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 ‘우리는 지금 눈이 오는 곳’ 뉴욕으로 도망쳤지 (1)
거울을 들여다보면 아버지의 얼굴이 보였다.
급하게 정리한 턱수염과 언제 잘랐는지 모를 머리는 어깨에 닿을 정도였다. 머리를 두 손으로 넘긴 후 약통에 끼워둔 갈색 고무줄을 빼내 질끈 묶었다. 의자에 쌓아둔 양말 더미 가장 위에 있던 검은색 양말 한 켤레를 집어 신고, 벽 옷걸이에서 검은색 양복 재킷을 집어 어깨에 걸쳤다. 서랍에서 지갑을 꺼내 얼마가 있는지 확인한 후 지갑은 바지 뒷주머니에 넣고 카드 지갑에 카드를 넣은 후 재킷에 넣었다. 거실로 나와 벽난로 위의 액자에 앉은 먼지를 손수건으로 대충 털어 주었다. 포커로 벽난로 안쪽을 확인 후 문을 닫은 후 신발을 갈아신으며 집안 풍경을 눈에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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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llo, Yong. I just heard about your father, and I’m so sorry for your loss. I'm here if you need anything. …… Have a safe trip to Korea, and please text me as soon as you get back. And I…….
(성용, 방금 아버님의 부고 소식을 들었어. 마음이 너무 아프다. 내 도움이 필요하다면 뭐든 말해. 한국에 잘 다녀오길 바라고, 돌아오는 대로 문자 보내 줘. 그리고…….)]
다음 말을 하지 않고 있던, 그 침묵을 견디다 못해 나는 문고리를 잡았다. 순간 전화가 끊겼다.
I will miss you, too. (나도 보고 싶을 거야)
눈이 계속 내리고 있었다.
이곳에 처음 왔을 때도 눈이 발목까지 쌓였었다. 택시를 탈 때 신발에 묻은 눈을 터느라, 두 발을 부지런히 종종거리자, 기사님은 괜찮다고 미소 지었다. 엄마는 기사님을 도와 트렁크에 짐을 실었고, 장우산을 접어 쌓인 눈을 털어낸 다음 뒷좌석 발치에 두었다. 엄마는 가야 할 곳을 일러준 뒤 내 머리를 쓰다듬으며 이마에 입을 맞췄고 덜덜 떨고 있는 내 손을 꽉 잡더니 곧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엄마는 손바닥으로 차창을 쓸었다. 가게마다 달린 조명이 눈 쌓인 거리와 사람들의 볼을 슬프게 물들이고 있었다. 라디오에서는 영어로 뭐라고 하는데,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엄마는 창에 ‘New York’라고 쓰고는 나를 돌아보았다. 우리는 ‘지금 눈이 오는 곳’, 뉴욕으로 도망쳤다. 눈이 녹을 새도 없이 또 쌓였던 그때, 나는 길어서 지루하고, 이해할 수 없어 따뜻했던 시간을 보냈다.
아버지를 다시 만난 건 서른 살 생일 때였다. 우리는 센트럴 파크 근처의 식당에서 만나 1시간 정도 앉아 있다가 헤어졌다. 대화를 거의 하지 않아서 그때의 기분은 마치 모르는 사람과 억지로 마주 앉은 느낌이었다. 이따금 상대가 시킨 음식을 힐끗거리고, 상대의 속도에 맞출 뿐이었다. 누가 누구의 속도에 맞추고 있는 것인지는 애매했지만 말이다. 아버지는 ‘네가 태어났을 때랑 지금 네 나이가 같네!’라고 하더니 또 한동안 말이 없었다. 냅킨으로 입가를 닦고 후식으로 나온 커피를 앞에 두고서도 우리는 말이 없었다. 아버지는 각설탕의 포장지를 벗기고 컵 안에 반은 깨물어 먹고, 반은 컵 안에 넣었다. 나는 우리가 같은 행동을 하고 있다는데 적잖은 충격을 받았다. 엄마는 내게 아버지를 닮아 간다고, 그게 너무 싫다고 자주 말했었다. 포장지를 벗긴 설탕을, 나는 손안에 감추고 있다가 휴지에 싸서 호주머니에 넣었다.
“네 엄마는, 잘 지내니?”
“식당에 들어온 지 50분 만에 엄마는 잘 있냐고 물으시는 거예요?”
“…… 그러게. 너는, 너는 어때. 지난 메일에 취직했다고 했었는데.”
지난 메일은 작년 봄에 아버지에게 취직했다고 소식을 전한 거였다. 나는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일은 괜찮아? 월급이 밀리지는 않니? 요즘 경기가 다 안 좋으니까.”
“아직은 괜찮아요. 일도 이제 적응됐고요. 아버지는요? 지난번에 보내왔던 사진에서보다 더 마르셨네요.”
