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배워갑니다.

놀이터에서 든 생각

by 꼬메뜨

아이를 키우는 엄마가 되고도 나는 계속 인생 공부를 하고, 성장하고 있다.


아직 어린이집을 다니지 않던 우리 아들이 17개월 정도 되었을 무렵에 썼던 일기장을 보고 떠올렸다. 그때에는 코로나 때문에 일본 집이 아니라 한국을 잠시 피난처 삼아 친정과 시댁을 번갈아 다녔었다. 그 시기에는 또래 친구들과 서로 노는 시기는 아니었고, 또 코로나라서 누군가를 만나기도 참 애매한 시기였다. 아이가 아직 어렸기 때문에 키즈카페보다 집 앞 공원이나 놀이터에서 노는 것만으로도 참 좋아하던, 만족해하던 시절이다. 아이는 아장아장 걷는 시기는 지나 제법 잘 뛰고 오르막 그리고 내리막길을 좋아했다. 또 어떤 때는 계단 올라가기, 내려오기를 참 좋아했다. 그 어떤 것도 17개월의 아기의 발걸음은 당당하면서도 아슬아슬했고, 아이가 넘어질까 봐 조바심 내는 나는 단 한시도 눈을 뗄 수 없는 어미 새였다.


그때의 나와 아이는 일본 입국을 계속 미루면서 시댁과 친정을 번갈아 생활하고 있었는데, 생활환경이 계속 바뀌고 있는 게 아들에게 미안하면서도 그나마 좋다고 느끼는 건 여러 놀이터를 경험할 수 있는 것이었다. 여러 놀이터에서 만난 여러 사람의 육아하는 모습, 그리고 아이들을 보는 것 또한 나에게는 큰 의미였다.


엄마가 있는 천안에서 있었던 일이다.


더운 여름을 지나 가을이 되니 낮에 나가도 덥지 않아 한동안은 한낮에 나가곤 했다. 그날은 아들의 낮잠 타이밍이 평소와 달라 오랜만에 해 질 녘에 놀이터에 가게 되었다. 오렌지 빛으로 물들어가는 하늘과 함께 어린이집이나 유치원 하원 시간인 건지 평소와 다르게 아이들과 같이 온 엄마들이 많았다. 마스크를 잘 끼고 있는 아이들이 많은 걸 보면 만 2~4세 정도의 아이들이었던 것 같다.



같이 놀고 싶은 아이


우리 아들은 아직 내 손을 잡고 다니기 때문에 어디를 가든 함께였다. 한창 까꿍놀이를 좋아해서 큰 미끄럼틀 뒤편에 아들이 숨으면 나는 머리만 빼꼼 하면서 “까꿍!”하는 것만으로도 아들은 활짝 웃으며 좋아했다.


그렇게 시답지 않은 까꿍 놀이를 하고 있는데 우리 아들보다 한 살, 두 살 정도는 많아 보이는 남자아이가 이 까꿍놀이를 같이 하고 싶었나 보다. 계속 우리 아들 뒤나 옆으로 와서 내가 까꿍을 외치면 같이 좋아라 하며 웃었다. 난 아이들이 같이 웃으니 보기 좋아서 그 아이 눈을 맞추면서도 까꿍도 두어 번 해주고 그렇게 놀고 있었는데 아이 엄마처럼 보이는 분이 미안했는지 이리오라며 데려갔다.


아이 엄마는 둘째가 어려서 인지 유모차에 태우고 있었고 첫째보다 어린 우리 아들이 다칠지도 모른다면서 큰애를 데리고 갔다. 아기 다치니까 떨어져서 놀라고 일러주기도 했다. 나는 괜찮다고 말하고 싶었지만 코로나 때문에 신경 쓰여서 그럴 수도 있겠다 싶어 말리지 않았다.


까꿍놀이가 질렸는지 이제는 나를 밀쳐내면서 도망가라고 하는 나의 작은 새. 나는 열심히 뛰는 척하면서 슬근슬근 뛰어가고 아들이 잡으러 막 뛰어온다. 그 모습을 보았는지 좀 전의 그 아이가 나를 잡으러 뛰어온다. 아직 뛰는 게 불안 불안한 우리 아들에 비해 날쌘 그 아이와 하마터면 부딪힐뻔한 순간, 아이 엄마가 다시 와서 데리고 간다.


