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 프롤로그 - 사랑이 아니라, 벌받고 있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어요
“김서림 님, 안녕하세요. 가족관계 등록과 김현숙 주무관입니다. 가족관계서 내 김찬수 님의 정보가 변경되어 가족관계서가 갱신되었습니다. 최초 가족관계 변경 계약서에 부/모 사망 시 연락을 희망하셔서 연락드립니다. 상세 내용은 모바일 알림장 또는 아래 연락처로 연락 부탁드립니다.”
“김서림 님, 안녕하세요. 김찬수 님 변호사 한 욱 이라고 합니다. 김찬수 님 사망 관련하여 연락받으셨을 텐데요, 유산 상속 안내를 위해 어머니 되시는 장유선 님과 서림 님 함께 뵙고 내용 전달해 드리려고 합니다. 일정 확인하신 후 저에게 연락 부탁드립니다. 제 명함 함께 전달해 드립니다.”
“김서림 님, 안녕하세요. 저는 [Our next trip]에 소속된 유품 정리사 장광일이라고 합니다. 김찬수 님 유품 정리 절차가 완료되어 연락드립니다. 이번 주 토요일과 일요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10시 사이에 아래 주소지로 오시면 수령 가능합니다. 직접 뵙고 드리는 것이 원칙이긴 하나 부득이한 경우, 퀵 또는 등기 발송도 가능하니 연락 부탁드립니다. “
가족관계서가 갱신되었다. 연말 달력 제작을 위해 거래처 담당자와 통화를 하던 중 그 알림을 받았다. 나는 곧바로 사이트에 접속해 정부 알림장 확인을 눌렀다. 갑작스러운 소식에 놀란 탓인지 글자가 제대로 읽히질 않았다. 갱신 후 20년이라는 시간이 흘렀고, 또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니 믿어지지 않았다. 사무실에 아무도 없던 터라 나는 모니터에 손가락을 대고 한 자 한 자 소리내 읽기 시작했다. 첨부파일로 저장된 가족관계서가 열리는 동안 변호사와 유품 정리사의 메시지가 곧바로 도착했다. 그리고 핸드폰이 아닌 사무실 전화기에 뜬 엄마의 전화번호를 본 순간 둔한 머리에 찬 물이 끼얹힌 듯 앞이 명확해졌다.
“서림이니?”
“응.”
“네 아빠, 죽은 거 연락받았어?”
“받았어.”
“서림아, 난 그 인간 돈도 유품도 필요 없어. 유품도 이미 안 받겠다고 얘기했어. 뭐, 네가 받고 싶다면, 나한테 남긴 것도 가져가도 괜찮아.”
“엄마도 급했네. 사무실로 전화를 다 하고. 그런데 변호사는 같이 만나야 하지 않을까?
엄마의 말이 가시 같았다. ‘죽은 거. 필요 없어. 안 받겠다고. 네가 받고 싶다면.’ 벌써 20년도 전에 헤어진 사람인데 엄마는 자신에게 박힌 가시를 아직도 빼지 못하고 있다. 엄마는 수 분간 대답이 없었고 나는 창가에 놓인 마른 선인장 쪽으로 의자를 돌렸다. 나의 동거인, 성은주가 지난여름에 동네 플리마켓에서 사다 준 선인장이었다. 검지로 그 가시를 눌렀다가 뗐다. 뭉툭해진 끝은 생각보다 아프지 않았다.
“그것도 싫어? 위임장 쓰니 어쩌니 하느니 그냥 한 번에 처리하는 게 엄마도 편하잖아.”
“아, 뭐 알았어. 언제가 좋은데?”
“유품 수령이 주말이니까, 토요일 오전 어때? 변호사 만나고 바로 가게.”
“알았어. 변호사 사무실로 바로 와.”
내가 일곱 살 때, 아빠가 내 방 침대에서 어떤 여자와 잠들어 있는 걸 보았다. 나는 아빠를 깨울까 봐 발끝을 세우고 조심조심 안으로 들어가 그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 곧 어버이날이라 유치원에서 카네이션을 그릴 거라고 했다. 서랍에 있는 스케치북과 색연필을 꺼내던 중 거실의 전화기가 울려 서둘러 그것들을 가슴에 안고 방 밖으로 나왔다. 내가 나올 때까지 아빠는 엄마랑 잘 때처럼 작게 코를 골고 있었다. 수화기 너머의 엄마는 오늘도 야근을 해야 한다고 아빠가 돌아오면 저녁은 먹고 싶은 걸로 배달시켜 먹으라고 했다.
“그런데, 엄마. 아빠 집에 있어.”
“뭐? 퇴근 시간도 아닌데 왜 집이야? 바꿔 봐.”
“아빠 자.”
“자? 아빠 아프대?”
내가 우물쭈물하며 답하지 못하자 엄마는 내 이름을 부르며 채근하기 시작했다.
“어떤 아줌마랑 내 방에서 자고 있어.”
“…… 뭐? 서림아, 너 뭐라고 했어? 그런 장난치는 거 아니야. …… 아빠 바꿔봐.”
