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가요, 엄마

보름달은 별을 삼킨다

by 최전호

자고 일어나니 저녁 5시였다.

그러니까 아침에 소리의 집에서 돌아와 희형과 아침을 먹은 후 꼬박 7시간을 넘게 잔 것이다. 오랜만에 아무런 꿈도 꾸지 않은 깊은 잠이었다. 눈을 떠보니 희형이 옆에 누워 있었다. 아침에 입은 옷을 그대로 입은 채 내 옆에서 몸음 웅크린 채 잠들어 있었다. 내 손을 잡은 채로. 내가 몸을 움직이자 금세 희형은 눈을 떴다. 그러더니 옆에 누워있는 날 확인하고는 다시 슬며시 눈을 감았다. 나는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우리 오늘 저녁은 나가서 먹자.” 나는 그녀의 가슴에 볼을 대고 말했다. 심장 소리가 내 귀에 들렸다. 그녀의 심장 소리는 느리지만 규칙적이었다.

“좋아. 맛있는 걸 먹자. 오늘은 내가 사겠어.” 그녀는 여전히 눈을 감은 채 대답했다.

“괜찮아. 내가 살 게. 내가 사고 싶어.”

“비싼 걸 먹을 건데 괜찮겠어?” 희형이 웃으며 몸을 일으켰다. 그녀는 얼굴에 평안한 미소를 뗬다.

“응 괜찮아. 뭐든지 당신이 먹고 싶은 걸로 먹자.”

“오늘은 프랑스 식으로 저녁을 먹어보자고. 우리가 처음 하는 외식이니까.”

희형은 기분이 무척 좋아 보였다. 희형의 말을 듣고 보니 우리는 정말 지금까지 외식을 한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집에서 밥을 해 먹던가 아니면 내가 사가지고 들어간 도시락을 먹었다. 그것도 아니면 각자 어디에선가 저녁을 해결하고 오던지.

나는 세수를 하고 정성스럽게 면도를 했다. 세탁소 비닐이 벗겨지지 않은 채 옷장에 걸려있던 하얀색 셔츠를 꺼내 입고 베이지식 면바지를 입었다. 그리고 위에 얇은 회색 카디건을 걸쳤다. 폴스미스 향수를 양 손목에 두 번 뿌리고는 거울 앞에 모습을 비춰보았다. 이 정도면 오늘 희형과 프랑스 요리를 먹는데 부족함이 없을 듯했다.

희형은 몸에 달라붙는 검은색 원피스를 입었다. 가슴이 브이자로 깊게 파여 있었고 발목까지 내려오는 긴 원피스였다. 처음 보는 옷이었다. 거기에 반짝이는 물방을 모양의 목걸이와 귀걸이 팔찌까지 찼다. 나는 잘 알지 못하지만 꽤 값나가 보였다. 가슴까지 내려오는 머리는 야무지게 업스타일로 묶어 올렸다. 그러니까 그녀는 영화에 나오는 여주인공처럼 옷을 입었다. 손가락 사이에 칵테일 잔을 끼우고 다른 한 손으로 입을 가리며 웃는, 그리고 멋들어진 남자 주인공과 왈츠를 추며 많은 사람들의 주목을 받는 그런 여주인공 말이다.

“이봐. 당신이 그렇게 예쁘게 입어버리면 내가 도대체 뭐가 되는 거야? 난 고작해야 셔츠에 면바지인데.” 나는 희형의 원피스의 자크를 올리면서 투덜거렸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나는 희형의 예쁜 모습이 너무 좋았다. 희형은 충분히 그런 자격이 있는 사람이었으니까. 거기다 희형 덕분에 나까지 덩달아 영화의 주인공이 된 듯했다.

“내가 아까 말했잖아. 오늘은 프랑스 스타일로 저녁을 먹을 거라고. 프랑스에선 이 정도는 입어줘야 한다고.” 희형이 눈을 찡긋거리며 말했다. 나는 그녀가 눈을 찡긋거리는 게 좋았다. 장난꾸러기 같은 표정인데 무척 사랑스러웠다.

