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름달은 별을 삼킨다
다시 월요일이 시작되었다.
사실 나는 월요일이 그렇게 힘들지 않다. 주말에는 일을 하지 않고 쉬기 때문에 월요일부터는 당연히 다시 일을 시작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편이었고, 그것이 내 삶을 지탱해주는 일종의 약속이라고 생각했다. 아무래도 약속이란 건 좋건 싫건 어쨌든 지켜야 하는 거니까. 나는 일을 하기 때문에 돈을 벌었고 그 돈으로 집세도 내고, 전기세나 수도세 따위를 내며 맥주를 마실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은 일종의 공평한 거래인 것이다. 그것에 불만을 품는다는 것은 불합리한 일이다.
그러니까 쉽게 말해서 나는 월요일이 시작되는 것에 대해서는 불만이 없다는 말이다.
비가 내렸다.
아마 어젯밤부터 비는 꾸준히 내리고 있는 듯했다. 새벽에 창문을 때리는 빗소리를 어렴풋이 들었었다. 이번 비는 아마 봄 비일 것이고, 적당히 대지를 녹여 새로운 생명을 틔울 귀중한 밑거름이 될 것이다. 그러니 나쁘지 않다. 그리고 난 딱히 비를 싫어하지는 않는다. 다만 우산을 챙기는 것이 귀찮을 뿐이지 비가 내리는 날의 눅눅함 분위기는 그럭저럭 즐길만하다. 무엇보다 비가 오는 날 세상은 잠시 들떠있는 걸 멈추고 조금은 차분해 지니까.
출근길 나에게는 작은 설렘이 있었다. 집중하지 않으면 놓치기 쉬운 작은 요동이었지만 그 존재만은 확실했다.
좋은 쪽이 되었건 아니면 나쁜 쪽이 되었건 내가 평상심을 벗어난 감정을 가진다는 건 정말이지 드문 일이었다. 난 룰 안에 갇힌 사람이었고 그것을 힘들어하지 않았으므로 일정하게 반복되는 삶의 형태는 나에게 있어서 굉장히 중요한 부분이었다. 그런 삶에서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이 바로 감정인 것이다. 좋다. 나쁘다. 기쁘다. 슬프다, 따위의 감정들이 내 속에 자리잡기 시작하면 그때부터 일상적인 삶은 깨지는 것이다.
지금까지 나는 이런 감정들을 최대한 배재한 채 살아왔다. 기본적으로 감정이 가져다주는 열매보다는 그 위험성이 더 크다고 생각하는 편이었고, 무엇보다도 내가 감정 자체를 가질만한 사람이나 사건이 없었던 것이다. 세상은 나 만큼이나 지루한 곳이었고, 결국 내가 관여하고 싶은 어떤 것도 만나기 힘들었으니까.
그런데 그런 내 삶에 작은 균열이 생긴 것이다.
이건 정말이지 오랜만에 느껴 본 감정이었고, 어쩌면 내가 한 번도 가져보지 못한 그것이었을지도 모른다. 마치 커피를 열 잔쯤 마시고 카페인이 몸속 곳곳이 퍼져서 심장박동이 빨라지는 그런 느낌.
그건 내가 희형을 좀 더 알고 싶다는 생각이 하게 되었고, 사무실에 가면 희형의 원고를 살펴볼 수 있다는 기대감 때문이었다.
그녀의 원고를 깊숙이 들여다 보고, 그 안의 단어들과 문장들의 배열에 대해 고민을 하고, 그 세계에 내가 관여할 수 있게 된다면 희형을 좀 더 알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렇게만 된다면 그건 말 그대로 그녀와 정말로 가까워질 수 있다는 확신이었다. 도무지 손에 잡힐 것 같지 않았던 희형과 가까워질 수 있다는 작은 기대감이 봄비와 함께 월요일 출근길에 내리고 있었다.
무언가 내 마음속 깊은 곳에서 작은 변화가 시작되었고, 난 그것을 애써 밀어내려 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 작은 변화가 날 어디에 데려다 놓을지 궁금했다.
사무실에 도착하자마자 노트북을 켜고 지난주에 작업을 하던 희형의 원고를 불러왔다. 컴퓨터가 희형의 원고를 불러오는 그 짧은 시간조차도 난 희형을 생각했다. 아마 지난주에 노트북을 집에 가져갔다면 주말 내내 책상에 앉아희형으 원고를 살펴봤을 것이다.