“잠깐만.”
나는 전화기를 들고 방으로 들어가 아빠의 귀에 갖다 댔다.
“아빠, 엄마 전화 왔는데. 아빠! 아빠!”
아빠의 짧은 속눈썹이 파르르 떨리다가, 곧 미간에 주름이 생겼다가 순식간에 넓게 펴졌다. 아빠가 벌떡 일어나 앉자 등을 대고 잠들어있던 여자도 용수철처럼 튀어 오르더니 나와 아빠의 뒤통수를 이어 보다가 바닥에 있던 옷가지들을 부리나케 챙겨 거실로 나갔다. 그 속도는 엄마가 아파트 입구에 도착했다는 전화를 받고 거실에 늘어져 있던 장난감들을 정리함에 아무렇게나 쑤셔 넣을 때와 같았다. 이불에 눌렸는지 달려나가는 여자의 허벅지 뒤쪽에 길게 줄이 그어져 있었다.
“어, 여보.”
“당신 왜 집에 있어? 서림이가 자기 방에서 아빠가 어떤 아줌마랑 잔다는데 무슨 소리야?”
“서림이가? 무슨 소리야. 난 안방에서 자고 있었는데? 서림아! 엄마 오해하잖아. 여보, 나 몸이 안 좋아서 반차 냈어.”
“알았어. 서림이 바꿔줘.”
“서림이는 왜? 당신 오늘 늦어?”
“바꾸라고!”
아빠는 전화기를 내게 건네고 나서 내 어깨를 붙잡았다. 그리고 손가락을 입술에 대고 ‘쉬’라고 속삭였다.
나는 거짓말을 하는 아이가 아니었다. 잘못했으면 반성해야한다고, 엄마가 누누이 얘기했다. 그게 엄마나 아빠인 경우도 해당하는지 아닌지 몰랐지만.
“응, 엄마.”
“서림아, 엄마가 거짓말하는 거 얼마나 싫어하는지 알지?”
“응.”
“아빠가 아줌마랑 어디서 자고 있었다고?”
“내 방.”
‘서림아!’ 아빠는 큰 소리를 내며 내게서 전화기를 뺏어갔다. 수화기 너머 엄마의 목소리가 들렸다.
“이 개새끼, 너 거기 그대로 있어!”
그날 경찰관 여럿이 집으로 왔다. 텔레비전이 부서지고 가족 액자의 프레임이 찌그러지고, 베란다에 던져진 화병이 아직 활짝 피지 못한 꽃을 토해낸 채였다. 엄마는 내가 누구 때문에 이 고생이냐고 소리를 지르고, 아빠는 이게 다 나 때문이라고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입 싼 년, 제 엄마랑 똑같은 게!”
“미친 새끼, 입 쳐 닫아라, 아주 찢어발겨 주기 전에!”
‘아, 두 분 좀 조용히 해 주세요! 애는 무슨 죄라고, 매번 이러십니까!’ 여자 경찰관은 내 손을 붙잡고 있었다. 쌍방 폭행이었다. 엄마는 아빠의 약점인 머리카락을 한 움큼 뜯어 놓았고, 아빠는 엄마의 뺨을 올려붙였다. 서로 물고 할퀴고 욕을 내지르는 풍경은 익숙했다. 내가 기억하는 시점에서부터 두 사람은 이렇게 누군가 개입해야 싸움을 끝냈다. 나는 엄마와 경찰차에 올랐다. 엄마는 가는 내내 서럽게 울었고, 나는 경찰차의 천장을 보며 거짓말하는 법을 배우는 게 좋을 것 같다고 생각을 했다.
결국 카네이션은 그리지도 못했고, 그해 유치원도 제대로 다니지 못했다. 초등학교 입학식 때, 당연하게 엄마만 참석했다.
아빠와 엄마는 헤어지지 못했다. 새롭게 시작한다며 다른 집으로 이사를 갔지만, 나는 내 침대에 올라가지 못했다. 집만 바꼈지 침대와 이불은 그대로였다. 내이불을 둘둘 말고 자던 그 여자가 생각이 나서 엄마 방에 가서 엄마를 끌어안았다. 눈을 감으면 아빠의 눈동자가 커지는 장면이 떠올랐다.
아빠는 나를 배신자라고 생각한 걸까. 그 생각은 때론 짙은 안개처럼, 익숙한 모든 곳의 내음처럼 내 앞에 존재했다. 그러다 내 안에 스며들어 파괴된 곳의 잔해를 밟는 것처럼 계속 찔러대며 잊지 말라고 각인시키고 있었다.
만 19세가 되었을 때, 나는 커피를 찡그리지 않고 마시게 되었고, 술도 마실 수 있게 됐다. 보호자 없이 훌쩍 떠날 수도 있었고 자고 싶은 사람과 잘 수도 있었다. 지난 시절의 나는 다른 의미의 스무 살, 스무 살을 애타게 외쳤다.
면담 시간인 9시보다 앞서 8시 30분에 도착해 현관 앞 자판기 앞에서 커피를 석 잔을 연달아 마셨다.
