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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전호 Apr 03. 2021

프롤로그

 나는 지금 파리의 낯선 카페에 앉아있다. 맞은편엔 앙투안이 있다. 그는 얇은 손가락으로 담뱃갑에서 말보로 한 개비를 꺼내더니 입에 물었다. 그리고는 한 개비를 더 꺼내더니 나에게도 권했다. 앙투안은 담배를 피우기 위해서 일부러 실내가 아닌 녹색 차양 아래 야외 테이블에 자리를 잡고는 날 기다리고 있었다. 애연가가 많은 파리라고 해도 실내는 금연일 테니까. 난 고개를 저으며 사양했다. 아무래도 공복에 담배는 내 취향은 아니다. 게다가 아직 이곳의 공기에 익숙해지지 않은 탓도 있겠다. 아니, 시차일 수도. 난 고작 두 시간 전에 파리에 도착했으니까.

 알겠다는 듯 가볍게 고개를 끄덕인 앙투안은 주머니에서 라이터를 꺼내고는 입에 물고 있던 자신의 담배에 불을 붙였다. 한 모금 깊게 머금고는 그것 만큼의 연기를 입으로 내뿜었다. 이제야 좀 살 것 같다는 묘한 안도감이 앙투안이 내뿜는 담배연기에 담겨 있었다. 잠시 저 먼 곳을 쳐다보던 그의 표정은 한결 더 평온해졌다. 대부분의 흡연가들이 그럴 것이다. 담배는 니코틴 중독이니 어쩌니 해도 결국은 그 한 모금이 건네는 위안이다. 설명되지 않고 이해의 영역을 뛰어넘어 몸 깊숙이 침투해 이내 모든 것을 안정시켜주는 위안. 앙투안 손끝의 담배는 지지직 거리는 소리와 함께 빨간색을 띠더니 이내 잠잠해졌다. 순식간에 그와 나 사이의 공기가 탁해졌고, 비릿한 담배 냄새가 내 코를 통해 뇌로 전달됐다. 앙투안은 연이어 세 번 담배를 거칠게 빨았다. 빨간 불빛은 마치 심장 박동처럼 세 번 요동쳤다. 여리지만 강하게. 그리고 그만큼 탁한 공기와 담배 냄새는 진해졌다.


 연한 갈색 곱슬머리와 마른 체형만큼이나 길고 얇은 뼈, 키가 큰 앙투안은 어릴 적 모습이 거의 남아있지 않았다. 예전엔 모든 게 둥글기만 한 귀여운 개구쟁이 아이였던 기억이 어렴풋이 있는데. 이제는 얼굴을 지나는 모든 선들이 굵고 강해졌다. 남자가 된 것이다. 아마 길에서 우연히 마주쳤다면 서로를 몰라보고 지나쳤을 것이 분명했다. 당연한 일이다. 내가 앙투안을 마지막으로 본 것은 20년 전쯤, 할머니의 장례식이었으니까. 그땐 나도 앙투안도 모두 어린 꼬마에 불과했다. 할머니의 죽음을 인지해 그것만큼의 슬픔을 느끼기도 어려웠던 어린 나이의 우리가 여전히 남아있을 본질적인 무언가를 기억하고 있는 건 역시 무리였다.

 파리에서 태어나 파리에서 자란 앙투안과 과연 말이 통할지 걱정이 되었지만, 그는 약간의 한국어와 유창한 영어를 했기 때문에 큰 문제가 되지는 않았다. 그는 집에서 엄마와 대화를 할 때는 주로 한국어를 사용한다고 했다.

 앙투안은 고모의 아들이다. 그러니까 나와는 사촌 지간인 셈이다. 나는 어렴풋이 남아있는 앙투안에 대한 가냘픈 기억을 근거로 다시 한번 그의 모습을 찬찬히 살펴봤다. 아무렇게나 풀어헤친 곱슬머리가 그의 눈을 절반쯤 덮은 채 흘러내려 코를 중심으로 좌우로 갈라져 있었다. 그사이 살짝 숨어 연하게 반짝이던 파란빛이 도는 검은 눈동자엔 하얀 구름 몇 자락이 반사되어 빛나고 있었다. 볼이 살짝 파여 있어 조금 말라 보이긴 하지만 얇게 이어진 턱선 덕분에 날카롭고 세련된 느낌이었다. 하얀 얼굴에 퍼진 갈색 주근깨들이 투명한 피부에 작은 섬들처럼 떠있었다. 앙투안이 내뿜는 담배연기가 그의 높고 얇은 코를 빠져나와 두 눈 사이의 깊은 계곡을 지나 갈색 곱슬머리 숲으로 사라지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마치 잘 짜인 한 편의 마임을 보는 것처럼 완벽한 느낌이었다. 자리에서 일어나 박수를 치며 앙코르를 외치고 싶을 만큼.

