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름달은 별을 삼킨다
“나는 네가 밉다. 나는 너를 사랑할 수 없다. 네 눈에서 내 여자가 보인다. 네 눈에서 내 여자가 나를 보며 웃는다. 사랑한다 말한다. 네가 태어나지만 않았어도 내 여자는 지금 내 옆에 있었을 것이다. 만약 나에게 선택권이 주어졌다면 난 주저 없이 그녀를 선택했 것이다. 난 너를 사랑하지 않고, 그것이 전혀 미안하거나 슬프지 않다.”
나는 분명히 기억한다. 아버지가 내게 뱉은 말을.
한 글자 한 글자가 나를 날카롭게 겨냥했었고, 나는 그것들에 무방비 상태로 난도질당했다. 생체기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처참하게. 그래도 다행이라면 다행인 것은 어린 나이에 나를 몰아친 아버지의 증오가 너무 커버린 탓으로 나는 그것들에 결국은 무감각해졌다. 감당할 수 없는 증오는 오히려 그 목적을 상실해서 정당한 대상을 비켜나가기 마련이니까. 나는 생각했다. 아버지의 증오의 대상은 내가 아니라 바로 당신이었다고.
아버지가 지독히 사랑했던 여자는 날 낳다가 죽었다. 그것은 그녀의 선택이었지만 그녀의 선택은 그 누구에게도 존중받지 못했다. 선택을 책임져야 할 존재가 더는 이제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으므로 선택의 결과가 선택의 책임을 떠맡아야만 했다.
그녀의 선택의 결과는 나였다. 나는 나의 행위나 욕망과는 무관한 삶을 그녀로부터 받았다. 그리고 그것이 내 선택은 아니었지만 책임은 내 몫이었다.
그리하여 난 어머니의 사랑도, 아버지의 사랑도 받지 못하고 자랐다.
어머니는 나를 사랑할 기회가 없으셨고, 아버지는 나에 대한 사랑을 선택하시기엔 증오가 더 컸으므로.
나는 아버지가 조금은 이해되기도 한다. 사랑한 여자의 생명을 앗아가 버린 아이. 그 아이를 온전히 사랑하라고 요구하는 건 아버지에겐 너무 가혹한 일이었을 것이다. 그 누구도 그걸 아버지에게 강요할 수는 없는 것이다. 저절로 생겨버린 감정을 의지가 속여버리기엔 그것이 일으킨 파동이 애초에 너무 컸다. 도무지 감춰지지가 않았을 것이고, 오히려 의지를 들인 노력은 자꾸만 가라앉아있던 감정들을 부추겼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버지는 책임감이 강한 사람이었으므로 도저히 사랑할 수 없는 자식을(그러니까 나를) 그래도 성인이 될 때까지 잘 키워냈다.
아니 잠깐. 잘 키웠다는 말은 없던 걸로 하자.
나는 스스로 잘 자라 냈다. 양육이라 함이 물리적인 환경의 제공뿐만 아니라 정서적인 부분의 채움이라면 말이다. 결국 아버지는 날 사랑하지 않았으므로 나를 키웠다기 보단 강한 책임감으로 길러냈을 뿐이다. 사랑을 주지는 않더라도 저절로 자라 내는 질긴 선인장처럼.
어쩌면 아버지 스스로도 그 강한 책임감을 사랑이라 착각하고 그것에 간절히 매달렸던 적도 있으셨던 것 같다. 그리고 나 또한 그것들을 사랑이라 생각하며 붙잡아보기도 했다. 하지만 아버지는 이내 포기하셨다. 그리고 나는 아버지의 포기를 탓하지 않았다. 아버지에게도 나에게도 그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을 것이다.
힘이 없던 나는 그저 성인이 되기만을 기다렸다.
성인이 되면 날 사랑하지 않는 아버지를 벗어날 수 있으리라.
어쩌면 그건 나를 위해서라기보다는 아버지를 위해서였다.
사랑했던 여자에 대한 사랑이 여전했으므로(아니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더 커져갔으므로) 아버지는 나를 힘겨워하셨다. 그리고 그런 아버지를 바라보는 나 역시 힘들었다.
서로의 존재가 서로에게 힘이 되지 않는 사람들은, 아니 존재가 서로를 부정하고 있는 사람들은 한 공간에 묶여있기 힘겹다. 둘 중 누구든 그 팽팽한 줄을 가위로 싹둑 잘라야만 했던 것이다. 그래서 나는 성인이 되는 순간의 가위질만을 간절히 기다렸다.
불행하게도 내 눈은 어머니의 그것도 똑같다고 아버지는 말씀하셨다. 그러니 아버지는 나를 보기 힘들었을 테지. 사랑하는 사람의 모습이 미워하는 사람에게 겹치니 미치지 않고서 어떻게 버티겠는가.
그러므로 나는 나를 위해서가 아니라 세상에 유일한 나의 혈육인(그렇다고 내가 아버지를 사랑한 건 아니었다) 아버지를 위해서 아버지를 떠나야 했던 것이다.
아버지와 나는 그런 서로의 해방을 위해서 20년을 묵묵히 견뎌냈다.
그리고 대학 입학과 함께 난 아버지를 떠났다. 헤어짐의 가위질은 물리적인 결별이기도 했지만 정신적으로도 완벽한 결별이었다.
그 후로 나는 단 한 번도 고향에 내려가지 않았고, 당연히 아버지를 보지 않았다.
내 속에서 아버지를 지웠다고 말할 순 없겠지만 적어도 전혀라고 해도 좋을 정도록 생각하지 않았다. 내 인생에서 드디어 아버지를 배재한 것이다.
유일한 혈육은 그렇게 남이 되었다.
그건 서로가 암묵적으로 인정한 이별이었고, 서로가 충분히 만족한 결과였다.
하지만 그 후로 내 인생이 뭔가 제대로 굴러갔느냐 묻는다면, 난 쉽게 대답할 수가 없다.
한번 삐걱거리기 시작한 수레는 어떻게든 굴러는 가겠지만 자꾸만 원래의 길을 이탈하기 마련이다.
그게 바로 내 인생이었다.
자꾸만 삐걱거리고,
제대로 굴러가지 못하며,
원래의 길을 벗어나버리는.
그렇게 나는 아무 곳도 아닌 곳으로 흘러가 버렸고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가르치고, 여행을 하고, 사람을 만나고, 글을 씁니다.
저서로는 “첫날을 무사했어요” 와 “버텨요, 청춘”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