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가족관계서가 갱신되었습니다

03. ‘우리는 지금 눈이 오는 곳’ 뉴욕으로 도망쳤지 (2)

by 제인


유품정리사 장광일은 두꺼운 남색 코트의 첫 번째 단추를 풀고는 서류 가방에서 투명 파일 하나를 꺼냈다. 말랐지만 다부져 보이는 체격이었다. 짧게 다듬은 머리가 그의 얼굴과 잘 어울렸다.


그는 열쇠를 넣어 돌려 문을 넣었다. 오른쪽의 우편함 위는 먼지가 쌓여있고 광고지 여러 장이 꽂혀 있었다. 그는 우편함을 열어 주인이 받지 못한 중요한 편지가 있는지 확인하더니 별것 없다는 표시로 전단들을 모아 반으로 접고는 서류 가방에 넣었다.

잿빛 하늘 저편에 구름도 없이 맑은 하늘이 보였다.


아버지가 지었다는 집은 마치 ‘너를 위해 지었다’라는 말을 하듯 나를 닮아있었다. 낙엽이 마당 한쪽에 쌓여있는 채였고, 잔디는 주인 없는 집이라는 걸 보여주는 듯 제멋대로 자라고 있었다. 나는 선뜻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다시 밖으로 나와 대문 앞에서 담배를 물었다가 내려놓기를 반복했다.

담배를 끊었어도 습관처럼 주머니에 넣고 시늉을 해대는 꼴이 미련 맞아 보인다고 했지만, 나는 미련이 많은 사람이다. 제때 드러내지 못해 끝난 관계에 미련을 두고 꼴사납게 질질 흘리고 다녔다.


혼자 시작하고 혼자 끝내는 것이 누군가의 마음을 얻기 위해 하는 노력보다 덜 아프다는 사실을, 그래서 관계에 크게 노력하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을 아주 어릴 때부터 알았다. 어머니 옆에 다른 사람이 생겼을 때, 어머니는 딱 줄 만큼만 주고받을 만큼만 받았다. 그 마음이 얼만큼인지 자로 잴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어머니의 사랑은 한국에 남아있었고, 자신을 진창에 몰아넣고 빠져나올 노력도 하지 않았다.


“이제 들어가시죠.”


중문을 지나쳐 안으로 들어오자, 이미 깔끔하게 치워진 집안이 보였다. 사람의 온기가 없는 집은 마치 관 속이 이런 느낌일지 쉽게 피부 속을 아리게 했다.

오디오 방은 일층 끝 방에 있었다. 그는 익숙하게 방에 들어가 커튼을 젖히고는 흰색 천으로 덮인 쪽을 가리켰다.


“일부 물품은 집에서 직접 보고 결정하는 게 좋겠다고 하셔서 저희 창고로 옮기진 않았어요.”


흰색 천을 걷자, 기억 속에 남아있던 턴테이블이 선명하게 모습을 드러냈다. 그 옆에는 아버지가 아끼던 오래된 앰프와 나무로 짠 장 있었다.


“LP와 오디오 장비들을 남기셨어요.”


커버가 낡은 LP들이 장에 가지런히 꽂혀있었다. 엄마와 내가 한국을 떠나기 전날 아버지는 차이코프스키의 교향곡 6번 비창을 들려주었다. 그리고 소리가 너무 무섭다고 말하는 나를 끌어안고 ‘이건 슬픔이야. 소리를 삼키고 마음으로 우는 거지’라고 뜻 모를 말을 중얼거렸다.


“마음으로 어떻게 울어?”

“드러내지 않는 거야. 자신만 알게 우는 거야.”

“지금 아빠 마음이 울어?”


아버지는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티셔츠를 늘려 무릎을 덮는 걸 좋아했던 나를 위해 아버지는 똑같은 티셔츠를 두 장씩 사 오곤 했다. 하지 말라고 말리지는 못할망정 돈을 두 배로 내버리는 거냐는 엄마의 힐난에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아버지는 내 늘어난 티셔츠의 끝자락을 잡더니 곧 고개를 숙여 자신의 두 눈을 가렸다. 아버지는 음악과 같이 울고 있었다. 어깨는 들썩이는데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비통함, 참담함, 애통함. 사전에서 그런 부류의 단어 뜻을 찾아보았던 기억이 갑자기 떠올랐다.


장광일은 골똘히 생각에 잠겨있는 나를 불렀다.


“결정하셨나요? 소장하실 건가요?”

“네.”

“알겠습니다. 2층으로 갈게요.”


2층의 거실은 오브제와 가구들이 그대로 있었다. 포장이 씌워진 것들을 보니 새것으로 보였다.


“생일 선물로 매년 가구를 제작하셨더라고요.”