“나는 어때? 이 정도면 프랑스 저녁 식사에 괜찮나?”

“음... 머리에 뭣 좀 발라봐. 지금은 너무 덥 수록해.” 희형이 시선을 내 발 끝부터 머리 위까지 이동시키며 나를 살폈다. “그리고 셔츠는 몸에 좀 더 달라붙는 건 없나? 지금은 너무 아저씨 같아. 당신도 좀만 더 잘 꾸미면 꽤 괜찮을 텐데. 일단 몸매가 좋으니까.”

“지적과 칭찬을 동시에 하면 헷갈린다고. 그러니까 머리와 셔츠만 고치면 된다는 거지?”

“응. 일단은. 아, 향수는 참 마음에 들어. 내가 좋아하는 향수야.”

“고맙군.” 나는 말을 마치고 덥수룩한 머리를 왁스를 발라 정리했다. 그리고 흰색 셔츠를 벗고 회색 스트라이프가 있는 슬림핏의 셔츠를 입었다. 난 차이점을 잘 모르겠지만 희형이 내 모습을 보더니 훨씬 더 낫다고 했다. “아, 그리고 설마 그 차림에 운동화를 신으려고 한 건 아니겠지? 나갈 땐 꼭 갈색 로퍼를 신어. 알겠지?” 희형이 향수를 뿌리며 말했다.

“내가 아무리 패션 센스가 없다고 해도 그 정도는 아니라고.”


우리는 집을 나섰다.

택시를 타고 희형이 알고 있다는 레스토랑으로 향했다. 예약을 하지는 않았지만 아마 자리가 있을 것이라고 했다. 거기다 그곳 요리사와 잘 아는 사이니 두 자리쯤 빼는 건 문제도 아니라고.

“그 요리사가 프랑스에서 요리 공부를 할 때 같은 동네에 살았거든. 처음엔 정말 어떻게 이런 요리를 먹지 할 정도로 이상한 요리를 만들어서 가져왔었는데 시간이 일 년, 이 년 지나자 제법 괜찮은 요리를 만들더라고. 이젠 정말 맛있는 요리를 만들어. 당신도 마음에 들 거야.”

“사실 난 제대로 된 프랑스 요리를 먹어본 적이 없어. 오늘이 처음이야. 그러면 달팽이도 먹는 건가?”

“에스카르고를 말하는 거야? 뭐 당신이 원한다면 애피타이저로 시키자. 그런데 사실 난 잘 먹지는 않아. 뭐랄까 좀 미끌 거리는 느낌이야. 그리고 달팽이는 먹기엔 너무 귀엽다고.”

“달팽이가 귀여워? 난 한 번도 그런 생각을 해본 적은 없는데. 독특하네.”

“귀엽지 않아? 몸을 늘렸다 줄였다 하면서 천천히 앞으로 나가가는 게. 거기다 등에 지고 다니는 동그란 집도 너무 귀여워. 뭐 귀여운 건 귀여운 거고 오늘은 일단 먹어보자. 당신의 처음에 함께 하는 건 기분 좋은 일이니까. 나에게는.”

“좋아.”

세상은 무얼 먹을지 고민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바쁘게 시간이 흘러간다. 우리가 달팽이 요리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고 있는 사이 택시는 우리를 목적지에 내려다 놓았다. 압구정의 중심가에 위치한 곳이었다.

식당 앞에 도착하자 웨이터가 웨이팅 리스트를 살펴보며 우리에게 예약을 했느냐고 물었다. 내가 예약은 하지 않았다고 말을 하려 하자 그녀는 가볍게 팔짱을 낀 손에 힘을 주면서 나를 말렸다. 그리고 고개를 살짝 내 쪽으로 돌려서 내 귀에 작게 속삭였다.

“잠시만. 여기서부턴 내가 알아서 할게.”

나는 혼자 얼굴이 빨개져 헛기침을 했다. 역시나 이런 곳은 나에게 낯선 곳이었고 난 아무것도 몰랐고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출판사에서 가끔 작가들을 접대할 때 빠지지 않고 나가볼 걸 그랬다. 귀찮고 불편해서 그런 자리를 모두 피했던 것이 지금에 와서는 조금 후회되었다.

