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th or
Without you

보름달은 별을 삼킨다

by 최전호

나는 저녁 12시가 넘어서야 집으로 돌아왔다.

찰칵. 열쇠로 문을 여는 소리가 다시금 내 귀에 메아리쳐 돌아온다. 날카롭게 울리는 금속성 소리는 내 귀가를 환영하지 않다. 당신은 이곳에 올 수 없는 사람입니다,라고 말하는 것 같다.

집은 고요하기만 했다. 현관 불은 고장이 나서 켜지지 않았다. 고쳐야겠다고 몇 번인가 생각했었지만 지내보니 어두운 것이 불편하지 않아 그냥 두고 있다. 나는 어둠 속에서 손을 더듬거려 거실 스탠드의 불을 켰다. 붉은 조명이 거실을 얕게 채웠고 형광등의 낮은 진동 소리가 지잉 울렸다. 온전히 모든 것이 고요한 저녁에만 들을 수 있는 소리이다. 나는 잠시 눈을 감고는 집 안의 소리들에 집중해본다. 냉장고가 돌아가는 소리가 들리고 빗방울이 창문을 때리는 소리가 들린다. 좀 더 집중해보니 부엌의 수도꼭지에 수 물이 한 방울씩 느리게 떨어지는 소리도 들린다. 하지만 집에는 인기척이 느껴지지 않았다.

그녀는 아직 들어오지 않은 건가?

나는 침실 문을 살짝 열어보았다. 침대 위의 담요가 그녀의 작은 몸뚱이 크기만큼 부풀러 있었다. 그녀는 이미 자고 있었다. 나는 그녀가 깨지 않게 다시 문을 조심스레 닫았다. 소파에 털썩 주저앉아 가만히 턴테이블을 바라봤다. 나는 턴테이블의 스위치를 켰다. 혹시나 그녀가 깰까 봐 볼륨을 최대한 줄여서. 스피커에서는 U2의 음악이 흘러나왔다. 잠자코 들어보니 “with or without you”였다. 기억을 더듬어 보니 나는 최근에 U2의 음악을 들은 적이 없었다. 그렇다면 U2의 앨범은 아마도 그녀가 잠을 자기 전 들었을 것이다. with or without you. 결국 혼자 건 함께 건 상관없다는 말인가? 나는 잠시 음악을 흥얼거리다 옷을 벗고 샤워를 했다.

샤워를 마치고 가볍게 맥주를 한 캔 마셨다. 잠 자기 전 맥주는 머리가 마르기 전에 마셔야 한다는 게 나의 지론이다. 거실에는 여전히 U2의 노래가 흘러나왔다. 하지만 몸에 알코올이 들어가니 다시금 취기가 오르기 시작했고 노래의 가사가 알 수 없는 소리들로 변해 귀에 들어왔다. 두 곡 정도를 듣다가 턴테이블의 스위치를 끄고 침실로 들어갔다. 거실의 스탠드는 켠 채로 그냥 두었다. 왠지 오늘 같은 밤에 얕은 빨간 조명이 맘에 들었다. 붉은 조명이 비치는 또 다른 세계가 막 잠에서 깨어 태동하는듯한 기분이었다. 그렇다면 여기서 난 적당히 퇴장. 그곳은 나의 세계가 아니니까. 그녀가 있는 어두운 침실로 들어가면 그곳은 내가 속한 세계일까? 내가 그곳에 속할 수 있을까? 잘 모르겠다.

침대에 기어들어가 시계를 보니 새벽 1시 30분이다. 이런 맙소사,라고 나는 생각했다.

난 12시가 넘으면 도무지 잠이 오지 않는다. 잘은 모르겠지만 내 몸은 12시를 기준으로 뭔가 시스템의 변화가 생기는 것 같다. 잠을 미친 듯이 원하던 몸뚱이도 12시가 지나면 어딘가에서 새로운 에너지라도 받아오는 양 피로를 잊어버린다. 그래서 가끔은 수면제를 먹어야 겨우 잠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오늘처럼 술을 마신 날에는 수면제도 잘 듣지 않는다. 몸안에 스며든 알코올들이 세포 하나하나를 일으켜 세우는 것 같다. 이럴 때는 차라리 술을 더 마시는 편이 낫다. 그러면 결국 술에 취해 필름이 끊기고 정신을 잃을 테니까.