그는 흔들의자의 다리를 가리키며 ‘의자는 다리 안쪽, 서랍장은 장 안쪽에 각인이 있어요’라고 말했다.

나는 그것들도 챙기겠다고 말하고, 이제 볕이 들기 시작한 거실의 한가운데 서서 가구 전시장 같은 그곳의 풍경을 눈에 담았다. 그는 서류를 꺼내 손가락으로 훑어보더니 나머지 유품들은 회사에 보관 중이니 자리를 옮겨 확인하자고 했다.


밖으로 나와 차 트렁크에서 캐리어를 열어 신발주머니를 꺼냈다.


“계실 곳은 정하셨나요?”

“네. 이 근처 호텔요.”


내가 신발을 갈아신는 동안, 장광일은 가방을 뒷좌석에 두고 운전석에 앉아 히터를 조절했다.


“주말에도 고생이 많으시네요.”

“제 경우엔 주로 주말 업무예요. 유품 수령일을 평일로 하면 더더군다나 수령 거부하는 경우가 많기도 하고, 십여 년 넘게 연락도 하지 않다가 갑자기 고인의 유품을 전달하겠다고 연락하면 누구라도 반가워하지 않죠. 사람들은 일상이 흔들리는 걸 두려워하거든요. 어떤 사람들은 사망 알림만 원하지, 다른 건 알고 싶지도 받고 싶지도 않다고 하시는데, 어떤 게 맞다 아니다로 결론 내기엔 어렵죠.”

“그땐 그때고 지금은 지금이라는 사람들도 분명 있겠죠. 스무 살에 그런 결정을 내린다는 것, 너무 섣부른 것이 아닐까요. 열아홉 살과 스무 살, 1년일 뿐인데 자신의 평생을 좌지우지할 결정을 내려야 한다는 거, 공포죠. 부모의 개입 없이 자발적 판단을 한다는 것도 사실 가능한 것인가 의문스럽기도 하고요.”


그는 나를 힐끗 보더니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차는 매끄럽게 우회전했고, 어느 빌딩 안 지하 주차장으로 진입했다.


“군대에 가겠다고??”

“응.”

“왜? 안 가도 되잖아! 너 설마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어서 그래?”

“아버지를 떠나온 거지 한국을 버린 건 아니니까.”

“그냥 솔직히 말해. 그 사람이 보고 싶니? 그래서 군대 핑계 대고 한국에 가겠다는 거야? 널 버린 사람을, 넌 어떻게 그리워야 할 수가 있어! 엄마가 왜 여기에 왔는데! 그 사람 때문에 우리가 여기서 얼마나 힘들었는데!”

“나는? 다 자기 생각만 하잖아. 아빠는 우릴 버렸다, 엄마는 너무 힘들다, 그럼 나는? 나는 무슨 선택을 할 수 있었는데? 그냥 엄마 의견에 영원히 공감하고 엄마 선택에 동조해야 하는 거야? 그럼 나를 이해시켜 봐. 도대체 우리가 왜 떠나 왔는지 이해시켜 보라고!”

“난 못해. 할 수 없어. 그건 못 해.”

“우리 대화는 항상 여기서 나아가질 못해. 내가 엄마 허락을 구하자고 얘기하는 것 같아? 내가 직접 묻고 대답을 듣고 오겠다고. ”

“넌 못 가. 네가 가면 엄마는 죽어버릴 거야.”


엄마는 죽을 수 있는 사람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나는 닫힌 문 앞에서 일주일 넘게 사과했었다. ‘엄마, 죽지 마. 잘못했어. 엄마 죽은 거 아니잖아, 대답 좀 해.’ 그런 말들을 매일 했었다.

어두운 밤, 협탁 위의 조명이 문밖으로 새어 나오는 게 느껴졌다. 엄마는 직접 만든 퀼트 담요를 내 어깨에 둘러주고는 용서하겠다고, 방으로 돌아가라고 했다.


스무 살이 된 사람들은 가족을 유지하냐 마냐 모두 기로에 서 있었다. 그때의 나는 어머니가 그어 준 선에 서서 달릴지 말지, 이 선이 맞는지 아닌지 물어봐야 하는, 뉴욕에 처음 왔을 때 어린 내 모습에서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20층에 자리한 사무실은 상담이 잦은 만큼 한쪽 면이 모두 회의실로 구성되어 있었다. 대기실에서 대기 하는 사람, 별도 상담 창구의 직원들은 오늘이 주말이라는 것이 무색하게 정신없이 말하고 있었다. 나는 ‘유품 수령자 대기실’로 안내받았고, 장광일은 곧 돌아오겠다고 말하고 사라졌다. 대기실에는 이미 세 명이 대기 중이었고 나는 맨 뒷자리로 가 앉았다. 목도리를 풀어 반듯하게 접은 후 무릎 위에 올렸다. 앞에 앉은 단발머리의 여자는 머리가 아픈지 이마를 짚은 채 연신 한숨을 쉬었다. 텀블러에 담아 온 음료를 한 모금 마신 후 주변을 둘러보는 그녀와 눈이 마주쳤는데 어딘지 엄마와 닮은 눈빛에 나도 모르게 고개를 숙이고 말았다. 대기실 안 전광판에 나는 세 번째 수령자로 올라와 있었다. 그녀의 이름은 ‘김*림’으로, 내 앞 순서였다. 첫 번째 대기자가 알림 소리를 듣고 나가자, 대기실에는 둘만 남았다. 나는 정수기 쪽으로 가 종이컵에 냉수와 온수를 섞어 받았다. 진동 소리에 그녀가 카키색 텀블러를 내려놓고 통화 버튼을 눌렀다.