커피에서 탄 맛이 났다. 아버지도 커피가 맛이 없는지 한 모금 마신 뒤에 컵 손잡이를 다시 잡지 않고 있었다.
“나가실래요? 이 근처에…….”
“성용아.”
계산을 위해 내가 손을 들자, 아버지는 내 팔을 붙들었다. 웨이터는 고개를 끄덕인 후 내게 오다가, 곧 아니라는 손짓을 하자 다시 돌아섰다.
“내가 곧 죽어. …… 얼마 안 남았다.”
“…… 뭐라고요?”
“네가 원할지 모르겠지만 너에게 유산을 남겼어. 변호사가 연락할 거야. 그리고 내 유품은 담당자가 알아서 처리할 거지만, 최종 처리일 전에 네가 살펴보고 싶다면 여기, 이 사람에게 연락해.”
내 앞에 [Our next trip] 이라고 프린트된 명함 한 장이 놓였다. 뒷면에는 [유품 정리사 장광일] 이라고 쓰여있고, 아래에 주소, 전화번호, 이메일 정보가 있었다.
“마지막으로 네 얼굴이 보고 싶어서 불쑥 찾아왔어. 시간 뺏어서 미안하구나.”
“이게 지금 무슨…….”
손안에서 구깃구깃해진 명함에, 손바닥에 아직 붙어있던 각설탕 가루가 묻어 반짝였다.
“이게 지금 무슨 짓이에요! 갑자기 찾아와서 죽는다고요?”
여기 있는 아무도 우리의 대화를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휴식 시간을 30분 앞둔 식당에 손님은 몇 없었다. 갑자기 아버지가 일어나 내 앞에 서더니 무릎을 꿇었다.
“내내 사과하고 싶었어. 너에게 상처 준 것, 너를 떠나보낸 것, 너에게 아버지라는 존재를 없애버린 것, 아무것도 모르는 채 어른이 되게 한 것, 모두.”
아버지의 세어버린 머리카락이 눈물과 함께 흔들리고 있었다. 내 신발 위에 손바닥을 대고 아버지는 미안하다고 다시 말했다. 나는 아버지를 일으켜 세운 뒤, 멍하니 우리를 보고 있던 웨이터를 불러 결제를 요청했다. 서명하는 손이 계속 떨리자, 그도 긴장이 되는지 카드 리더기 위를 더 단단히 붙잡았다.
나는 아버지의 등을 돌아 나와 문 쪽으로 걷기 시작했다. 문을 열자, 안으로 들어오는 바람이 매서웠다. 밑단이 넓은 바지 안에 파고드는 바람 때문에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뒤를 돌아보자, 아버지는 여전히 그 자리에 서 있었다.
나는 명함을 다시 한번 구겨 쓰레기통에 던져 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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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성용 님, 안녕하세요. [Our next trip]에 소속된 유품 정리사 장광일입니다. 아버님 유품 정리 최종 기한이 다음 주 주말까지입니다. 혹시 방문하실 의사가 있으실까요. 정리된 유품의 사진과 상세 내용을 이메일로도 전달해 드렸으니 확인 후 회신 또는 저에게 전화 부탁드립니다. 참고로 계약서 세부 사항에 아드님께서 해외 거주 중이라 방문이 어려울 수 있다고 사전에 말씀 주신 바 있어서, 리마인더는 2회만 요청하셨습니다. 이번이 마지막 안내 전화임을 알려 드립니다. 연락 기다리겠습니다]
나는 그 전화를 삭제하면서 코웃음 쳤다. 우리가 뉴욕으로 떠나올 때도, 우리의 잘못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런데 우리는 힘들었고, 아팠고, 그것이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무시하며 살았다.
끝내는, 지워버리려고 했다. 그런데 ‘리마인더 2회만’이라는 말에 그마저도 아버지의 배려가 아닌 이기심이라는 것을 알았다.
결정을 종용하고, 또 나를 흔들고 있었다.
“가서, 보고 와.”
“엄마!”
“이미 죽었잖아. 죽은 사람한테 뭘……. 가서 그 사람이 무슨 말을 하고 싶었는지 듣고 와. 엄마한테 미안해할 거 없어.”
“듣고 싶은 말 없어.”
“들어야 해. 듣고 잊든, 간직하든, 버리든 결정해. 이대로 그냥 살지는 마.”
게이트 앞에 앉아서 엄마의 말을 곱씹었다. ‘이대로 그냥 살지는 마!’ 나는 내가 탈 비행기의 꼬리에 시선을 두었다가 몸을 숙여 무릎에 머리를 파묻었다.
[Ladies and gentlemen, due to heavy snowfall in the New York area, some flights are currently experiencing delays. We kindly ask for your understanding……. (승객 여러분께 안내 말씀드립니다. 현재 뉴욕 지역에 내린 폭설로 인해 일부 항공편이 지연되고 있습니다. 승객 여러분의 너그러운 양해를……)]
To ne continu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