정말 불편한 몸뚱이군, 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고등학교 때 친구들은 이런 나를 매우 부러워했었다. 사당오락 따위의 바보 같은 말 따위를 들이대며 선생님이고 부모님이고 우리에게서 잠을 빼앗아 갔던 시기였으니까. 12시만 지나면 멀쩡한 정신으로 밤을 지새울 수 있었던 나는 어떤 의미에선 다른 친구들보다 유리한 고지를 선점한 수험생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세상에 공짜는 없듯이 그런 다음 날이면 난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쓰러져 잠이 들었다. 이건 시간과 장소를 가리지 않는다. 화장실에 앉아 있다가도 잠이 들었고, 출근길의 지하철에서 잠이 들기도 한다. 정말이지 여러 번 고약한 상황에 놓이곤 했다. 그렇게 한 번 잠이 들면 두 시간이고 세 시간이고 깨어나질 않았으니까. 이건 나로선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의사 산생님은 기면증이라고 말했다. 좀 특이한 기면증.

일이 어차피 이렇게 되어버린 것 차라리 잠자는 걸 포기하고 산책이라도 다녀올까 생각했다. 아니면 다시 거실로 나가 빨간 세계 안에 덩그러니 앉아 U2의 음악을 듣던지. 그때 그녀가 잠에서 깼다. 두어 번 뒤척이더니 손을 더듬거리며 침대에 누워있는 내 위치를 가늠했다. 눈을 감은 채 손을 내 가슴에 얹는다.

“오늘 오지 않는 줄 알았어.” 약간은 잠이 덜 깬 목소리다. 입술은 거의 움직이지 않은 채 오밀조밀 작은 소리를 냈다. 하지 그녀의 목소리는 내 귀에 선명히 울려 퍼졌다.

오늘 오지 않는 줄 알았어... 하지만 난 갈 곳이 없었다. 정작 내가 있는 이 곳도 내가 있어야 할 곳인지 잘 모르겠다. 편안함을 느껴야 할 집에서도 난 혼자만이 떠돌고 있는 기분이다.

“미안. 깨울 생각은 없었는데.” 난 몸을 일으켜 세워 배게를 등에 대고 기대앉았다. 여전히 잠은 오지 않았고 그건 역시나 내가 어떻게 할 수 있는 일은 아니었다.

나는 손가락으로 그녀의 머리카락을 쓸어 올렸다. 그녀의 얇은 머리카락은 내 손가락을 빠져나와 이마와, 눈과 코를 지나 흘러내렸다. 간지러운 듯 그녀가 코를 살짝 찡그렸다. 그녀는 계속 눈을 감고 있었다. 눈을 뜨지 않아도 내가 다 보인다는 듯. 눈을 감은 채 손으로만 날 스쳐도 나의 모든 걸 알 수 있다는 뚜렷한 선명함이 그녀에게서 느껴졌다. 그런 그녀 앞에선 나는 항상 유리몸이 된 듯한 기분이었다. 내 어떤 것도 숨길수가 없는. 뭔가를 숨기려 한다 해도 그녀는 내 속의 것을 모두 다 볼 수 있다는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곤 했었으니까. 그런 그녀가 내 옆에 있으면 난 무언가를 말해야만 했었다. 쉽게 말해서 그녀 앞에서는 나의 침묵이 용인되지 않았던 것이다.

내가 침묵할 수 없는 유일한 사람.

“오늘은 뭔가 힘이 빠지는 날이었어.” 나는 한 숨을 쉬며 말했다. 내 입에선 술 냄새가 진하게 났다.

“왜?” 그녀가 물었다. 그녀의 단 한 마디가 영원처럼 길게 느껴졌다. 난 오늘 왜 힘이 빠졌을까. 왜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을까. 하루 종일 나를 그림자처럼 나를 따라다녔던 의문이 그녀의 한 마디에 번개처럼 정답을 찾아갔다. 오늘 하루 세상엔 내가 없었다,라고.

“세상에 내가 존재하고 있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어.” 나는 내 가슴에 얹혀있던 그녀의 손 위에 내 손을 포개며 말했다.

나는 오늘 하루 내가 세상에 존재하지 않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래서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고,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그제야 그녀는 눈을 뜨고는 나를 바라봤다. 고양이 같은 눈이다. 쌍꺼풀은 없고 약간은 찢어진 눈. 내가 좋아하는 눈이다. 작지만 정확히 나만을 바라보는 눈.

“그러니까 오늘은 내가 오후 3시 같았어.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 같은 기분이었지. 도무지 힘이 나질 않았어. 맥주를 아무리 마셔도 마신 것 같지가 않았고.”

“내 손을 잡아.” 그녀가 자신의 손을 뒤집더니 위에 포개져 있던 내 손을 잡았다. 참 잡기 좋은 손이다. 손가락에 살이 적당해서 잡으면 묘한 포만감 같은 것이 있다. 그녀의 손을 잡고 있으면 하루 종일 아무것도 먹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나쁘지 않군.” 그녀를 잡은 손에 살며시 힘을 주며 내가 말했다.

