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름달은 별을 삼킨다
수요일. 나는 점심을 먹고 짐을 챙겨 외근을 나갔다.
외근을 다녀오면 시간이 어중간했기 때문에 다시 사무실에 들어오지 않고 바로 퇴근을 할 작정이었다.
외근이 자주 있는 편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한 달에 한두 번쯤은 외근이 있다. 외근이라고 해봤자 교정하고 있는 책의 작가와의 미팅이 대부분이다.
사실 처음 작업을 시작할 때를 제외하곤 작가와 에디터가 만나는 일이 흔치 않다. 책에 대한 콘셉트이라던지 큰 그림에서의 방향성이란 건 이미 첫 만남 때 정해지는 것이고, 그 외에 자질구레한 일들은 대부분 메일로 의견을 주고받으며 진행된다.
그렇게 책이 출판되면 기념으로 작가와 함께 식사를 하는 정도. 이 정도가 일반적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난 딱히 작가를 만나도 할 말이 없다. 애초에 약간은 심심한 만남이다. 나는 이미 작가의 책을 교정하는 과정에서 상당히 작가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진 상태다. 충분히 이 사람이 어떤 사람이겠구나,라고 짐작이 되는 것이다. 반면에 작가는 나에 대해 아는 것이 전혀 없을 것이다. 작가가 내가 교정한 자신의 책을 본다 하더라도 한 명의 개인으로서 나의 특징을 찾아낸다는 건 힘든 일일 테니까. 그러므로 작가와의 만남은 조금은 시시하다. 궁금증이 없는 상대와 만난다는 건 그런 것이다. 별 다른 감흥이 생기지 않는.
다행히도 오늘 외근은 작가와 미팅은 아니었다. 더군다나 지금 나는 희형의 책만 교정을 하고 있기 때문에 만나야 할 작가도 없다. 희형이라면 집에서 얼마든지 만날 수 있으니까.
오늘은 대형 서점에 들러서 다음 달에 출판될 우리 출판사의 책들에 홍보와 가벼운 판촉행사를 위한 회의를 하면 된다. 원래는 홍보 담당이 가야 하는 회의지만 그녀는 다른 바쁜 일처리로 시간이 나지 않는다고 했다. 그래서 내게 부탁을 했고 나는 알겠다고 했다. 서점은 홍대에 있었기 때문에 우리 집과도 무척 가까워서 난 회의가 끝나면 바로 집으로 가면 되니까.
회의는 매우 빠르게 진행되었다.
무언가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라 지금까지 해왔던 매뉴얼을 다시 한번 확인하는 정도라서 어려울 것은 없었다. 회의를 마치고 나는 매번 감사합니다, 라는 말을 하며 악수를 하고 서점을 빠져나왔다. 서점에서 우리 집 까지는 마을버스를 타면 세 정거장이었고, 지하철을 타고 가면 한정거장인데 역에서 내려 십 분쯤 걸어야 했다. 나는 잠시 고민을 하다 그냥 걷기로 했다. 조금 덥긴 했지만 그래도 걸을만한 날씨 었고, 평소보다 빠른 퇴근이었기 때문에 조금은 여유가 있었다.
홍대 길을 걸으며 난 소리에게 문자를 했다. 아직은 저녁시간 전이었기 때문에 소리가 이 시간부터 바에서 맥주를 마시고 있을 것 같지는 않았고 아마 홍대 골목 어딘가에서 시간을 죽이고 있을 것이다.
소리에게 답장이 왔고, 내가 있는 곳에서 그다지 먼 곳이 아니었다. 소리는 카페의 야외 테이블에 앉아서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소리는 나를 보더니 벌써 퇴근했냐고 물었다. 근처 서점에 외근이 있어서 들렀다 집에 가는 길이라고 나는 말했다.
“나도 방금 여기에 왔어요. 연습실에서 친구들과 기타를 치다가 지루해서 나왔어.” 소리는 커피와 얼음이 절반 정도씩 섞여있는 플라스틱 테이크아웃 커피잔을 흔들며 말했다.
“아저씨도 한 잔 마실래요?”
“응. 그래야겠어. 아무래도 걸으니까 덥긴 하네.”