“어, 은주야. …… 아직. 곧 내 차례야. 엄마는 갔어. 넌 어딘데? …… 그래, 괜찮아. 내일 보자.”


그녀가 전화기를 내려놓자마자 코트에 넣어둔 내 핸드폰에서 전화가 울리고 있었다. 엄마였다. 우리에겐 많은 시간이 있었고, 그 사이 내 상실감과 그리움은 엄마에게 덕지덕지 붙어 있었다. 엄마가 한국에 가서 유품을 보라고 한 것도 부정하기만 했던 존재에 대해 이제는 인정하고 싶어서가 아니었을까.


“집에는 다녀왔고, 지금은 사무실에 와 있어요. 식사 잘 챙기셨어요? …… 벤 이요? 고맙네요. 제가 나중에 전화할게요. 너무 늦게 주무시지 마세요. 수령하고 호텔로 가려고요. …… 네, 전화할게요. 그만 끊을게요.”


수화기 너머 엄마가 얼마나 긴장한 상태인지 느껴졌다. 뭘 남겼는지 알려달라는 말을 하면서도 알고 싶지 않은 마음도 느껴졌다. 아버지가 어머니에게 남긴 것은 그런 마음뿐인 걸까.

전광판에 ‘24층 제2 수령실 - 김*림 님’ 이 뜨자 그녀가 벌떡 일어섰다. 차분하게 짐들을 챙겨 나가는 그녀의 뒷모습을 보며 나는 숨을 참고 있던 사람처럼 입을 벌리고 호흡을 뱉었다.


‘24층 제11 수령실 - 지*용 님’ 나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목도리를 가방에 넣고 코트 자락을 정리한 뒤 발목을 돌려 긴장을 풀었다. 밖을 나가 엘리베이터 쪽으로 가자 그녀가 서 있는게 보였다. 내가 다가서자, 그녀는 나를 한번 보더니 곧 도착한 엘리베이터에 먼저 들어갔다. 2 수령실과 11 수령실은 서로 맞은 편에 자리 잡고 있었다. 그녀는 안에 있던 담당자를 따라 들어갔고, 나는 장광일을 따라 11실로 들어갔다. 그는 ‘이건 편지 묶음입니다’라고 하고는 서류봉투 하나를 내게 건넸다.

나는 벽 쪽의 간이 의자에 엉덩이만 걸친 채 앉아 봉투를 열었다.


[성용아, 내일 네가 떠나면 내 남은 평생 아들을 그리워하며 살겠지. 네가 내 선택을 이해해 줄 거로 생각하지. 않는다. 네 엄마에게도 용서받을 수 없는 고통을 주었어. ……]


나는 편지를 한 장 더 넘겼다. 우리의 추억에 대해 써 내려간 편지의 끝에는 […… 형규와 나는 이 생활을 정리하기로 했다. 정리라는 말, 네 엄마는 지독하다고 했지만, 그건 솔직한 내 마음이었어]


형규. 형규……. 그 이름을 곱씹어보았다. 마당에서 구슬 주머니에서 떨어진 구슬들을 줍고 있던 때였다. 아버지는 내 손을 붙잡고, 막 마당을 들어서는 한 남자에게 데리고 갔다.


“성용아, 아빠 친구야. 인사해.”

“안녕. 사진에서 본 것보다 더 똘똘하게 생겼네.”

“안녕하세요. 아저씨는 이름이 뭔데요?”

“아저씨는 한형규 라고 해.”

“한…… 형규. 저는 지성용이에요.”

“알아. 잘 알아.”


마주 보고 선 두 사람을 올려다보았을 때, 나는 묘한 질투를 느꼈다. 아빠의 소맷자락을 붙잡은 그 남자의 손가락이 너무 위태로워 보였다.


To be continued…



밀리의 서재 밀리로드 동시 연재

[가족관계서가 갱신되었습니다]

매거진의 이전글[소설] 가족관계서가 갱신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