희형은 웨이터에게 다가가 조용히 말을 건넸고, 웨이터는 셔츠 깃에 달린 작은 무전기에 대고 무언가를 말했다. 잠시 후 웨이터는 전망이 좋은 창가 자리로 우리를 안내했다. 웨이터는 국어사전만큼 두꺼운 메뉴판을 우리에게 건네주고는 웃으며 사라졌다.

“도대체 웨이터에게 뭐라고 말한 거야?” 나는 메뉴판을 살피고 있는 그녀에게 물었다.

“비밀이야”라고 그녀는 말했다. 그녀는 메뉴판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달팽이 요리 말고 특별히 먹고 싶은 거라도 있어? 아니면 내가 추천해 줄게. 그걸 먹어봐.”

“알겠어. 뭐라고 적혀있는지도 잘 모르겠어. 전부 프랑스어잖아. 이러니 꼭 애가 된 기분이군. 당신이 엄마 같고.”

“이렇게 젊고 예쁜 엄마가 어딨어? 거기다가 내 가슴과 엉덩이는…”

그녀는 자신의 몸을 한 번 내려다보며 말했다.

“알겠어. 알았다고. 그러니까 가슴과 엉덩이 이야기는 하지 않아도 돼.” 나는 황급히 그녀의 말을 막았다. 그녀가 피식 웃었다.

“그런데 정말로 웨이터에겐 뭐라고 말한 거야? 협박이라도 한 건가?”

“설마 내가 밥 한 끼 먹자고 웨이터를 협박하겠어? 내가 말했었잖아. 여기 메인 주방장이랑 친하다고. 그리고 여긴 프랑스 대사관 직원들이 자주 오는 곳인데 주한 프랑스 대사가 우리 아버지 친구분이기도 해. 덕분에 나도 이곳에 종종 와서 내 돈을 내고는 도저히 사 먹기 힘든 음식도 먹곤 하지. 물론 아버지 친구와 함께 와서. 그래서 그 두 명의 이름을 살짝 말했어. 그것뿐이야.” 그녀는 별 것 아니라는 듯 말했다.

“대단하네. 메인 주방장과는 친하고, 거기다 주한 프랑스 대사가 아버지 친구라니. 그런데 왜 우리 집에서 지내는 거지?”

“당신이 좋으니까. 당신도 달팽이만큼 귀엽거든.”

“귀여운 것도 별로고 달팽이만큼 귀여운 건 더 별로야.”

“당신의 그런 점이 나는 좋아.”


레스토랑은 빈자리가 하나도 없을 정도로 사람으로 꽉 차있었다. 하지만 테이블 간의 간격이 워낙 넓었기 때문에 옆 테이블의 이야기는 들리지 않았다. 그러니까 테이블을 지금의 절반 정도는 더 넣으면 매상도 오르고 장사도 더 잘 될 것 같았다. 하지만 그녀는 이런 나의 말에 웃으며 바보 같다고 했다. 만약 이 식당에 테이블이 더 놓이고 사람이 더 북적이게 된다면 자신은 절대 오지 않을 것이라고. 역시나 프랑스 음식만큼이나 프랑스 레스토랑의 생존 전략은 복잡한 것 같다. 나 같은 사람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무언가가 거기엔 있었다.

나는 포도주 리스트를 살펴봤다. 그나마 나에게 친숙한 것이 와인이었다. 하지만 리스트의 처음부터 끝까지 모조리 살펴봐도 내가 알고 있는 와인의 이름은 보이지 않았다. 대신 발음하기도 어려운 와인의 이름 옆에 어마어마한 가격만이 내 눈에 들어왔다.

“도저히 뭐가 뭔지 모르겠군.” 나는 와인 리스트를 테이블에 내려놓으며 말했다. “와인도 당신이 골라줘. 나는 포기.”