 진한 베이지색 면바지에 그것보다 더 진한 갈색 로퍼, 감색 니트 위에 가벼운 청색 코트를 입은 앙투안은 파리지앵이라는 말이 딱 들어맞을 만큼 멋있었다. 옷을 입은 그의 스타일이라기보다는 그것을 소화해 내고 있는 일종의 분위기랄까. 한국과 프랑스의 피가 반씩 섞여있는 일종의 조화로운 동서양의 화합. 갑자기 청바지에 까만 맨투맨티 하나만 덜렁 걸치고 있는 내가 조금은 초라하게 느껴졌다.


 내가 멀리 파리까지 오게 된 이유를 천천히 듣고 있던 앙투안은 테이블 위 담뱃갑을 만지작 거리더니 다시 담배 한 개비를 꺼내어 입에 물었다. 담배 냄새가 자꾸만 날 유혹했다. 이번엔 나도 한 개비 달라고 했다. 나 스스로도 정리되지 않은 이야기를 그에게 내뱉고 나니 조금은 후련한 기분과 동시에 아이러니하게도 도대체  나는 왜 여기 와 있는지 스스로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담배 한 모금은 위안이 된다.

 “그러니까 일종의 선의에 가까운 거네.” 앙투안이 내가 내뿜은 담배연기가 사라지길 잠잠히 기다렸다 말했다. 내 눈을 찬찬히 바라보면서 동시에 의자에 기대고 있던 몸을 내쪽으로 기울였다. 한국의 피가 섞여있지만 그의 태도는 역시 나고 자란 프랑스 쪽에 가깝다고 나는 생각했다. 그와 대화를 나눌 때 그가 내 이야기를 집중해 듣고 있다는 따듯한 느낌이 건너왔기 때문이다. 몇 되지는 않지만 내가 만난 프랑스 사람들은 대부분 그런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나는 당신의 이야기를 진심을 다해 매우 집중해서 듣고 있습니다, 라는 담배연기처럼 희미하지만 분명히 확인할 수 있는 믿음을 그들은 상대방에게 건넬 줄 안다.

 “우리 엄마가 항상 말했던 착한 마음. 그거 아니야?” 말을 이어가며 나를 바라보던 앙투안의 눈빛은 더욱 깊어졌다. 그의 파란빛이 도는 검은 두 눈동자 안, 두 개의 뭉게구름이 헤엄치고 있었다. 따듯하게 천천히.

 “그럴 수도. 확신은 없지만.” 나는 손가락으로 담배를 튕겨 재를 털어냈다. 투명한 재떨이엔 짧은 담배꽁초가 수북했다. 고민이 많은 사람이 담배꽁초 수만큼 많은가 보다. 이곳 파리에도.

 앙투안의 말처럼 정말로 선의의 마음 때문에 내가 이곳에 온 것일까, 라는 의문이 들었다. “차라리 그 정도의 이유였으면 좋겠어. 그렇다면 혼란스러운 마음이 조금은 사라질 테니까. 적어도 네가 말한 착한 마음이 이유라면 나는 내가 이곳에 온 이유를 나에게서 찾지 않아도 되니까. 말 그대로 착한 마음 같은 건 상대방에게 향하는 거잖아.” 나는 혼란스러운 마음이 사라지길 바라면서 담배를 비벼 껐다.

“그래. 이유가 무엇이건 일단 파리에 왔다는 게 중요하지. 안 그래?" 앙투안은 내 혼란스러운 마음에 심플한 마침표를 찍어줬다. 그리고는 "파리에 있는 동안은 내 집에서 지내. 방도 하나 남으니까.” 라며 그의 착한 마음을 나에게 건넸다. 

 그는 가방에서 여분의 키를 나에게 건넸다. 빨간 에펠탑 열쇠고리가 걸려 있었다. 에펠탑은 별로지만 빨간색은 좋아하니까. 찾기도 쉽고.라고 앙투안은 말했다.