“아마 혼자 남겨진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 그럴 거야. 그 기분을 이해할 수 있을 거 같아.” 그녀가 말했다.

“정말?”

“사람들은 항상 어디론가 떠나거든. 그렇게 어딘가로 향해야만 스스로 존재한다고 생각하는 거지. 존재를 향한 시위랄까. 하지만 정작 자기가 어디로 가는지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아. 자신이 어디로 향하는지 알지 못하는 사람은 누구나 그런 기분을 느낄 수 있어. 세상에 자신이 존재하지 않는 것 같은 느낌 말이야. 그러니까 당신은 나름 정상이라는 말이야.”

나는 잠시 그녀의 말을 곱씹어 생각했다. 어디론가 향하지만 향하는 어딘가를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나는 어디론가 향하는 게 아니라 멈춰서 버린 것 같아.”

“아냐. 멈춰버린 사람은 없어. 어딘가로 분명 가고 있다는 사실 자체를 모르는 거겠지. 지금 당신도 당신이 어디로 흘러가고 있는지 아직 모르는 것뿐이야."

그녀는 힘주어 말했다.

“그다지 위안이 되지는 않네.”

“어쩔 수 없어. 인생이 그런 거니까.”

그녀는 다시 눈을 감고 잠을 청했다.

“내일 어디든 다녀올래?”

내가 다시 자려는 그녀를 다시 붙잡았다.

“어디?” 그녀는 눈을 감은 채 물었다.

“미술관. 그림을 보고 싶어.”

“좋지. 미술관도. 그림도.”

우리는 그렇게 손을 잡은 채 잠이 들었다. 아니, 나는 잠을 자지 못했다. 이미 12시가 넘어버렸으니. 시계는 시침은 두 시를 가리켰고, 나는 잠들지 못한 채 눈으로 초침의 움직임을 따라갔다. 계속해서 초침은 움직였고, 시간을 흘렀다. 꾸준하게. 하지만 시곗바늘은 결국 돌고 돌아 제자리다. 마치 내 생각의 꼬리들처럼.


*

희형은 내가 일하고 있는 출판사에서 책을 준비하고 있는 작가다. 그리고 난 지금 그녀가 곧 출판하게 될 책을 편집하고 교정하는 일을 하고 있다. 그러니까 쉽게 말하면 희형은 고용주고 난 노동자인 것이다.

그녀는 학창 시절의 대부분을 파리에서 보냈고, 지금도 그녀의 집은 파리이다.

이미 파리 생활에 관한 에세이를 두 권 출판했다. 난 그녀의 새 책을 준비하는 에디터로서 그녀가 쓴 두 권의 책을 읽어보았다. 적어도 내가 편집할 책의 작가가 이전에 어떤 책을 썼던 사람인지는 알아야 하니까.

첫 번째 책은 빵과 와인에 관한 책이었고, 두 번째 책은 에세이라기보다는 소설에 가까운 책이었다. 거기엔 놀라운 이야기들이 많이 담겨있었다. “이게 정말 당신 이야기야? 정말 이런 일들을 겪었었다고? 파리에서?”라고 묻는 나의 질문에 그녀는 모호하게 웃기만 했다.

세 번째 책의 출판을 위해 그녀는 잠시 한국에 들어왔었고, 우리는 일주일 전 출판사 첫 미팅에서 만났다. 나보다 나이는 두 살 많았다.

처음 만난 날 우리는 함께 술을 마셨고 자연스레 우리 집에 왔다. 우리 둘 다 술에 많이 취해 있어서 제대로 된 기억을 갖고 있지는 않았다. 일어나 보니 희형과 나는 침대 위에 함께 누워 있었다. 우리가 그날 밤 몸을 섞었는지는 서로가 기억하지 못했다. 하지만 우리 둘 모두 그날 밤에 대해서 깊이 생각하려 하지 않았다. 그건 그녀도 나도 거부할 수 없는 자연스러운 하나의 흐름이었다. 우린 그 흐름에 조금은 무심하게 몸을 맡긴 것뿐.

그녀가 한국에서 일을 마치고 다시 파리로 돌아가기 전까지 우리 집에서 지내기로 했다. 말이 없는 나와 지내면 심심할 것이라 말했지만 희형은 자기가 말이 많으니 괜찮다고 했다.

“어차피 내가 두 명 몫의 말을 하면 되는 거 아닌가? 당신은 그냥 나와 함께 있어주기만 하면 돼.”

나는 그냥 고개만 끄덕였다.



가르치고, 여행을 하고, 사람을 만나고, 글을 씁니다.
저서로는 “첫날을 무사했어요” 와 “버텨요, 청춘”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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