나는 말을 마치고 카페 안으로 들어가 커피를 한 잔 주문했다. 커피를 기다리는 동안 야외 테라스에 앉아있는 소리를 바라보았다. 더운지 한 손으론 부채질을 했고, 한 손으론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좀 걷자. 오늘은 좀 걷고 싶네. 괜찮지?”
“뭐 나쁠 게 있나요.”
소리는 옆에 세워져 있던 기타를 메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내가 기타를 들어줄까?라고 물었지만 괜찮다고 했다. 그리고 그런 건 물어보지 말고 알아서 좀 하라며 장난스레 나에게 핀잔을 주었다.
“그러니까 아저씨가 맨날 혼자 술을 마시는 거예요.”
“여자가 메고 있는 기타를 물어보지 않고 들어주는 거랑 혼자 술을 마시는 게 관련이 있는 건가?”하고 내가 물었다.
“당연하죠. 엄청나게 직접적인 관련이 있다고요.”
“뭐 그렇다면 어쩔 수 없지. 그런데 난 혼자 술 마시는 게 그다지 싫진 않아. 기타를 물어보지 않고 들어주는 것보다 편해.”
“에효. 내가 말을 말아야지.”
소리는 나를 한 번 흘겨보더니 답답하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리고 가끔은 너랑 함께 마시잖아. 아니 가끔이 아니라 꽤 자주.”
“내가 마셔주는 거죠. 답답한 서른 살 아저씨랑.”
“그런가? 고맙네.” 나는 얇게 웃으며 말했다.
우리는 길을 건너기 위해 잠시 신호등 앞에서 신호가 바뀌기를 기다렸다.
“요즘도 종종 홍대에서 노래 해?”
“아뇨. 요즘은 잘 안 해요. 그냥 노래만 쓰고 있어요. 뭐 그것도 잘 되진 않지만.”
소리는 작게 한 숨을 내쉬며 말했다.
“그래? 뭐 차차 잘 되겠지.”
내가 대답을 할 때 신호가 보행자 신호로 바뀌었고 우리는 길을 건넜다.
“아저씨. 나는요 어릴 때부터 정말 하고 싶은 게 많았어요. 그러니까 기억이라는 게 처음 시작되었을 때를 떠올려보면 그래요. 혼자 걸어보려고 무척 애를 썼어요. 엄마나 아빠가 손을 잡아주려고 해도 그 손을 뿌리치고 말이죠. 참 웃기죠? 쪼그만 갓난아기가 뭘 해보겠다고 그렇게 악착같이 고집을 부렸었는지. 그런데 나는 정말 그랬어요. 뭔가 하나의 목표가 생기면 그걸 이뤄낼 때까지 하루 종일 계속 그것만 생각해요. 누군가에게 도움을 받으려고도 하지 않고 혼자 악착같이 해내고 마는 거예요. 그런데 이상하게 막상 그렇게 간절했던 걸 이루고 나면 그게 이내 시시해져 버리는 거예요. 어제까지만 해도 세상의 전부였던 것이 오늘은 이미 시시해져 거들떠보지도 않는 상자 속의 장난감이 되어 버린 거죠.”
“흠. 그래도 의욕이 없는 것보단 의욕이 넘치는 게 낫지 않나?”
“맞아요. 나도 그렇게 생각해. 그런데 문제는 의욕이 넘치는 만큼 그게 사라지는 것도 순식간이라는 거예요.”
“잘 모르겠어. 적어도 난 그렇게 큰 의욕을 가져본 적이 없어서. 그게 순식간에 사라져 버렸을 때의 기분이라는 게 도무지 짐작이 안돼.”
“차가운 뱀을 목에 두른듯한 기분이에요.”
“생각보다 끔찍하군.” 하고 나는 말했다.
“뱀을 목에 둘러본 적이 있어요?” 소리가 눈을 동그라게 뜨며 물었다.
“아니. 그런 건 해보지 않더라도 충분히 짐작할 수 있는 느낌이야. 충분히.”
나는 상상만으로도 잠시 기분이 끔찍해졌다. 뱀을 목에 두른다니.