노트북 화면에 희형의 원고가 나타났다. 흰 바탕의 검을 글자들이 아름다워 보였다. 그것들이 살아 움직여 내 눈에 들어오고, 내 마음에 박히는 것 같았다. 흩어져 있는 희형의 조각들을 하나하나 불러와 선명한 이미지를 만들 든다. 점점 내 안에 희형이 커져간다. 비록 희형이 동의하던 아니던 말이다.
그건 “사랑”과는 다른 감정이었다.
희형을 이성적으로 사랑하느냐 묻는다면 난 확실히 아니라고 할 것이다.
단순히 사랑하는 여자를 찾으라고 한다면(나에게 그럴 의지가 있다는 전제 하에) 난 주변에서 쉽게 찾을 수 있을 것이고, 그 사람과 “적당히” 사랑을 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희형은 나에게 그런 존재가 아니었다.
그녀는 내 존재 자체를 건드리는 무언가를 가지고 있었다.
가람이의 죽음 이후로 내가 세상에 벽을 쌓고 무심히 저쪽 구석에 내버려 두었던 내 삶을 희형이 짊어지고 와서 다시 내 앞에 건네주는 것 만 같았다.
“자, 여기. 이건 원래 당신 것이었던 걸 내가 잠시 맡아두고 있었어. 더 이상 모른 체 하지 말라고. 이제 내가 당신에게 가지고 왔으니 어서 받아.”라고 말하며 내 두 손에 건네주는 것 같았다. 그래서 희형과 함께 있으면 이상한 기분도 들었지만 분명 깊은 편안함이 있었다.
항상 부재와 상실에 익숙했던 나의 삶이 채워지는 기분이었다. 그런 기분들로 기억은 나지 않지만 본래의 나로 돌아갈 수 있을 것 같았다.
두 시간을 쉬지도 않은 채 희형의 원고를 교정하는 작업을 했다. 무언가에 홀린 사람처럼 말이다. 아마 주위 사람들이 내가 작업하는 모습을 보고 있었다면 도저히 한 마디도 붙이지 못할 정도로 집중된 상태였을 것이다.
그렇게 두 꼭지의 작업을 마무리하고 나는 잠시 노트북을 덮었다.
계속해서 모니터만 바라보고 있어서인지 목 쪽에 피로가 몰려왔다. 나는 의자에 앉아 가볍게 스트레칭을 하면서 창 밖을 바라봤다. 아침보다 더 거세진 비가 계속해서 내리고 있었다.
나는 담배를 피우러 옥상에 올라갔다.
비상구의 처마 밑에서 담배를 피우며 손바닥을 내밀어 내리는 빗물을 받아냈다. 참 이상한 일이다. 십 년이 훌쩍 넘은 시간 동안 다른 사람에게 감정이라는 것을 느껴 본 적이 없었는데 이제 그 견고한 문이 열리려고 하는 것이다. 그건 사랑은 아니었지만 내 몸 깊숙한 세포 하나하나가 희형을 원했다. 자식이 부모에게 갖는 감정과 비슷할지도 모른다. 물론 난 그런 감장을 가져 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다만 추측할 뿐이다. 한 가지 불안이라면 난 아직 희형을 잘 모른다는 것이었고, 혹시나 내가 그녀를 알아가려고 하면 그녀가 떠나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이었다.
내 옆의 모두가 나를 남겨두고 떠나버렸던 것처럼.
*
추억이 당신의 현실을 앞지르는 순간, 당신의 삶은 끝이 난다.
사실 그건 누구의 책임도 아니고 누구도 해결해 줄 수는 없는 문제이다.
추억을 껴안고 사는 것도 당신이고 그것으로 인해 계속해서 현실에서 허우적대는 것도 바로 당신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당신이 알아야 할 사실이 하나 있다.
그건 바로 당신이 추억 때문에 허우적대고 있는 현실도 분명 언젠가는 소중한 추억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이다.
당신이 과거의 추억 때문에 그것을 파괴하지만 않는다면 말이다.
그러니 추억이 당신의 현실을 앞지르는 그 순간 당신은 그냥 그러려니 하면 된다.
추억에 연연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에 연연하면 된다.
누가 뭐라 해도 중요한 건 바로 현실의 삶이니 말이다.
이제 당신 앞에는 두 가지 선택이 놓여있다.
현실을 아름다운 추억으로 만들어 가던가,
아니면 그냥 추억을 계속해서 추억하며 현실을 불행하게 살던가.
희형의 원고 중 “날카로운 추억”의 일부분이다.
원고를 살펴보면서 예전에 봤던 영화가 생각났다. 너무 오래전이라 영화의 제목은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대충 내용은 생각이 난다.
영화의 주인공은 기억 상실을 앓은 환자였다.
