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름달은 별을 삼킨다
결국 그날 저녁 난 한 숨도 자지 못했다. 정말 단 한 숨도. 물론 이런 상황은 여러 번 경험했었고 충분히 예상하고 있었던 불면이었으므로 난 애초에 잠을 자는 걸 어느 정도 포기한 상태였다. 포기가 빠르면 의외로 스트레스는 줄어든다. 이것도 삶을 살아가는 하나의 요령일 것이다
내가 깨어 있는 동안 옆자리의 희형은 일곱 번 몸을 뒤척였고, 세 번 이불을 걷어찼으며, 잠깐 알 수 없는 말을 중얼거렸다. 희영이 뱉어낸 말은 불어였다. 나는 희형의 말을 알아듣지도 못했지만 괜찮다고 해줬다. 잠꼬대를 하는 그녀의 표정이 불안해 보였으니까. 그러니 정말 희형은 괜찮아진 것처럼 다시 편하게 잠들었다. 나는 잠든 희형을 가만히 바라봤다.
희형은 함께 있지만 함께 있다고 느끼기 힘든 사람이었다. 그게 희형의 문제일까? 아니면 나의 문제일까? 잠시 생각해보다가 그건 나의 문제라는 결론을 내렸다. 언제나처럼 관계의 문제는 나에게 있었다. 하지만 그것 또한 나의 선택이었으므로 난 후회하지 않는다.
잠든 그녀는가 나지막이 숨을 쉴 때마다 그녀의 아담한 가슴이 오르락내리락거렸다. 그 일관된 리듬이 나에게도 알 수 없는 평온함을 주었다. 마치 규칙적으로 움직이는 진자 운동처럼 변하지 않고 영원으로 이어질 것 같았다. 그녀를 바라보고 있자니 나는 잠을 자지 않아도 괜찮았다. 아니 평생 그녀의 자는 모습을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옆에서 바라만 보고 싶다는 마음이 생겼다.
나와 같은 공간에 있었지만 배경 같았던 그녀가 그날 저녁부터 조금씩 실제로 나에게 다가오기 시작한다. 그런 기분이 나쁘진 않았지만 여전히 희형이 내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나를 뒤덮었다. 내 것이 아니니 욕심을 내면 안 된다. 과한 욕심으로 인한 파괴적인 결과는 온전히 내가 짊어져야 할 것이다. 그것만이면 괜찮겠지만 헹여 그녀가 다칠까 두려웠다. 내 옆의 누군가는 항상 끝이 좋지 않았다.
날 낳다가 죽은 어머니도,
그래서 날 미워하던 아버지도,
날 남기고 죽어버린 가람이도.
나는 속으로 다시 한번 그녀의 삶에 깊이 관여하지 않겠다 다짐했다. 내 삶 깊숙이 박혀버린 그녀를 언젠간 떼어내야만 한다는 것. 누군가 내 인생에 들어와 박혀서는 그만큼의 구명을 만들어내고는 빠져나가버리는 경험을 나는 다시는 하고 싶지가 않았다. 그러니 애초에 희형이 나에게 박히기 전에 내가 튕겨내는 게 편했고, 그것이 계속해서 이어지는 내 삶을 살아내기 수월했다. 내 안의 희형의 공간이 점점 커진다면 그녀가 떠날 때도 분명 가람이처럼 내게 선명한 자국을 남길 테니. 그렇게 되면 난 또 얼마나 나락으로 떨어져야만 하는 걸까. 떠나간 이가 선명하게 새긴 자국을 안고 살아간다는 것 그건 정말이지 힘들고 슬프고 싫었다.
나는 희형이 다시 편안하게 잠든 걸 확인하고는 거실로 나왔다. 계속 그 자리에 있으면 희형과 더욱 가까워지고 말 테니까. 새벽의 공허한 시간 붉은색으로 뒤덮인 거실에 나와 난 여섯 개비의 담배를 피웠고, 세 캔의 맥주를 마셨으며 다섯 번 화장실에 다녀왔다. 그리고 거실의 벽 너머로 느껴지는 희형의 존재를 계속해서 외면하려 했다.
아침 8시. 희형이 일어났다.