“그래서 나는 또 다음 목표를 찾아요. 다시 내가 열정을 쏟아부을 수 있는 다음 목표. 그게 뭐가 됐든 말이죠.”
“꽤나 성실한 학생이네. 고등학교 때 우리 물리선생님이 널 봤다면 아마 상당히 좋아하셨을 거야. 수업이 지루한 것만 빼곤 꽤나 괜찮으신 분이셨어.”
“갑자기 웬 물리선생님이에요? 아저씨 이상한 소리 하지 말라고요. 지금 나 꽤 진지해.” 소리는 가볍게 나 팔뚝을 꼬집으며 말했다.
“알았어. 미안 미안.” 나는 웃으며 소리에게 계속 이야기를 해 보라고 말했다. 이제부턴 잠자코 듣기만 하겠다고.
“하나의 목표를 성취하면 바로 다음 목표를 찾아 나서는 거죠. 걸을 수 있게 된 다음부터는 뛰려고 했고, 한글 공부가 끝나면 알파벳을 외웠어요. 덧셈과 뺄셈을 하고 난 뒤에는 바로 구구단 공부를 했죠. 뭐든 빨랐고 뭐든 의욕적이었어요. 그런데 내가 끝까지 잘 해내지 못한 게 하나 있었어요. 그게 뭔지 알아요?”
“전혀. 혹시 연애가 어려웠나?”
“아뇨. 연애는 꽤나 잘 했어요.”
“그럼?”
“젓가락질. 이상하게 난 젓가락질은 아무리 연습을 해도 도무지 나아지지가 않는 거예요. 부모님은 괜찮다며 내 손에 젓가락 대신 포크를 쥐어주셨어요. 사실 어른 아이에겐 젓가락보다 포크를 사용하는 게 당연하잖아요. 그런데 부모님이 내 손에 포크를 쥐어주시면 난 그걸 몇 번이고 식탁에 던져버렸어요. 내가 젓가락질을 하지 못한다는 사실이 너무나 분해서 밥을 먹기도 싫었던 거죠. 포크로 밥을 먹느니 차라리 굶어 죽고 말겠어, 뭐 그런 생각도 했던 것 같아요. 잘 때도 젓가락을 손에 쥐고 잔 적도 있어요. 분명 젓가락은 한 쌍 인데도 내 손에만 쥐어지면 항상 서로 어긋났어요. 원래 하나였던 것들이 절대 만나려 하지 않고 서로를 비켜나갔죠. 한 달쯤 그렇게 짜증을 내며 연습을 했는데도 잘 안되자 나는 그때부터 젓가락은 아예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물건이라고 생각하기 시작했어요.”
“젓가락이 아예 존재하지 않는 물건이라고 생각을 했다고?”
“네. 내가 젓가락질을 못하는 게 아니라 그건 ‘원래부터’ 세상에 없는 물건이라고. 애초에 세상에 없는 물건이고 그러니 내가 굳이 노력을 할 필요도 없는 거라고. 나 좀 이상하죠?”
소리는 거기까지 말하고 잠시 말을 멈추더니 빨대로 아이스커피를 한 모금 들이켰다. 정말 시원하게 커피를 마셨다. 소리가 들고 있는 플라스틱 커피잔 안의 얼음들이 햇빛에 반사되어 반짝거렸다. 소리는 속이 시원한 듯이 옅은 탄성을 뱉었다.
“오늘 날씨 진짜 덥죠? 아직 4월 중순인데 벌써부터 이렇게 더우니 올여름은 정말 장난 아니겠어요. 아저씬 더운 게 좋아요? 아니면 추운 게 좋아요?”
“음. 둘 다 그다지 싫진 않아.”
나는 잠시 여름과 겨울의 내 모습을 떠올려봤다. 두 계절 모두 나는 딱히 힘들어하지 않았다.
“난 개인적으론 그래도 더운 게 좋아요. 더위는 어떻게든 참을 수 있겠는데 추운 건 정말이지 단 일 분도 견딜 수가 없어요. 춥다는 감각은 나한테 통증과 같아요. 추우면 그냥 몸이 아픈 거죠. 그래서 겨울엔 정말 하루 종일 집 밖으로 한 발자국도 벗어나지 않는 날이 많아요. 집에서 이불을 뒤집어쓰고 계속 노래만 듣는 거죠. 그런데 내가 아까 어디까지 이야기했었죠?” 소리는 다시 나를 빤히 바라보며 물었다.
