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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tella Feb 05. 2022

조증의 나날들 :퇴사를 결심하다

10년을 다녔지만

1. 요즘 '조'의 시기가 찾아왔음을 느낀다. 어떻게 아느냐고? 만으로 5년을 앓으면 증상으로 캐치가 된다. 잠이 줄고 뭐든 해낼 수 있을 것 같고 실제로 의욕 과다가 된다. 얼마간 손에 잡히지 않던 원고가 술술 나오는 것만 봐도 조의 기운이 넘쳐남을 알 수 있다.

마감친 지 보름도 안 되어 새 연재 들어가야 하는 이 시점에는 좋은 현상이기도 하다. 음. 이제는 조를 현생에 써먹는 경지에 이르렀다. 이 다음에 닥쳐올 울의 골짜기가 상당히 깊을지언정, 어쨌든.


2. 서론이 길었다. 충동이 강해져서일까. 지지부진하게 끌어온 퇴사 문제를 매듭짓고 싶어졌다. 10년 다닌 안정적인 직장, 가시적인 트러블은 '현재는 없다' 그러나 아주 오랜 시간 은은하게 목을 옭죄는 올무처럼 회사는 내 영혼을 압박했으며, 난 늘 맞지 않는 옷을 입고 다니는 사람처럼 어색했다.

무엇보다도 감시당하는 분위기가 싫었다. 분야 특성상 '추후에 문제가 될 수 있을 것 같은데'라는 관용구를 달고 다니는 동료들도 싫었고 그 말을 따라하며 그럴싸한 척하는 나의 위장술도 싫었다. 내 딴에는 힘에 부치는 일뿐이었다, 진심으로. 그리고 많이 두려웠다.

아마도 이것은 수년 전 회사에서 겪은 중차대한 트라우마 때문이리라. 여기 다 밝힐 순 없겠지만 그때부터 나는 내 자신이 하는 일을 못 믿게 됐다. 내가 누르는 버튼 하나하나가 나중에 어떤 폭탄이 되어 돌아올까 무서워 일을 할 수 없었고 그때 처음으로 불안, 적응장애, 양극성 진단을 받았다. 가끔은 상세불명의 우울에피소드도 나온다.

결론은 이제 그 불안감과, 보이지 않는 감시 그리고 내게 맞지 않는 옷을 입고 서먹한 패션쇼를 벌이는 일을 그만두려 한다. 이건 조증의 충동이자 약 6개월을 끌어온 조와 울의 타협이기도 하다.


3.남들 보기엔 손색이 없는 일자리다. 실제로 10년을 다녀 보니 급여가 꽤 올라 대기업만큼은 아니라도 실수령이 제법이다. 확실히 글로 버는 돈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만큼 안정적이기도 하다.

무엇보다도 동료들이 좋았다. 다 나보다 훌륭했고, 선량했고, 함께 있으면 내가 평범한 사람이 된 것 같아 너무 좋았다. 도움을 주고받고 축하와 위로를 건넸던 몇몇 순간은 오래오래 잊히지 않을 것이다. 내가 끝까지 퇴사를 망설인 단 하나의 이유. 사람들.


4.나는 늘 완결부에 힘을 싣는 편이다. 내 소설 속 주인공들이 행복해지는 모습을 보기 위해 최상의 결말을 고심하고 또 고심한다. 그리고 끝내 마지막 문장이 왔을 때, 많이 운다. 이번에도 그럴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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