나는 드디어 노래를 크게 들을 수 있겠다 생각하고는 밥 말리의 레코드를 턴테이블에 올렸다. 밥 말리의 노래가 아침에 듣기 적당한 음악인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잠을 한 숨도 자지 못한 지금 나는 밥 말리의 목소리가 듣고 싶었다. 그의 걸걸한 목소리가 내 정신을 번쩍 깨워줄 것 같았다.
잠에서 깨어난 희형은 소파에 앉아있는 날 바라보더니 가볍게 웃고는 부엌으로 습관적으로 커피를 내렸다. 이내 집안은 커피 향이 가득 찼다. 밥 말리의 음악과 커피는 좀 맞지 않는 것 같다, 라는 생각을 하며 난 소파에서 몸을 움직이지 않았다.
밥 말리는 커피를 마셨을까? 잘 모르겠지만 아마도 그는 커피보다는 맥주를 더 많이 마셨을 것 같다. 아니라면 어쩔 수 없지만.
희형은 나에게 묻지도 않고 커피를 건넸다.
“샌드위치 만들건대 먹을래?” 희형은 내가 대답도 하기 전에 음악소리 허밍으로 흥얼거리며 냉장고를 열었다. 그녀에게는 상당히 큰 내 하얀 발팔티를 입고 있었고, 티는 그녀의 허벅지를 아슬아슬하게 가리고 있었다. 그녀가 팔을 움직일 때마다 허벅지 위의 엉덩이와 속옷이 살짝씩 보였다.
“괜찮아. 커피면 충분해. 그리고 사실 밤새 잠을 자질 못해서 뭔가 먹히질 않을 것 같아.” 나는 커피잔을 테이블 위에 내려놓으며 말했다. 그리고 그제야 여전히 붉은빛을 내뿜고 있는 스탠드의 불을 껐다. 커튼을 젖히고 창문을 여니 아침의 시원한 바람이 집안으로 불어 들어왔다. 어제 내린 비 때문에 공기는 시원함과 물 냄새를 나에게 건네준다. 나는 한 번 크게 숨을 들이쉬고는 희형이 샌드위치를 만들고 있는 부엌으로 갔다. 냉장고를 열어 생수를 한 병 꺼내어 들고는 그녀의 옆을 스쳐 다시 소파에 앉았다. 소파 깊숙한 곳으로 몸이 빨려 들어가는듯한 기분이었다. 지금 잠이 든다면 일주일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오로지 잠만 잘 수 있을 것 같은 기분.
“오늘 미술관 가기로 한 거 기억하지?” 희형이 토스트 기계에서 빵을 꺼내면서 물었다. 맞다 어제 잠들기 전 희형에게 미술관을 가자고 했었지.
“응. 가야지.” 한참을 멍하니 있다가 내가 대답했다. 미술관을 가지고 희형에게 말한 게 바로 어제인데도 그새 시간이 수천 년은 흐른 것만 같았다. 그 수천 년 전의 약속을 희형이 기억하고 있어줘서 고마웠다.
사실 어디든 상관없었지만 어디라도 좋다면 난 종종 미술관에 가곤 했다. 그림을 보는 걸 좋아하는 편은 아니었지만 일단 미술관에 들어가서 한 그림 앞에 삼십 분이고 한 시간이고 서있는 걸 좋아했다. 그러니까 나에게 필요한 건 움직이지 않고 한참을 바라볼 수 있는 하나의 사물인 것이다. 내가 눈을 떼지만 않는다면 항상 그 자리에서 변하지 않고 잠자코 머물러 있는.
잠을 자질 못해서 조금 걱정이 되기도 했지만 그래도 오늘은 혼자 가는 게 아니니 괜찮을 것이다. 또 내가 어딘가에서 갑자기 잠이 들어버린다면 적어도 그녀가 나를 챙겨주겠지.
우리 집 주변엔 미술관이라고 하긴 뭣하지만 그래도 신인 작가들의 그림을 걸어놓은 전시관 같은 곳이 몇 곳 있었다. 우리는 집에서 가장 가까운 전시관엘 갔다. 입장료를 내고 간단한 작품 설명이 나와있는 팸플릿을 구매했다. 희형은 팸플릿을 매우 꼼꼼히 살펴봤다. 나는 팸플릿에는 관심이 없었으므로 전시실을 한 번 둘러본 뒤 사람이 가장 적은 그림 앞으로 향해 걸었다. 어떤 그림이든 상관없다. 1미터 정도 떨어져서 내 시선을 고 정실 킬 수 있는 그림이면 충분하다.