“젓가락을 원래부터 세상에 없는 물건이라고 생각했다, 까지.”
“맞다. 젓가락을 세상에 없는 물건이라고 생각했다고 그랬었죠. 정말 그랬어요. 그렇게 생각하고 나니깐 내 마음이 좀 편해졌어요. 그다음부턴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없거나, 갖고 싶은 물건을 가질 수 없을 때는 조용히 눈을 감고 그 대상을 내 머릿속에서 지워버려요. 머릿속으로 선명하게 생각한 다음 천천히 지우개로 지우기 시작하는 거죠. 중요한 건 자국조차 남지 않게 박박 지워야 한다는 거예요. 그렇게 지우고 나면 정말 더 이상 생각이 안 나요. 신기하게도 말이죠. 그러고 나서 다시 다른 뭔가를 찾아가는 거죠. 내가 할 수 있고, 가질 수 있는 걸. 내 손에 잡히는 것. 그래서 나는 이별도 쉽게 해요. 이미 지나가버린 사람은 지워버리고 다른 사람을 찾으면 되니까요. 그렇게 해서 내가 하고 싶은 일을 내 스타일대로 계속해나가고 있어요. 지금은 노래를 하고 있는데 이게 만약 잘 되지 않는다고 해더 난 걱정이 안 되어요. 노래를 지워버리고 난 다음 내가 할 수 있는 다른 일이 분명 또 찾을 수 있을 테니까. 내가 어떻게 살고 있는지 좀 알겠죠?”
“응. 대단해.” 하고 나는 감탄하며 말했다.
“좀 이상하다고 생각하진 않아요? 내가?”
“정상적이다와 이상하다 중 선택하라고 하면 분명 이상한 쪽이긴 하지. 그런데 이상한 게 나쁜 건 아니니까. 소리는 스스로를 잘 이해하고 가장 효율적인 방법으로 살아가고 있는 거야. 정말 대단해. 그건 꽤 멋진 삶이라고 생각해.”
“고마워요. 나도 그렇게 생각해. 나 그래도 지금까지는 꽤 잘 살고 있다고. 지금까지는.”
소리는 잠시 걸음의 속도를 늦추 더니 말꼬리를 길게 늘였다.
“지금까지는?” 나는 소리를 바라보며 물었다.
“네. 지금까지는. 그런데 요즘 이게 좀 잘 안돼요. 지워버려야 할 게 하나 있는데 그게 잘 안 지워져요. 한 번도 이런 적은 없었는데. 내가 지우려고 맘만 먹으면 그건 어느새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게 돼버렸는데. 이건 지우고 지워도 자꾸만 다시 살아나버려. 당황스럽기도 하고 사실 좀 신기하기도 해요.”
소리는 이야기를 멈추고 다시 빨대로 커피를 빨아들였다. 커피는 이내 바닥을 보였다. 얼음 사이에 고인 얕은 커피를 빨아대는 빨대의 소리가 경쾌했다. 소리는 비어 버린 커피잔을 손으로 손으로 흔들어 보았다. 달그락 얼음이 부딪히는 소리가 났다.
“아저씨. 커피 안 마실 거예요? 안 마실 거면 나 줘요. 나 목말라.”
“자, 여기.”
나는 아까부터 마시지는 않은 채 계속 손에 들고 있던 커피를 소리에게 건넸다. 아무래도 난 아이스커피는 잘 먹히지가 않는다. 커피는 그래도 뜨겁게 마셔야 한다는 게 내 생각이다. 그렇다고 이렇게 더운 날씨에 뜨거운 커피를 사는 게 좀 이상해서 아이스커피를 사긴 했지만.
“아저씨는 그런 거 없어요? 하고 싶은 거나 갖고 싶은 거.” 소리가 내가 건네준 커피를 한 모금 마시더니 나에게 물었다.