자신의 삶의 최근 기억들부터 점점 잃어가는 병이었다. 주인공은 정신과 의사와 매일 상담을 해나가면서 잊어버리기 싫은 삶의 소중했던 추억들의 리스트를 하나씩 만들어 간다. 그리고 매일매일 자신의 추억을 강화시킨다. 자신이 만들어 놓은 리스트에 있는 추억들을 하루에 열 번이 넘게 혼자 읽는 것이다.
잊지 않으려 계속해서 추억을 기억하려 하는 것. 하지만 매일 기억하려 하는 것들보다 잊어버리는 것들이 더 많았다. 주인공은 결국 하루하루를 보낼수록 모든 기억들을 잊어가고 급기야 자신이 만든 리스트를 부정하기 시작한다.
내가 저런 삶을 소중히 생각하였다고요? 말도 안 돼요.라고 말하기까지 한다.
결국 소중한 추억은 없는 것일지도 모른다. 자신이 그렇게 생각하고 싶은 추억이 있을 뿐.
가람이와 내가 함께 만들어 갔던 우리의 추억들은 정말로 소중한 추억이었을까? 아니면 우리가 암묵적으로 동의하고 소중하다고 여기기로 한 걸까? 난 이 의문에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
나는 야간 자율학습시간에 대부분 공부는 하지 않고 한쪽 귀에 몰래 이어폰을 낀 채로 음악을 듣는다. 학교에서 저녁식사를 하고 7시부터 10시까지 야간 자율학습을 해야 하므로 내 가방엔 항상 네 장의 CD가 있다. 저녁에 자기 전 내 방 책장에 꽂혀 있는 여러 장의 CD 중에서(자세히 세어보진 않았지만 백장쯤 있는 것 같다. 용돈을 받으면 대부분 음악 CD를 샀으니까 꽤나 많았다) 다음 날 야간 자율학습 시간에 들을 네 장의 CD를 골라서 가방에 미리 넣어 두었다. 장르도 다양했다. 가요에서부터 팝까지. 그리고 종종 연주곡 따위들도 있었다.
그러니까 나에게 야간 자율학습 시간은 음악이 없으면 꽤나 견디기 힘든 시간이었다.
분명 “자율”학습이었지만 누구나 인정하듯 “타율”학습이었기 때문에 나는 그냥 뭐 좋아하는 노래나 들으면서 시간을 보내면 되지, 라는 생각으로 시간을 보냈다.
유재하와 김광석 그리고 내 취향이라고 말할 수는 없었지만 본 조비의 노래와 마지막으로 비틀스의 노래를 듣는 중에 자율학습의 끝을 알리는 종이 울렸고 가람이와 나는 가방을 챙겨 학교를 빠져나와 교문에서 큰길까지 이어지는 좁은 길을 걸어 내려오고 있었다.
“이번 주말에 바빠?”
나보다 세 발자국 정도 앞서 길을 걷다가 가람이가 뒤를 돌아보며 물었다.
“아니.” 하고 나는 말했다.
주로 가람이가 묻고 나는 대답을 한다. 내가 가람이에게 먼저 뭔가를 묻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주말에는 별로 하는 일이 없어서 세 끼 먹던 밥을 두 끼만 먹는 것 말고는 그다지 특별한 일은 없어.” 나는 내 앞 쪽 땅바닥에 떨어져 있는 돌을 발로 차며 말을 이었다.
“‘세 끼 먹던 밥을 두 끼 먹는 것 말고 그다지 특별한 일은 없어.’ 이거 너무 시시한 거 아냐? 그래도 주말인데 데이트를 한다던가 아니면 방 문을 잠그고 밀린 성인 잡지를 벗 삼아 자위행위를 한다던가 그것도 아니면 으슥한 곳에서 여자애 브래지어 끈이라도 한 번 풀어봐야지. 안 그래?” 가람이는 발걸음을 멈추더니 제법 진지하게 나에게 말했다.
“내가 그런 걸 할 리가 없잖아.” 나는 싱겁다는 듯 투덜 기리며 말했다. “설마 넌 주말마다 그런 걸 하는 건 아니겠지?”
“뭐. 가끔은.”
“정말?”
“왜? 너도 여자애 브래지어 끈을 풀어보고 싶은 거야?”
“생각보다 변태 녀석이군.”
나는 가람이의 어깨를 가볍게 툭툭 치고는 가람이를 지나쳐 앞으로 걸어갔다.
“저기 그럼 이번 주말에 우리 집에 오지 않을래?”
가람이가 평소보다는 조금은 조심스럽게 물었다.