“집 주소는?” 내가 빨간 에펠탑 열쇠고리에 걸린 열쇠를 손에 쥐며 물었다.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앙투안은 페이스북 메시지로 주소와 사진을 보내주겠다고 했다. 구글 지도를 통해서 금방 찾을 수 있을 거라고. 그러고 보니 앙투완과의 연락은 계속 페이스북 메시지로 했었다. 나는 그의 전화번호도 몰랐다. 급한일이 생겨 전화를 해야 하면 어떡하지, 라는 생각이 잠시 스쳤지만 전화번호를 물어보진 않았다. 앙투안은 의자 옆에 놓인 내 보스턴백을 보더니 짐이 그게 전부냐 물었다.

 “응. 필요한 건 여기서 사면 되니까.”

 “그래. 여기에도 있을 건 다 있으니까. 그리고 사실 필요한 건 생각보다 많지 않아. 중요한 건 마음의 문제니까.” 

 "마음의 문제?"

 "응. 마음의 문제. 마음만 정확하면 다른 건 문제 될 게 없지. 안 그래?" 앙투안은 살짝 미소 지으며 말했다. 왜인지 모르게 그의 엷은 미소 뒤에 나를 향한 측은함이 느껴졌다. 지금 내 상황에 대한 측은함이라기보다는 혼란스러워하는 내 마음에 대한 측은함이. 앙투안의 미소가 어렴풋이 기억나는 엄마의 미소와 비슷했다. 따듯하지만 내것은 아니었던.

 그가 테이블에 내려놓았던 선글라스를 집어 들며 일어났다. 오후에 들어야 할 수업이 있다고 말하며 코트 깃을 여미며 조용히 햇살을 관통하며 걸어 나갔다. 햇빛 때문이었는지 아니면 앙투안이 뿜어내는 분위기 때문이었는지 그것도 아니면 어둠 속에서 길을 잃어버린 나 때문이었는지 나는 눈이 부셔 앙투안의 뒷모습을 끝까지 바라보지 못했다.


 그가 가버린 뒤에도 난 한참을 카페에 앉아 있었다. 좋다. 나는 일단 파리에는 도착했다. 앙투안이 말하는 선의 때문이건, 나도 알 수 없는 혼란스러운 마음 때문이건. 아니면 이제는 남아있지 않다고 믿었던 사랑이라는 감정 때문이건. 그런데 어디서부터 어떻게 그녀를 찾아야 할지 난감했다. 내가 아는 거라곤 그녀의 이름과 얼굴이 전부였다. 이름이야 얼마든지 다른 이름을 사용할 수 있으니 사실상 유일한 단서는 내가 아는 그녀의 얼굴뿐이었다. 쉽게 말해서 나는 이제부터 파리라는 큰 도시의 한가운데 그녀의 얼굴이라는 점을 찍고는 점점 넓어지는 나선형의 촘촘한 원을 그리며 그녀를 찾아야 했다. 찾아내야만 했다. 그러니 앞이 깜깜한 것이다. 

 사실 그것보다 더 난감한 것은 정말로 우연과 행운이 겹쳐 내가 그녀를 찾아낸다면, 그다음은? 그녀가 떠난 뒤 지금까지 나의 시간도 무에 가까웠지만, 그녀를 찾아낸 뒤 그녀의 얼굴을 마주한 뒤의 시간은 차라리 블랙홀에 가까울 것이다. 그녀는 나에게 그나마 남아있던 모든 것을 빨아들여 무조차 무가 아니게 만들어 버릴 것이 분명했다.


 주어진 시간은 한 달이다. 서둘러야 한다. 가슴에 큰 돌덩이가 얹힌 것처럼 깊숙하고 깊숙한 곳에서 답답함이 느껴졌다. 이미 식어버린 커피를 한 번에 들이켜고 나는 파리의 축축한 골목 안으로 걸어갔다. 방향을 알지 못하고 내딛는 발걸음이 단 한 발자국만이라도 그녀에게로 향하길 바라면서. 물론 걸으면서 생각해야만 했다. 과연 그녀를 찾게 된다면 무슨 말을 어떻게 꺼내야 할지를. 시간도 문제 이만 결국 내 안에서 적절한 대답을 찾는 것이 중요했다. 그것이 핵심이다. 파리는 겨울치곤 춥지 않았다.



가르치고, 여행을 하고, 사람을 만나고, 글을 씁니다.
저서로는 “첫날은 무사했어요” 와 “버텨요, 청춘”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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