희형이 있으니 뭔가 든든했다. 나 혼자 이런 곳엘 왔다면 분명 얼굴이 벌게져서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을 테니까.

“걱정 마. 조금 있다 주방장이 올 거야. 그럼 그 사람이 추천해주는 걸 먹으면 돼. 사실 나도 프랑스 요리를 잘 아는 건 아니니까. 파리에 있을 때 내가 가장 많이 먹은 음식은 라면이야.” 그녀가 웃으며 말했다.

그녀의 말처럼 2분쯤 뒤에 주방장이 우리 테이블로 왔다. 정말 머리 위에 3층짜리 건물을 올려놓은 것처럼 커다란 모자를 쓰고 있었다. 저렇게 큰 모자를 쓰고 있으면 요리를 하기 불편할 텐데 라는 생각이 들었다. 요리사는 희형을 보더니 가볍게 알은체를 했다.

“오랜만이네. 미리 연락이라도 하고 오지 그랬어. 지금은 한창 바쁠 때라서 주방이 정신이 없어서. 그래도 특별히 너라서 자리를 빼준 거라고.”

“고마워요. 잘 지내는 것 같네.” 희형이 웃으며 말했다. “인사해요. 이쪽은 내가 아까 말했던 파리에서 같은 동네에 살았던 요리사님. 그때 요리 실력은 별로였는데 지금은 이렇게 번듯한 레스토랑의 메인 주방장이라니...” 희형이 놀리듯 키득거리며 말했다.

“누구나 다 숨기고 싶은 과거는 있는 거라고. 예나 지금이나 짓궂은 건 여전하네.” 요리사도 웃으며 말했다. 머리 위의 큰 모자가 살짝 흔들렸다.

“그리고 이쪽은 내 책을 편집해주고 계신 에디터님.”

“반갑습니다. 정말 멋진 레스토랑이네요.” 나는 일어서서 악수를 청했다. 요리사의 손을 잡아보니 그제야 이 사람이 정말 요리사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요리사의 손은 정직하다. 그의 투박한 손을 잡자 참 정적하게 삶을 살아온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반갑습니다. 녀석처럼 괴팍한 작가의 책을 편집하느라 수고가 많으십니다.” 요리사는 크게 웃으며 말했다. “그런데 이 분의 과거는 뭐 없는 거야? 나처럼 예전엔 끔찍이 요리를 못했다던가 그런 거. 이거 나만 창피한 모습을 보여버린 것 같아서 부끄럽다고.” 요리사는 희형에게 말했다.

“이 사람? 글쎄. 지금 막 알을 깨고 나온 사람이야. 모든 게 처음인 사람. 오늘 프랑스 요리도 처음 먹 오보는 거니까 제대로 된 요리를 추천해줘요.”

나는 희형의 말에 헛기침을 하며 얼굴이 붉어졌다.

“알겠어. 특별히 네 부탁이니까 오늘은 오랜만에 내가 직접 요리를 해야겠다. 특별히 못 먹는 음식은 없죠?” 요리사는 나와 희형을 번갈아 바라보며 말했다. 우리 둘은 고개를 저으며 없다고 말했다.

“좋아. 그럼 아무 걱정 말고 나오는 음식을 차근차근 맛있게 먹기만 하면 돼. 천천히 저녁을 즐기라고.” 요리사는 싱긋 웃으며 말했다.

“고마워요”라고 희형이 말했다. 나도 웃으며 살짝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좋은 사람 같아.”

“세상에 좋지 않은 사람은 없어. 불행히도 나와 좋지 않은 관계를 맺게 된 사람만 있을 뿐이지.”

“그런 것 같네. 좋지 않은 관계가 있을 뿐이지 나쁜 사람은 없을지도. 그럼 나도 좋은 사람인 건가?

“당연하지. 당신도 나도. 그리고 저 요리사도.”

희형과 내가 이야기하고 있는 사이에 조금만 잔에 술이 한 잔 나왔다.

“프랑스 요리는 처음부터 바로 술을 마시면서 시작되는 거야?” 내가 잔을 유심히 살피며 물었다.