“너희 집에? 함께 여자애의 브래지어 끈이라도 풀게?”
“흠.” 가람이는 손을 턱에 가져가며 나를 바라보았다. “너도 생각보다 변태 녀석이군.”
“다 너 때문이잖아.”
“장난이고. 생각해보니까 우리 집에 한 번도 온 적이 없지?”
“아마도.”
“‘아마도’” 가람이는 내 말투를 흉내 내며 내 말을 따라 했다.
“하지 마.”
“하지 마.”
“정말이야. 그만 해. 하나도 재미 었어.”
나는 가방을 메고 있던 가람이의 등을 가볍게 툭 쳤다.
“미안 미안. 하지막 역시 네 말투는 웃겨. 뭔가 추리극에 나오는 사립탐정의 말투 같아. ‘당신이 범인이군요.’ 하는 그런 말투란 말이야.”
가람이는 말을 하면서도 계속해서 키득거렸다.
“난 한 번도 그렇게 생각해 본 적 없어.”
“나중에 연극을 할 기회가 생기면 무조건 탐정 역할을 맡으라고. 정말이지 넌 잘 해낼 거야.”
“그런 기회가 생길 리도 없겠지만 생긴다고 해도 할 생각도 없어. 연극을 하느니 차라리 지루한 물리선생님의 설명을 하루 종일 듣고 있는 게 나아.”
“생각만 해도 끔찍하군.”
우리는 그런 시답지 않은 이야기를 하면서 길을 걸었고 어느새 갈림길 앞에 섰다. 나는 여기서 버스정류장까지 좀 더 걸은 다음 버스를 타고 집에 가면 되고 가람이가 사는 동네는 오른쪽으로 돌아서 큰길을 따라 십 분쯤 걸으면 된다.
“아까 했던 이야긴데. 이번 주 일이욜 저녁에 우리 집에 올래? 지금 저녁 식사에 널 초대하는 거야. 우리 부모님도 널 한 번 보고 싶어 하시고. 내가 종종 집에서 네 이야기를 하니까.”
가람이는 헤어지기 직전 다시 나에게 자신의 집에 놀러 오라고 하였다.
“내 이야기를?”
“응. 뭐 그다지 많은 이야기를 한 건 아니지만.”
“무슨 이야기를 했는데?”
“말은 거의 하지는 않고, 말투는 추리극의 탐정 같고, 아직은 여자애 브래지어 끈도 못 풀어본 동정 변태라고.”
“설마. 정말로 그렇게 말한 건 아니겠지?” 나는 가람이의 말을 자르며 말했다.
“진짠데? 걱정 마 우리 부모님은 그래도 꽤 개방적이고 시대를 앞서가는 분들이라서...”
“맙소사.”
“풉. 장난이고. 매일 붙어 다니는 친한 친구라고 했어. 그랬더니 언제 한 번 집으로 초대하라고 하시더라고. 같이 밥이나 한 번 먹자고. 어른들은 왜 그렇게 밥에 집착하는지 모르겠어.”
“다행이네. 알겠어. 뭐 딱히 할 일도 없으니까. 일요일에 먹는 밥 두 끼 중에 한 끼는 너희 집에서 먹으면 되겠네.”
“오케이. 그런데 우리 집에 찾아올 수 있겠어?”
“아마도. 대충 어디쯤에 있는 동네인지 아니까. 자세한 주소만 알려줘.”
가람이가 살고 있는 동네는 우리 집과는 학교를 가운데 두고 반대 방향에 있었다.
“우리 동네는 꽤 조용한 동네야. 너무 조용해서 가끔은 아무도 살고 있지 않은 것 같기도 해."
가람이는 어깨를 으쓱 거리며 말했다.
"아무도 살고 있지 않는 동네?"
"응. 분명 사람들이 살고 있기는 한데 모두 적당한 표정으로 자신은 숨긴 채 살고 있는 곳이거든. 골목을 오가다 마주치면 적당히 인사를 하고 적당히 웃음을 짓지. 그리고 적당히 돌아서서 다시 각자의 집으로 돌아가. 아마 우리 집에 불이 나도 모두들 적당히 바라보며 ‘그것 참 안됬군요.’라고 적당히 위로하고는 다시 아무렇지도 않게 식탁에 앉아서 저녁식사를 할 걸. ‘오늘은 스테이크가 좀 질기네.’ 따위의 말을 하면서 말이야. 뭐 대충 그런 느낌의 동네야. 너희 동네는 어때?”
“우리 동네? 뭐 별 거 없어. 그냥 평범해.”