아이를 안 고있는 여인이 그려진 그림이었다. 아마 엄마와 자식의 사이겠지. 아이는 엄마의 품에 안겨 엄마를 바라보고 있지만 엄마의 시선은 아이와 마주치지 않는다. 아이를 안은 채 먼 곳을 응시하고 있다. 그 눈빛엔 알 수 없는 슬픔이 담겨 있었다. 작가는 그림을 통해 뭘 말하고 싶었던 걸까? 한참을 생각하며 그림을 응시하다 생각하는 걸 그만두기로 했다. 내 생각이 어떠하든 그건 내 그림이 아니므로 나와는 상관이 없었다. 작가는 분명 어떤 의미를 전달하고 싶었을 것이지만 나 같은 사람이 그 의미를 궁금해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그림이 변하진 않으니까.
언제 쓰러져 잠들지 모른다는 불안감을 가지고 그림을 바라보고 있는데 희형이 옆에 다가왔다.
“다른 그림은 둘러보지 않아도 괜찮아? 보니까 꽤 괜찮은 그림들이 많아. 팸플릿을 보니 작가도 나름 신선한 것 같고.”
희형이 내가 바라보고 있던 그림과 팸플릿과 나를 번갈아 바라보며 말했다.
“괜찮아. 사실 난 그림을 잘 몰라. 지금 이 그림도 잘 모르겠는걸.”
“그래? 그럼 왜 미술관에 오자고 한 거야?”
“그림을 보면 묘하게 안심이 돼. 그림은 더 이상 변하지 않으니까. 이미 굳어버린 물감이 움직일 리 없잖아.” 나는 그림에서 시선을 떼지 않고 말했다.
“안심이 된다고? 그것 때문에 미술관에 오는 거야?”
“응. 그렇게 한참을 바라보면서 스스로 확인하는 거지. 그림이 변하지 않는다는 걸. 그리고 생각해. 내 주변의 것들도 저렇게 변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변하지만 않는다면 난 만질 수 없다고 해도, 이렇게 1미터쯤 떨어져 있어야만 한다고 해도 그래도 이렇게 움직이지 않고 바라봐줄 수 있다고.”
내 말을 듣더니 희형이 고개를 갸웃거린다. 나를 이해할 수 없다는 느낌보다는 내가 수 없이 반복해왔던, 그러니까 무언가를 바라본 채 아무것도 하지 않는 내 모습을 상상하는 것 같았다. 그것이 사람이건 사물이건 그저 바라보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나를.
“나는 어떨 것 같아? 나도 캔버스 위의 굳어버린 물감처럼 변하지 않을 것 같아? 아니면 언젠가는 변할 거라고 생각해?”
희형은 보고 있던 팸플릿을 가방에 집어넣더니 날 바라보며 물었다.
나는 잠시 생각했다. 희형은 변하지 않을까?
“변하지 않을지는 몰라도 떠나겠지. 책이 출판되고 나면 다시 파리로 가야 하잖아. 안 그래?”
“그렇긴 하지. 나는 다시 파리로 돌아갈 거야. 하지만 떠나는 것과 변하는 건 달라. 난 떠나겠지만 변하진 않을 테니까. 변하지 않을 거니까 언젠가 다시 당신 옆으로 돌아올 거야. 언젠가는.” 희형이 고개를 내 어깨에 기대며 말했다.
떠나는 것과 변하는 것이 뭐가 다를까. 내 인생에서 날 스쳐 지나갔던 사람들은 날 떠난 걸까, 아니면 변해버린 것일까.
어머니는 변할 겨를도 없이 내 곁을 떠났고, 아버지는 애초에 내 옆에 있었던 적이 없었다. 가람이는 내 옆에 있었지만 결국 죽음으로 떠나버렸다. 그리고 그 이후로 난 변하지 않는 그림만 바라보고 있다.
하지만 어쩌면 내가 변해가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내가 세상을 뒤로한 채 멀리 떠나고 있는 건지도.
다행히 난 미술관에서 잠들지 않은 채 집에 돌아올 수 있었고, 다음 날 아침까지 죽은 듯이 잠을 잤다.
가르치고, 여행을 하고, 사람을 만나고, 글을 씁니다.
저서로는 “첫날을 무사했어요” 와 “버텨요, 청춘”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