“아페르 티프야. 식전에 마시는 가벼운 술. 가볍게 입을 헹구는 정도라고 생각하면 돼. 취할 정도로 독하진 않으니까 걱정하지 말고.”

역시나 프랑스 요리는 생각만큼이나 복잡했다.

이후에 이어서 나오는 어뮤즈 부쉐, 앙뜨레, 푸아송, 비앙드, 프로마쥬, 데세르, 디제스 티프와 마지막 커피까지 계속해서 테이블이 새롭게 세팅되고 그릇과 음식이 바뀌면서 우리의 식사는 2시간이 넘게 이어졌다. 음식이 나올 때마다 희형은 친절하게 설명해 주었다. 물론 내가 정확하게 이해하지는 못했지만 말이다. 매일 저녁을 이렇게 먹어야 한다면 나는 꽤나 피곤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외워야 할 것도 많고 사용해야 할 포크도 각기 제각기 달랐으니 말이다. 그것들을 구분하는 건 여간 쉽지가 않을 것이다. 더군다나 나처럼 기본적으로 식사는 배를 채우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단순한 사람에겐 더더욱 말이다.

“프랑스에서도 매일 저녁을 이런 식으로 먹는 건 아니겠지?” 나는 커피잔을 만지작 거리며 말했다. “정말 두 시간 동안 쉬지 않고 계속해서 먹은 것 같아. 물론 양이 많은 건 아니었는데 뭐랄까, 긴 추리 소설을 읽는 듯한 기분이었어. 다음엔 무슨 요리가 나오지? 혼자 예측하면서 먹는 재미가 있네.”

“모든 사람이 매일 저녁을 이렇게 먹는다면 프랑스는 아마 망하고 말 거야. 그리고 나는 글 쓰는 걸 그만두고 얼른 레스토랑을 하나 차려야겠지. 매일 이렇게 먹을 순 없지만 그래도 한국처럼 마주 앉아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밥만 먹진 않아. 프랑스 사람들은 함께 밥을 먹는 걸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하거든. 주로 가족이나 친한 친구, 애인들이랑 이렇게 먹는 거지.”

“아무튼 고마워. 프랑스 요리도 처음이었고, 이렇게 긴 식사도 처음이었어.” 나는 희형이 정말로 고마웠다.

“당신은 왜 그렇게 처음인 게 많은 거야?”

“글쎄... 지금껏 아무것도 하려 하지 않으며 살아왔으니까. 그래서 처음인 게 많을걸 지도 몰라.”

“아무것도 하려 하지 않았다.”라고 그녀는 말했다. “괜찮아. 지금부터 하나씩 해나가면 되는 거지. 프랑스 요리를 먹어봤으니까 이제 이탈리아 요리도 먹어보고 그리스 요리도 먹어보고.”

“이탈리아나 그리스 음식도 프랑스 음식처럼 복잡한가?”

“아니. 세상에서 제일 복잡한 음식은 당연히 프랑스 음식이지.” 그녀가 엄지손가락을 세우며 말했다. 레스토랑에는 여전히 사람들이 많았고 각자 행복해 보이는 표정으로 식사를 하거나 와인을 마시고 있었다. 식사를 다 마친 우리는 담백한 백포도주를 한 병 더 시켰다.

“아주 멋진 가게야. 음식도 맛있고”라고 내가 말했다. “고마워. 이런 곳엘 데려와줘서. 당신이 아니었다면 아마 평생 프랑스 요리를 못 먹어봤을지도 몰라.”

“나중에 파리에 놀러와. 그럼 더 멋진 식당엘 데려가 줄 테니까.”

“파리엔 언제 돌아가는 거야?”

“글쎄. 아직은 잘 모르겠어. 그래도 이제 한국에서 일도 다 마무리된 것 같으니까 다시 돌아가긴 해야겠지.”

“당신이 있고 싶을 때까지 우리 집에 머물러도 괜찮아.”

“그러다가 내가 평생 얹혀살려면 어쩌려고 그래?”

“뭐 그것도 나쁘진 않아.”

