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아이가 너무 예뻐서 지금의 마음을 써 보기.
아이와 함께 살아가는 일상은 상상 이상으로 행복한 날들의 연속이다.
일을 하다가도 아이의 사진을 한번 보기 시작하면 시간 가는 줄을 모른다. 특히나 지금 보다 어릴 때의 사진이 더 그렇다.
신생아 시절은 쭈굴쭈굴한데도 사랑스럽고, 2개월쯤에는 볼살이 통통하게 올라서 사랑스럽고, 4개월 때는 뒤집으려고 애쓰는 모습이 사랑스럽다. 내 다리 위에서 자기 방귀 소리에 놀라 악을 쓰면서 우는 모습이 사랑스럽고, 소리 나는 딸랑이 인형을 잡으러 가고 싶은데 앞으로 기어 가지 못 하는 모습이 사랑스럽다. 처음 맛보는 떡뻥을 침 범벅으로 손에 묻혀가면서 먹는 모습이 사랑스럽고, 처음 먹는 소면을 옷에 따닥따딱 붙여가면서 쫍쫍 빨아먹는 모습이 사랑스럽다. 뒤뚱거리면서 나에게 다가오려고 한 발자국씩 내미는 모습이 사랑스럽고, 엄마!라고 소리치면서 놀이터에서 반짝이는 땀과 반짝이는 눈빛으로 나에게 달려오는 모습이 사랑스럽다.
아이의 성장 과정을 돌이켜보면 그 사이에 나 또한 성장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특히 둘째 아이를 키우면서 나 또한 "엄마"라는 역할을 하면서 성장을 하고 있구나라는 걸 느낄 수 있다. 첫째 아이 때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폭풍 검색을 하고, 이래도 되는 걸까?라고 고민하던 순간들이 많았는데, 둘째 때는 이러면 되겠지, 대충 이 정도면 되지 하고 넘어가는 일이 많았다. 열이 나도 첫째 때는 응급실을 가야 하나 고민하던 일들이 있었는데, 둘째 때는 해열제를 일단 먹여놓고, 상황을 보자는 약간의 마음의 여유도 생겼다.
언제 이렇게 컸는지, 만 6살인 이제는 내년에 학교 갈 준비를 하는 큰 아이는 내 걱정을 하기도 한다. 여름휴가 때 염좌로 발목을 다친 나는, 일본의 협소주택에 살면서 계단을 오르락내리락거릴 때마다 발목이 아파서 한동안 고생을 했다. 파스를 붙이고, 또 바르는 파스를 바르는걸 아이가 자주 봐서인지, 종종 내 발의 상태를 묻곤 한다. 혹시라도 다리의 어느 부분이 자신과 닿았다는 걸 느끼면, "엄마 발 괜찮아?" 하고 물어보기도 한다. 평소에 내가 그리고 남편이 했던 말 한마디, 한마디를 아이는 잘 기억하고 있다가 아주 적절하게 써먹고 있다. 아이의 그런 모습을 알아차리는 순간에 피어오르는 일상의 행복을 요즘 아주 잘 느끼면서 살아가고 있다.
한국이 아닌 타지에서 살아서인지 아이의 말투에서 더 그렇게 느끼는 듯하다. 아이는 자연스럽게 한국어와 일본어 두 가지를 이용할 수 있는 바이링구얼이 되었는데, 한국어는 오롯이 엄마와 아빠에게서 배우고 일본어는 만 1살 때부터 다닌 보육원의 선생님들에게서 배웠다. 집에서는 특별히 일본어 교육을 하지 않고, 그저 책을 읽어주는 정도였다. 초기 일본어는 보육원 선생님에게서 배우고, 만 3,4살 정도 때부터 친구들과 대화를 하면서 익혀 나갔을 것이라고 느낀다.
그래서인지 일본어로 이야기할 때는 누가 봐도 장난기 많은 요 또래의 남자아이인데, 한국어로 말할 때는 조금 어른스럽게 느껴질 때가 있다. 아마도 엄마, 아빠의 말을 따라 배워서인 게 아닐까 싶다. 한국어로 또래 친구와 이야기하는 일이 많았다면, 일본어를 말할 때와 비슷하지 않았을까 추측해 본다.
이 아이의 성장 과정을 볼 수록 나도 엄마라는 역할을 시작하면서 성장을 하고 있음을 느낀다. 내가 약 41년을 살아오면서 가장 행복한 시간이 아이와 함께 하는 시간이 아니었을까 생각해 본다. 그래서인지 문득 지난날의 나의 어린 시절과 겹쳐 보이는 순간에는 눈물이 나기도 한다. 왜 나의 엄마, 아빠는 나에게 이런 사랑을 보여주지 못한 걸까 라는 아쉬움과 그런 어린 시절을 보내지 못한 것에 대한 어린 나에 대한 안타까움이 느껴져서이다.
지금이 너무 행복해서, 과거의 불행한 내가 불쌍해 보일 때도 있다. 모두 지금의 행복이 점점 커지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내가 6살의 기억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지금의 내 아이도 이 시절의 기억이 나이가 들어서까지 오래 기억되는 순간들이 점점 많아질 것이다. 이 아이에게는 나와 다른 행복한 기억들이 더 많기를 소망해 보면서 좋은 엄마의 역할을 더 잘하고 싶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