“글쎄. 난 너처럼 그렇게 열정적이고 능동적인 삶을 살진 않았어. 그냥 평범했다고나 할까. 특별할 게 없는 삶이지. 무척이나 심심한.”
“그래도 한 번 잘 생각해 봐요. 미칠 듯이 얻고 싶었던 것이 정말 없었는지.”
미칠 듯이 가지고 싶었던 것. 나는 잠시 나의 어린 시절을 떠올려 봤다. 그리고 어렸을 적 있었던 한 사건을 생각해냈다.
“일곱 살 땐가 집에 친척분이 찾아온 적이 있었어. 사실 나는 그때 그 친척분을 처음 봤었어. 세상에 내 혈육은 아버지밖에 없다고 생각했었거든. 아버지와 나 사이에 애정이라든가 유대라는 건 없었기 때문에 아버지의 형제는 내 영역 밖의 사람들이었거든."
"아저씨 아버지랑 관계가 안 좋았어요?"
"복잡한 이유가 있긴 하지만 분명 좋지는 않았지."
"지금도요?"
"응 지금도. 아니 솔직히 말해서 아버지와 연락을 하지 않은지 10년이 넘었어."
"우와..."
소리는 놀랍다는 듯 나를 바라봤다.
"그런데 언젠가 추운 겨울날 우리 집 벨이 울리더니 친척이라고 하는 사람이 온 거야. 그리고 날 한 번 바라보더니 내 이름을 불러줬어. 네가 바로 누구구나, 하면서. 커다란 손으로 내 머리를 쓰다듬어 주셨지. 그리곤 집에 들어와 외투를 벗어서 부엌의 의자에 걸어 놓으시더니 안방으로 들어가 아버지와 심각하게 뭔가를 이야기하셨어. 어렴풋이 기억해보면 아버지에게 이제는 새로운 사람을 만나야 하지 않겠느냐, 뭐 그런 식의 이야기를 하셨던 것 같아. 아버지는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그때까지 줄 곧 혼자 지내셨으니까. 사실 그 정도면 이제 다른 사람을 만난다고 하더라도 누가 뭐라 할 수 없었지. 남자 혼자 어린 자식을 키워낸다는 건 아무래도 쉬운 일은 아니었을 테니까. 그리고 아버진 당시에도 꽤 젊었으니까. 외모도 나쁘지 않았어. 제법 준수했지. 그러니까 언제든지 마음만 먹으면 새 출발을 할 수 있으셨던 거야."
"아저씬 아버지를 닮았어요?" 소리가 잠시 내 이야기를 멈추고는 질문을 했다.
"외모가? 아니면 성격이?"
"둘 다."
"글쎄. 외모라면 내 선택은 아니지만 상당히 비슷하고, 성격은 내 노력에도 불구하고 비슷해."
"닮았다는 말을 왜 그렇게 어렵게 해요?"
"결과는 같지만 그 과정의 약간은 다르니까."
"역시 아저씬 항상 복잡해."
"어쨌든 아버지의 재혼의 걸림돌이라면 바로 나였는데, 사실 난 아버지가 날 떠나 주기를 바랐었어. 아버지가 떠나면 아무래도 난 제대로 살 수 없었을 테지만, 아버지와 같이 살고 있는 삶도 그다지 행복하진 않았었으니까. 아무튼 나는 거실에 앉아 동화책을 읽으며 안방의 이야기를 엿듣고 있었는데 그때 부엌 의자에 걸려있던 친척 아저씨의 외투 주머니 안에 지갑이 보이는 거야. 갈색 가죽 장지갑이었는데 꽤 오래 사용했던 것 같았어. 손가락 모양으로 까만 손 때가 선명하게 보였었거든. 기다란 갈색 지갑을 보자 왜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난 갑자기 돈을 훔쳐야겠다고 생각을 했어."
"어릴 땐 지금과는 다르게 꽤 대범했네요?"
