의 데이르에조르엔 진심을 가득 안고 사는 택시기사가 있었고, 그곳에서 난 다시 또 이곳을 와야 하는 이유를 하나 떠안고 돌아왔다.

2년 전에 내가 이곳에서 만났던 따듯했던 친절함 들을 떠올렸었고, 그것 때문에 지금 내가 이곳에 와있다는 조금은 부끄러운 이유를 확인했다. 


이제는 이곳에서 내 몫에 넘치게 받았던, 갚아야 할 몇 개의 붉은 마음들이 그 어느곳에서 이곳 사람들의 마음을 닮아 전해지길 희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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