나는 우리 동네를 떠올려 봤다. 우리 동네라고 해서 딱히 특별할 건 없었다. 집들은 여유 없이 다닥다닥 붙어있었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빠듯하게 살고 있었다. 때문에 이른 시간에 아침이 시작되었고, 저녁 늦게야 하루가 마무리되는 그런 곳이었다.
난 우리 동네에 별다른 감흥이 없었다.
태어나면서부터 쭉 살았던 동네고, 지금 살고 있는 집도 태어나면서 쭉 살아온 집이다. 다행이라면 그래도 방이 두 개라서 난 혼자만의 공간을 가질 수 있었다는 것. 그것이면 충분했다.
“그래도 너희 동네는 뭔가 좀 북적거리는 느낌이 있지 않아? 사람이 '정말로' 살고 있는 것 같잖아. 안 그래?”
“뭐 그렇게 생각해보면 그럴지도 몰라. 나는 그다지 신경 쓰진 않지만.” 하고 나는 말했다.
쉽게 말해서 가람이의 동네는 잘 사는 동네다. 집들도 대부분 잘 지어진 2층 집이고, 골목마다 주차돼있는 차들도 대부분이 외제차다. 그러니까 전문직에 종사하고 있는 사람들이 많이 살고 있는 동네. 다들 사회적인 지위가 있기 때문에 적당히 서로의 영역을 지키며 살아가는 것이다. 그에 반해 우리 동네는 자신들의 삶이 바빠서 서로 신경 쓸 겨를 조차 없다. “적당히” 살아갈 여유가 없는 동네. 하지만 나는 딱히 불만 같은 것 없다. 서로가 각자만의 삶이 있는 거니까. “적당히” 살아가는 것도 나쁘지 않고, 여유는 없이 바쁘게 살아가는 것도 나쁘지 않다.
“그런데 이번 주말에 무슨 일이 있는 거야?”
“응.” 하고 가람이는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있잖아. 갑자기 이런 말을 하는 게 좀 웃기긴 하는데. 이번 주 일요일이 내 생일이야. 그리고 아마 집에서 가족끼리 간단히 식사를 할 것 같아. 그런데 너도 와서 같이 밥을 먹었으면 좋겠어. 네가 부담스럽지만 않다면 말이야.”
확실히 갑작스러운 초대였고, 가람이 답지 않은 방식이었다. 그러고 보니 가람이는 평소에 집이나 가족에 대해서 이야기하지 않았던 것 같다. 나도 일부러 물어보지 않았었고.
"생일이면 좀 더 크게 파티 같은 걸 하는 게 낫지 않아? 아마 네가 생일파티를 한다고 하면 오고 싶어 안달하는 여자들도 꽤 많을 텐데."
"아, 생각만 해도 질색이야." 가람이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왜? 생일이라고 하니까 좀 부담스럽나?"
“그럴 리 없잖아. 더군다나 네 생일인데. 초대해줘서 고마워.”
“오케이. 엄마한테 맛있는 음식을 해달라고 해야겠군. 뭐 좋아하는 음식이라도?”
“나야 별 상관없어. 하지만 난 누군가와 함께 밥을 먹는 게 익숙지는 않아. 사실 그런 경험이 많지 않거든. 식탁 위에서 내가 한 마디도 하지 않을지도 몰라.”
사실 나는 누군가의 집에 방문을 하는 건 사실 처음이었다. 누군가에게 초대를 받은 적도. 하지만 가람이의 초대가 당황스럽긴 했지만 그래도 싫지는 않았다.
“그냥 식탁에 앉아서 차려진 음식만 먹으면 되는데 무슨 걱정이야?” 가람이가 웃으며 말했다.
“그런데 내가 뭐 준비해야 할 게 있나? 예를 들어서 어떤 옷을 입고 가야 한다던지 아니면 너희 부모님 앞에서 어떤 말을 하지 말아야 한다던지 그런 거.”
“그런 건 없어. 무슨 면접 보러 가는 것도 아닌데. 그냥 그날 늦지 않게만 오면 돼. 그리고 가리는 음식은 없지?” 가람이가 웃으며 말했다.
“가리는 음식은 딱히 없어. 뜨거운 가지 요리를 잘 못 먹긴 하지만.”
“뜨거운 가지 요리? 괜찮아. 우리 엄마는 그런 요리를 한 번도 한 적이 없으니까. 걱정하지 않아도 돼.”
가람이는 가방에서 노트를 꺼냈다. 그리고 노트를 한 장 찢더니 구 위에 우리 집에서 자신의 집까지 찾아오는 길을 세세하게 그려주었다.