“김서림 님, 안으로 들어오세요.”
‘주무관 김현숙’ 담당자의 가슴에 달린 명찰을 확인 후, 그녀가 건넨 가족관계 재등록 서류를 손에 쥐고 천천히 읽어 내려갔다.
“사전 등록해 주신 부분은 이미 출력되어 있으니 정확하게 반영되었는지만 확인해주세요.”
“네, 다 확인했어요. 수정할 부분은 없어요.”
“알고 계시겠지만 가족관계서 갱신 후 수정은 불가합니다. 김서림 님은 부모 유지 항목에 ‘아니요’로 체크하셨습니다. 맞습니까?”
“네.”
“마지막 항목은 사전 체크 대상이 아니어서 확인 못 하셨을 텐데, 1항목에 부모님 사망 시 연락을 받으실지 체크해주세요. 2항목은 동거인 지정을 하실 건지 체크해 주세요.”
“1항목 연락 받겠습니다. 2항목은 추후 등록 하겠습니다.”
“좋습니다. 김서림님은 이제 부모 부양 의무가 ‘해당 없음’으로 변경됩니다. 당연히 상속도 ‘해당 없음’으로 변경되나 부모님 사망 전 유언 내용에 따라 유산 상속권자에 해당 한다면 이후 절차는 변호사와 상의하시면 됩니다.”
“네, 알겠습니다.”
“지금 처리 진행하겠습니다. 서류가 갱신되면 알림장으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 서류는 별 건인데, 재등록 사유에 대해 국가에서 정보를 수집하고 있습니다. 불편하시다면 굳이 참여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네, 알겠습니다.”
“지금 처리 진행하겠습니다. 서류가 갱신되면 알림장으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 서류는 별 건인데, 재등록 사유에 대해 국가에서 정보를 수집하고 있습니다. 불편하시다면 굳이 참여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내 앞에 A5 크기의 설문지가 놓였다. 그녀는 수없이 해온 이 업무가 익숙하다 못해 지루해 보였다. 책상 옆 가습기에서는 최고 단계로 가습이 분무 되고 있었고, 라디오 볼륨을 최대한 작게 틀어놓은 건지 DJ의 목소리가 귀에 거슬리는 소음처럼 들렸다. 나는 오래 닦지 않은 듯한 창을 보며 오른손 검지와 중지로 왼손 검지를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아래 모든 항목은 단답형으로, 자필로 기재 해주세요.
1. 재등록에 영향을 끼친 결정적 사유
2. 가정환경
3, 부모의 직업
4. 부모의 교육 수준
5. 가정 내 폭력, 학교 폭력 또는 기타 사유로 특별 조처되거나, 보호 프로그램에 등록된 적이 있나요(있다면 5-1항으로)
나는 ‘자발적으로 참여합니다’에 체크하고 1항에 답을 쓰기 시작했다.
‘가정불화(아버지의 잦은 외도)’
내가 중얼거리며 답을 쓰자 그녀는 의자를 앞으로 끌어당긴 후 모니터 앞에 둔 물컵을 손에 쥐고는 나를 바라보았다.
“보통은 1항 쓰고, 안 할래요 하고 나가시더라고요.”
“그래요? 그럼 시작하질 말지, 종이 아깝게.”
“시작은 했는데, ‘굳이’ 싶은 거겠죠.”
“굳이. 말 되네요. 저도 이 가족 관계를 끝내고 싶을 때 그런 마음이었거든요. 굳이 이 관계를 유지해야 하나.”
“말 되네요.”
그녀는 막 끓인 커피포트의 물을 종이컵에 따랐다. 나는 티백에서 붉은색이 우러나오는 것을 물끄러미 보다가 다시 펜을 들었다.
“저 어렸을 땐 가족관계를 거부한다는 게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이 일을 오래 하다 보니 이해가 되더라고요.”
“주무관님도 혹시 변경하셨나요?”
“아니요, 만약 그러겠다고 했다면 관계서 갱신하기도 전에 땅에 파묻혔을걸요? 제가 5남 2녀 중에 맏이거든요.”
나는 5항에 머물러 있었고 주무관은 서랍에서 액자를 하나 꺼내 내 앞에 들이밀었다. 대가족이 모여 모두 똑같은 옷을 맞춰 입고 똑같은 미소를 띠고 있는 가족사진이었다.
“이미 가족에 파묻혀 계시네요.“
농을 섞은 내 말에 그녀는 자포자기한 듯한 손짓으로 어깨를 으쓱했다.
“작성 다 했습니다.”
“수고하셨어요. 참, 스무 살 생일 축하드립니다.”
나는 볼펜을 제자리에 돌려놓고 옆에 둔 가방을 챙겨 일어났다. 아직 남아 있는 차를 마저 마신 후 종이컵을 쓰레기통에 넣고 그녀에게 목례를 건넸다.
“저는…… 내내, 사랑이 아니라, 벌받고 있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더라고요. 안녕히 계세요.”
밀리의 서재 '밀리 로드' 동시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