"그러게 말이야. 고작 일곱 살짜리가. 웃기지? 그런데 그땐 정말 간절했어. 나는 뒤꿈치를 들고 조심스레 부엌으로 걸어갔어. 살짝 열린 문 틈 사이로 아버지와 친척 아저씨가 보였는데 여전히 심각하게 이야기를 하고 있었어. 담배를 피우시면서 말이야. 나는 외투에서 지갑을 꺼내 거기서 만원 짜리 하나를 꺼내서 내 주머니에 넣었어. 지갑 안에는 돈이 훨씬 더 많이 있었는데 난 만 원짜리 하나만 꺼냈지. 그거면 충분했거든. 그 당시 일곱 살짜리 어린 꼬마애에게 만원은 상당히 큰돈이었으니까. 나는 조심스럽게 지갑을 다시 외투에 집어넣고는 거실에 돌아와서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동화책을 읽었어. 방 안에선 몇 번의 한 숨소리가 들렸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이야기가 끝나고 친척 아저씨가 나왔어. 그리고 외투를 챙겨 입고는 돌아가셨지. 현관문을 나서기 전에 친척 아저씨는 나를 한 번 쳐다보더니 얕게 한 숨을 내쉬셨어. 아저씨와 눈이 마주치자 난 얼굴이 벌게지고 심장이 빠르게 뛰기 시작했어. 심장의 박동 소리가 귀를 어찌나 쌔게 때리던지 하마터면 내 양손으로 귀를 막을 뻔했지 뭐야. 아마 아저씨가 1초라도 나를 더 바라봤다면 난 주머니에 속에 손으로 꽉 쥐고 있던 만 원짜리를 다시 돌려줬을지도 몰라. 아저씨가 돌아가시고, 아버지가 방에 들어가시고 난 뒤에도 난 한참을 거실에서 주머니 속 만 원짜리를 손에 꽉 쥔 채 있었어. 그게 내가 처음으로 뭔가를 갖고 싶다고 생각했던 경험이야.”
“와. 그러니까 아저씨는 어린 나이에 도둑질을 했네요? 이거 보기엔 샌님 같아 보이는데 장난 아닌데요?”소리는 장난스레 내 어깨를 툭 치며 말했다.
“뭐 그 정도쯤이야.” 난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그래서. 그 돈은 어떻게 했어요? 달랑 만 원짜리 하나를 들고 집이라도 나간 건 아니겠죠?”
“아무것도. 다음 날, 날이 밝자마자 나는 만 원짜리를 휴지통에 버렸어. 내내 불안해서 잠도 제대로 자지도 못했었거든. 새벽 내내 침대 위에서 이불을 뒤집어쓰고는 불안해했어. 손에는 여전히 만 원짜리 하나를 꼭 쥔 채 말이야. 그래서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휴지통 깊숙한 곳에 훔친 만 원짜리는 처박아 버린 거지. 돈을 휴지통에 버리고 나니 어찌나 맘이 후련하던지. 결국 쓰지도 못할 돈을 난 훔쳤던 거지. 그건 나에겐 돈이 아니라 견딜 수 없는 불안이었어.”
“돈을 휴지통에 버렸다고요?”
“응. 휴지통에. 아주 깊숙이.”
“어렸을 때부터 되게 심각했네. 그래도 뭔가 아저씨 다워요.”
“그거 칭찬인 거지?”
“응. 꽤나 후한 칭찬.”
소리는 날 바라보며 대견하다는 듯 흐뭇하게 웃었다.
“난 그 뒤론 뭔가 가져야겠다는 생각을 하지 않아. 결국 내 손에 들어와도 난 그걸 온전히 누리지 못할 테니까. 그게 뭐가 됐든 다음 날 분명히 휴지통 깊숙이 처박아 버릴 게 뻔하니까.”
“정말 그 뒤론 갖고 싶은 게 하나도 없었어요? 하고 싶은 것도?”
소리가 물었고 나는 잠시 생각했다.
‘정말로 내가 갖고자 했던 것은 하나도 없었을까?’
나는 가람이를 생각했다. 내 옆에 있었던 유일했던 친구.
하지만 가람이는 나에겐 손에 꽉 쥐고 있었던 만 원짜리와는 달랐다. 적어도 가람이와 함께 있는 동안 난 불안하지 않았었으니까.