7시. 꼭 늦지 말 것, 이라는 말도 적어서.
일요일 저녁 7시.
나는 정확히 7시가 되자 가람이 집의 벨을 눌렀다.
사실 10분쯤 미리 도착했지만 왠지 7시 정각에 들어가야 할 것 같아서 골목길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기다리면서 담배를 피우고 싶었지만 담배냄새가 예의가 아닐 것 같아서 참았다. 골목길에서 시간을 때우는 동안 가람이가 말했던 “적당한” 이웃들과 세 번 마주쳤고, 그들은 나를 경계하는 눈빛으로 바라봤다. 물론 “적당히” 웃으면서. 이런 동네에 사는 건 그렇게 편하지만은 않겠구나,라고 생각했다.
벨을 누르니 가람이가 나왔다. 가람이는 평소와 다르게 깔끔한 옷차림이었다. 사실 우리는 매일 교복을 입고 다녔기 때문에 가람이가 평상복을 입은 모습은 처음이었다. 가람이는 얼굴도 잘 생겼고 키도 컸으며 어깨도 딱 벌어져서 그런지 단지 셔츠 위에 카디건을 입고 있었을 뿐인데도 꽤나 멋있었다. 역시 주위에 여자들이 많을만했다. 나도 가람이같이 생겼으면 많은 여자애들의 브래지어 끈을 풀어볼 수 있었을 텐데, 라는 생각을 잠시 했다.
“평소에 집에 있을 때도 그렇게 멋있게 차려입는 거야?” 정원을 지나 현관문까지 걷는 동안 내가 물었다.
“그럴 리가 없잖아. 오늘은 가족끼리 식사하는 날이니까. 거기다 내 생일이기도 하고.” 가람이가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매일 집에서 이런 옷을 입고 지내는 삶은 드라마에서만 나올 뿐이라고.”
“그렇겠군. 역시 드라마가 문제야.” 나는 가람이 말에 맞장구를 쳤다.
나는 가람이에게 사온 꽃다발을 건넸다.
“뭘 사야 할지 몰라서. 그래도 생일이니까 꽃 정도는 있어야겠지?”
“나쁘진 않은데?”
가람이는 꽃다발을 받더니 향기를 맡아보았다.
“엄마가 좋아하실 거야. 꽃이라면 환장을 하시거든.”
집에 들어가 보니 식탁 위엔 정말 많은 종류의 음식이 차려져 있었다. 태어나서 저렇게 많은 음식을 한꺼번에 본 적이 없었다. 과연 오늘 저 음식을 다 먹을 수는 있을까? 하는 걱정이 되기도 했다.
나는 가람이의 부모님에게 인사를 하고 자리에 앉았다.
가람이의 부모님은 “적당히” 웃으며 나를 맞이해 주셨다.
밥을 먹는 내내 가람이는 평소와 다르게 말이 없었고, 나는 평소처럼 말이 없었다.
중간중간 가람이 어머니는 우리의 학교 생활에 대해서 물으셨고 나는 적당히 괜찮은 단어들을 골라내어 대답을 했다. 아, 그리고 꽃이 정말 예쁘다고 고맙다고 하셨다. 꽃이 예쁘다는 말씀을 하실 때만은 진심이 담겨있는 것 같았다.
그 많던 음식을 어떻게 먹은 지 잘 기억조차 나지 않은 그런 저녁 식사 시간이었다.
밥을 먹는 내내 가람이의 아버지는 한 마다 디도 하지 않으셨다. 정말 한 마디도.
그렇게 지루하고 조용했던 식사 시간이 끝나고 가람이와 나는 2층에 있는 가람이의 방으로 올라갔다.
“후…” 가람이가 크게 한 숨을 내쉬었다. 그리고는 답답해 보였던 카디건을 벗어서 침대 위로 던졌다. “미안. 불편했지? 아버지와 함께 하는 저녁식사는 항상 이런 식이야. 정말이지 한 마디도 제대로 하기 힘들어. 먹는 음식이 다 얹혀버릴 것만 같다고.”
“평소엔 함께 밥을 안 먹는 거야?”
“응. 세 식구가 함께 식사를 하는 건 정말 드문 일이야. 일 년에 몇 번 안돼.”
“뭐. 식구라고 해서 꼭 밥을 함께 먹을 필요는 없지. 나도 주로 밥을 혼자 먹으니까.”
“우리 아버진 큰 배를 타셔. 선장이야. 그래서 일 년에 두세 번 집에 들어와. 그게 오늘이야. 올 해는 운이 좋은 건지 나쁜 건지 아버지가 집에 오시는 날이 내 생일과 겹친 거지.”