(남자아이 엄마) 엄마 옆에서 놀아.
(남자아이) 엄마는 아가랑 놀잖아~ 나도 같이 뛰어놀고 싶은데!


아, 결코 듣고 싶어서 들은 게 아니라 들렸을 뿐이다. 내 아들도 아닌데 순간적으로 눈물이 핑 돌았다. 그 엄마가 머쓱해할 거 같아 얼른 자리를 피했다.


우리 부부도 둘째를 계획하고 있었던 시기였기에 정말 남일 같지 않은 순간이었다. 둘째가 태어나도 우리 아들은 아직 아가인데, 같이 뛰어놀아줘야 하는데. 더 어린 아기를 유모차에 태우고 같이 나갈 수는 있겠지만 내가 계속 옆에서 같이 놀아줄 수는 없고 그저 눈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는 상황이 올 수도 있겠구나 싶었다. 그런 상상이 눈앞에 펼쳐지니 순간적으로 미리 아이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용기가 더 필요한 아이


그렇게 한순간 좋은 공부를 했다고 생각하며 옆으로 이동해 아들과 놀고 있었다. 요즘 놀이터에는 작은 언덕을 만들어 놓은 곳이 많은 듯하다. 우리 아들은 완만한 경사보다 급경사를 오르고 내리기를 반복하는 걸 더 좋아한다. 작은 언덕 쪽으로 이동하며 손을 잡고 오르락내리락하고 있는데 이번에는 조금 더 큰 여자애가 엄마랑 같이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게 들렸다.


(여자아이 엄마) 애들이랑 같이 놀려고 나왔잖아. 여기서 혼자 놀 거면 집에서 놀지 왜 나왔어.
애들이랑 같이 놀아야지. 같이 놀자고 해봐.
(여자아이)...


또 한 번 이런 일도 있을 수 있겠구나 싶었다. 어울려서 놀고는 싶겠지만 어떻게 어울려야 할지 그저 막막해서 말을 못 하고 다가서지 못하는 아이도 분명히 있다.


아직 어린이집도 다니지 않던 만 1살 때까지 우리 아들은 또래 친구들과 어울린 경험이 별로 없다. 가끔 만나는 친구의 딸이 아들과 동갑이라 같이 잘 놀면 좋겠는데 만 1세는 아직 친구를 사귀기에는 이른 나이인가 보다. 아직은 자기들끼리 노는 걸 좋아하고 나나 친구도 아직은 이럴 때지 뭐 싶었다. 하지만 만 3세가 지나면서 친구들과 노는 게 익숙해지는 시기에 부끄러워서, 어떻게 말을 걸어야 할지 모르겠어서, 그게 어려워서 가까워지지 못하는 아이가 내 아이라면 나는 도대체 어떤 반응을 보여야 하는 걸까.


그렇게해서 내린 결론은, 육아는 너무 어렵다는 것이다.


나와 다른 인격체가 나의 한마디 한마디가 쌓여 새로운 인격체가 되고, 나는 그걸 존중해줘야 하고, 조금이라도 올바른 길로 안내할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한다는 사명감? 운명? 절대적인 것? 그런 것들을 무겁게 생각해 보는 날이었다.


몇 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공부하는 자세로 아이들을 바라보려고 노력해 본다. 하지만 물론 한두 번으로는 들어주지 않고, 도대체 엄마 말이 들리는 건지 안 들리는 건지 모르겠고, 그래서 답답한 마음에 큰 소리를 꽥 지르는 날도 생겼다. 내 생각과는 다르게 움직이는 아이들은 어쩌면 당연한 건데, 종종 그 생각을 까맣게 잊어버린다. 문득 예전 일기를 보고 나니 조금 더 참아야 하는 것인가 라는 생각도 든다.


완벽한 엄마가 될 수 없다는 걸 알고 있으면서도 여러 생각이 들 수밖에 없다. 그렇게 매일 육아 공부하는 엄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