“무언가를 얻고 난 뒤, 그걸 잃어버리면 힘들잖아. 그러니 차라리 애초에 욕심내지 않는 게 좋다고 생각해. 한 번 크게 뭔가를 잃어버리면 몸속의 에너지가 모두 다 빠져나가버려. 다시 무언가를 가져야겠다는 생각조차 들지 않을 정도로 밑바닥으로 가라앉아. 아니 차라리 바닥이라도 있으면 좋겠지만 바닥조차 없는 곳으로 계속해서 떨어지지는 기분이야. 그건 차가운 뱀을 목에 두르고 있는 것보다 더 끔찍해. 나는 그래.”
“그럼 아저씨는 욕심이라는 게 없는 거네요. 나랑 정말 반대다.” 소리가 날 신기한 듯 바라봤고 우린 계속해서 나란히 걸었다.
“시간이 지나고 기억의 색이 바래지면 내가 억지로 붙잡고 있던 욕심과 포기해야만 했던 아쉬움들은 결국 같은 모습으로 수렴해서 나에게 멀어지게 돼있어. 그러니까 부러 잡으려 노력하지 않아도 돼. 미화된 욕심과 아쉬웠던 포기는 애초에 내 것이 아니었던 거지. 그냥 그뿐인 거야.”
“애초에 내 것이 아니었다.” 소리는 내가 뱉은 말을 다시 한번 조용히 중얼거렸다.
우리는 이십 미터쯤을 아무 말하지 않고 걸었다.
머리 위 벚꽃 나무의 가지 사이로 봄 햇살이 나타났다 사라졌다를 반복했다.
“지워버려야 하는데 도무지 지워지지 않는다는 게 그 남자야?” 내가 넌지시 소리에게 물었다. 사실은 아까 전부터 계속 묻고 싶었던 말이었다. 지금까지는 잘 살고 있던 소리의 삶을 조금씩 흔들고 있는 게 바로 소리의 그 남자인지를.
“……”
소리는 말이 없었다. 나는 잠자코 소리를 기다렸다.
“맞아요. 그 남자야.” 소리는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이상해요. 지난번에 그 남자와 함께 여행을 다녀온 후로 우린 다시 원래대로 돌아왔어요.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그렇게 다시 남자가 내 옆에 돌아왔고 모든 게 제자리를 찾았는데 나는 자꾸만 삐걱거려요. 어렸을 때 내 손가락 위에서 엇갈렸던 젓가락처럼. 왜 그런지 그 이유를 나도 잘 모르겠어요. 그래서 답답해. 난 젓가락만 생각하면 아직도 너무 짜증이 나거든요. 그래서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서 그 사람을 지워야겠다 생각했어요. 아까도 말했잖아. 난 이별을 꽤 잘 하는 편이라고. 여느 남자처럼 내가 마음만 먹으면 그 사람도 쉽게 지워질 거라고 생각했어요. 마음먹는 게 어려운 거지 일단 시작된 마음은 거침이 없으니까. 그런데 그게 잘 안된다는 거죠.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모르겠어요.” 소리는 한 숨을 내쉬었다.
“어쩌면 너에게도 휴지통이 필요한 건지도 몰라. 내가 그랬던 것처럼.”
“그럴지도 몰라요. 지워지지 않는다면 버려버려야죠. 눈이 보이지 않는 휴지통 깊숙이.”
우리는 다 마셔버린 커피잔을 담벼락 위에 올려놓았다. 그리고 담배를 피웠다.
“어때요? 맥주 말고 커피도 나쁘진 않죠?”
“그래도 난 맥주가 좋아. 커피를 마실 거면 뜨거운 게 좋고.”
나는 소리와 걸으면서 결국 가람이를 떠올리고 말았다.
그리고 생각했다. 아마도 언젠가 나는 가람이를 휴지통 깊숙이 버려야만 하는 날이 올지도 모른다고.
가람이는 내 삶에서 "여전히"인 사람인 것이었고 나는 그것을 강하게 붙잡고 있었다.
그것 때문에 내가 무엇을 놓쳤고, 무엇을 포기했는지도 모른 채.
가르치고, 여행을 하고, 사람을 만나고, 글을 씁니다.
저서로는 “첫날을 무사했어요” 와 “버텨요, 청춘”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