“아버지가 선장이셨구나.”
나는 잠시 큰 배를 타시는 가람이의 아버지를 상상해 봤다. 아마 배 위에서도 별다른 말을 하지는 않을 것 같았다. 아까 저녁 식탁 위에서처럼 말이다.
“어릴 땐 그게 좋았었어. 집에 돌아오시는 날엔 정말 신기한 물건들을 많이 사 가지고 오셨었거든. 처음 보는 동물의 박제라던지, 아직 한국엔 나오지 않은 최신형 게임기라던지 그런 거. 그래서 아버지가 언제 집에 오시는지 달력에 빨간색으로 표시해놓고는 매일매일 기다렸었어. 그런데 언제부턴가 아버지가 불편해지기 시작했어. 그건 아마 함께하지 못했던 시간의 공백 때문일 거야. 아버진 나의 성장과정을 알지 못했으니까. 내가 무슨 생각을 하며 사는지. 학교 생활을 어떤지. 일 년에 두세 번 보는데 그런 걸 어떻게 알 수 있겠어? 그러다 보니 시간이 갈수록 선물을 많이 사 오시는데 점점 기다려지거나 기대되지가 않는 거야.” 가람이는 담담한 어투로 말했다.
나는 아무 말하지 않았다. 평소에 무척이나 밝았던 가람이의 모습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가장 큰 문제는 뭔지 알아?”
“응?”
“가장 큰 문제는 어머니도 아버지도 각자 애인이 있다는 거야. 서로 알고 있지만 서로 모른 채 하고 계셔. 어쨌든 가정을 유지는 하는 거지. 그게 알맹이도 없는 빈 껍데기일지라도 말이야. 그리고 그런 억지 노력의 이유가 나라는 게 정말 죽을 만큼 견딜 수가 없어. 그나마 남아있는 자식에 대한 책임감? 그래서 나는 이 집을 벗어나고 싶어. 이 동네도. 내 주위에 모든 게 다 거짓말 같고 그 속에 파묻혀있는 내가 존재하지 않는 느낌이야. 물론 내 옆의 넌 진짜지만.”
가람이는 창문을 열고 담배를 꺼냈다.
“집에서 담배를 피워도 괜찮아?”
“걱정하지 마. 어머니도 아버지도 몇 년째 내 방엔 한 번도 들어온 적이 없어. 그리고 내가 담배를 피운다는 것쯤 알고 계실 테니까.”
“그건 괜찮은 일이네.”
나도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 입에 물었다. 사실은 식사하는 내내 담배 생각이 간절했었다.
“지금 내가 가장 하고 싶은 일이 뭔지 알아?” 가람이는 창 밖으로 담배연기를 뱉으며 말했다. 선선한 저녁 바람이 담배 향기를 품고 내게 전해졌다.
“뭘 하고 싶은데?”
“우선 이 창문에서 뛰어내리는 거지. 고작 해봐야 2층이니까 죽거나 다치지는 않을 거야.”
가람이는 정말 창문에서 뛰어내리기라도 하겠다는 듯 몸을 깊게 창문 쪽으로 기울였다.
“그다음엔 전속력으로 달려서 이 동네를 벗어나는 거야. 정말 전속력으로 달려서. 마치 우사인 볼트처럼. 달리면서 적당히 웃고 있는 이웃들을 마주치면 정말 속 시원하게 큰 목소리를 욕을 뱉는 거지. 그럼 엄청 당황한 표정을 지을 거야. 그렇겠지?”
“음. 누구나 우사인 볼트처럼 전속력으로 달리는 사람에게 느닷없이 욕을 먹으면 당황한 표정을 짓기 마련이지. 분명 행복한 기분은 아닐 테니까.” 하고 나는 말했다.
“아, 빼먹은 게 있는데 말이야. 물론 너도 나와 함께 뛰어야 해.”
“나도? 하지만 난 달리기가 빠르지 않은 걸.”
“그런 건 어떻든 상관없어. 일단은 상상이니까. 그리고 실제로 우사인 볼트도 생각보단 빠르지 않을지도 몰라.”
“아니. 우사인 볼트는 빨라. 생각보다 더.”
“알겠어. 그건 그냥 넘어가자고. 아무튼 우리 둘은 빠르게 달려서 이 지긋지긋한 동네를 빠져나가는 거지. 물론 계속해서 욕을 뱉어대면서 말이야. 그다음에 이 동네를 벗어나면 주유소와 붙어있는 맥도널드 알지? 거기에서 빅맥 세트를 시켜 먹을 거야. 계속해서 달렸으니까 배가 무척 고플 테니까. 넌 뭘 먹을래?”