“정말?” 하고 그녀는 말했다. “아마 얼마 지나지 않아 나를 내 쫒고 싶어 질걸?”

“그렇지 않아.” 내가 말했다.

우리에게도 분명 끝이 다가오고 있었다.

우리의 시작은 서로가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예고 없이 시작되었지만 그 끝은 아니었다. 처음 시작의 몫까지 다 받아내겠다는 듯이 정확하고 무겁게 인식되었다.

나는 어떤 식으로 말을 꺼내야 할지 몰랐다. 담배를 피우고 싶었지만 식당 안에서 담배를 피울 수는 없었다.

“내가 프랑스로 돌아가고 나면 많이 아쉬울 것 같아?” 역시나 항상 문제의 본질에 한 발 앞서 가는 건 그녀였다. “아마도. 많이 아쉬울 거야. 어쩌면 당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이.”

나는 주머니 안의 담뱃갑을 만지작 거리며 말했다. 할 수만 있다면 그녀를 붙잡고 싶었다. 하지만 그녀가 돌아가야만 한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파리에 있는 그녀가 훨씬 더 행복하리라는 것도.

“꼭 파리로 당신을 찾아갈게.” 하고 나는 또박또박 말했다.

그녀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고 와인을 한 모금 마셨다.

“고마워.” 한참 있다가 그녀가 말했다.

“나도 고마워.”

우리는 한동안 말없이 와인을 마저 마셨다. 깔끔한 옷차림의 웨이터는 커다란 접시에 예쁘게 올려져 있는 치즈를 가지고 왔다. 주방장님께서 특별히 주시는 거라며.

“당신은 이제 좀 더 행복해질 거야.” 그녀는 말했다. “삶을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첫걸음을 이제 뗀 거지. 그건 누가 가르쳐 준다고 해서 알 수 있는 건 아니야. 당신도 지금까지 그걸 모르고 살아왔을 테고. 하지만 이제 당신은 그걸 알았어. 그건 누구의 도움도 아니고 당신 스스로 얻어낸 것이고 이제 그건 완벽하게 당신 거야.”

“하지만 나는 아직 잘 모르겠는걸.”

“아니. 당신은 분명 느끼고 있을 거야. 구체적인 정경은 아니라 하더라도 어렴풋이나마.”

“그게 맞다면 분명 당신 도움이 커.”

나는 그녀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녀도 나를 바라봤다. 우리는 서로를 향해 살며시 웃었다.


이렇게 해서, 우리의 한 달여간의 동거는 처음이자 마지막 외식으로 끝이 났다.

식사가 끝나고 그녀는 잠시 들를 때가 있다며 식당 앞에서 나와 헤어졌고 다시는 집으로 돌아오지 않았다. 집 안 어디를 찾아봐도 그녀의 흔적은 없었다. 화장품도, 칫솔도, 그녀의 속옷도. 애초에 내가 그녀와 함께 살았었는지 의심이 될 정도로 정말 그녀의 어느 것도 남아 있지 않았다. 하지만 확실한 건 한 달 뒤 출판된 그녀의 책이 내 손에 쥐어졌다는 것. 내가 그녀와 함께 살았는지 아니면 그녀의 글과 함께 살았는지 그건 중요한 게 아니다.

나는 그녀의 무언가와 함께 했고, 그것으로 인해 나는 달라졌다.

달라졌다는 게 중요하다. 달라졌다는 건 이제 뭔가 다시 새로운 것을 시작할 수 있다는 이야기니까. 이야기의 끝이라고 생각했던 곳에서 다시금 한 번 더 기회를 얻은 것과 같은 것이다. 그녀 덕에 얻은 것이니 더 열심히 해야 한다. 지금까지 해왔던 것보다 더.


적어도 당신과의 이별은 불현듯이 아니라서 좋아.

정말 고마웠어.

잘 가요.

엄마…



가르치고, 여행을 하고, 사람을 만나고, 글을 씁니다.
저서로는 “첫날을 무사했어요” 와 “버텨요, 청춘”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