“난 상하이 치킨버거 세트. 소고기보단 닭고기가 더 좋으니까.”
“오케이. 그렇게 햄버거를 다 먹고 난 뒤 물리선생님 집 앞에 찾아가 선생님 차의 타이어를 모조리 펑크 내는 거야. 그리고 차의 보닛 위에 매직으로 ‘당신 수업은 정말이지 달팽이만큼 지루해’라고 적을 거야.”
“아무리 그래도 그건 좀 심하지 않나? 물리 선생님은 그래도 꽤나 성실한 편이니까.”
“아무리 성실해도 설명이 지루한 건 용서가 안 되는 거야.”
가람이는 상당히 단호했다.
“좋아. 그다음은?”
“그다음?”
“응. 물리선생님 차를 엉망으로 만든 다음엔 뭘 할 건데?”
“바보야 그건 뻔하잖아. 그때부턴 널 데리고 세상의 모든 여자의 브래지어 끈을 풀으면서 돌아다니는 거지. 돈키호테처럼 절대 뒤를 돌아보지 않고 앞만 보며 전진하는 거야. 어때 멋지지?”
“아니. 끔찍해.”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오. 소년이여. 야망을 갖어라. 내가 너에게 세상 모든 여자의 브래지어를 허락하노라.”
가람이는 성우 목소리를 흉내 내면서 내 머리에 손을 얹고 말했다.
가람이와 나는 침대를 뒹굴며 숨이 멎을 정도로 크게 웃었다. 덕분에 손에 쥐고 있던 담배가 이불 위에 떨어져 한 바터면 불이날 뻔했다. 가람이는 담배 때문에 구멍이 뚫린 이불을 바라보며 한 번 더 크게 웃었다.
나는 10시가 다 돼서야 가람이 집에서 나왔다.
가람이의 아버지는 이미 방에 들어가 주무시고 계셨고, 어머니는 거실에서 소파에 앉아 티브이 드라마를 보고 계셨다. 거실의 테이블 위엔 내가 사 온 꽃이 예쁜 화병에 담겨 놓여 있었다.
가람이는 나를 버스정류장까지 데려다주었다.
우리는 인적이 드문 골목으로 접어들자마자 담배를 꺼내어 입에 물었다.
하늘 위엔 커다란 보름달이 떠 있었다.
“난 보름달이 싫어. 너무 이기적이야.”
가람이가 하늘 위에 커다랗떠있는 보람 달을 보며 말했다.
“이기적이라고?”
“보름달이 뜬 날에는 별들이 잘 안보이잖아. 자신의 빛으로 모든 걸 다 삼켜버리지. 정작 그 빛은 태양한테 빌려온 거면서 말이야.”
“생각해보니까 그렇네. 보름달이 뜨는 날엔 별이 안 보여.”
“보름달이 별을 삼키는 거지.”
나는 가람이가 한 말을 조용히 내뱉었다. 보름달이 별을 삼킨다.
“오늘 널 부른 건 잘못한 일인지도 몰라. 하지만 너마저 없었다면 정말 우울한 생일이 됐을 거야. 서로를 사랑하지 않는 부모님과 함께 식사를 하는 건 쉽지 않은 일이야. 그 순간에도 각자가 다른 사람을 생각하고 있을 테니까.”
“난 괜찮아. 그래도 네 덕분에 오랜만에 괜찮은 음식을 먹었어.”
“그렇게 생각해주니 고맙네.”
하늘 위 보름달은 여전히 밝기만 했고 가람이와 나는 말없이 계속해서 담배를 피웠다.
결국 그 해 가람이의 생일은 나와 함께 했던 처음이자 마지막 생일이 되었다. 다음 해 생일을 맞이하기 전 가람이는 죽었으니까.
그 날. 가람이와 함께했던 생일 저녁의 기억이 나에겐 추억일까?
희형의 글처럼 가람이와의 추억이 자꾸만 내 현실을 앞질러 버려서 결국 난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있는 걸까?
그 날 분명 가람이가 나에게 무언가를 전해주려 했었다.
잘은 모르겠지만 가람이도 나도 결국은 자신만의 빛을 내고 싶었던 별이었을지도 모른다.
현실은 커다란 보름달에 밀려 사라지고는 있지만 그래도 빛을 내보려 안간힘을 써대는.
가르치고, 여행을 하고, 사람을 만나고, 글을 씁니다.
저서로는 “첫날을 무사했어요” 와 “버텨요, 청춘”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