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는 가늘고 긴 꿈이 있어 -23

나만 연연하는 그림일기- 언젠가 잘 해내는 나를 상상하며

by 제인


사회 초년생 때 나는 일을 느리게 배우는 편이었다. 실수하는 게 싫어서(실수를 안 할 수 없지만), 최대한 업무에 대해 파악한 후에 처리하는 게 좋았다. 섣부른 일처리와 섣부른 판단과 조언은 실수를 부르기 마련이니까. 그래서 내가 경력자든 아니든 상관없이 새로운 직장에 들어갔다면 3개월까지는 '똥멍청이'라는 자세로 일을 했었다. 6개월까지는 '멍청이', 나머지 반년은 업무의 완성도를 높여가는 똥멍청이와 멍청이를 반복한다.


나는 어딜 가나 일을 타는 사람이어서 내가 들어가는 회사는 지난 몇 년간 별 일이 없다가도 내가 입사하자마자 실사라던지, 계약 건이 늘어난다던지 해서 '님 들어오고 나서부터 일이 많아졌어요'라는 소리를 자주 들었다. 따라서, 각종 이슈 발생률도 증가했고, 그 건들을 타이쿤처럼 하나씩 쳐내다 보니 어느새 일잘러가 되어있었다.


어느 시점에는 일에 눈을 떠서, 팀원의 업무 처리에 실수를 유발할 요소가 있다던지, 나아가 프로세스에 능통하게 되어 타 부서의 부족한 점도 눈에 보이는 순간이 분명히 온다. 이때가 직장생활에서 가장 힘든 순간이다. 지금까지는 '나만 잘하자, 내가 뭐라고'였는데, 이제 남의 것까지 보이기 시작했기 때문에 '안 본 눈을 찾습니다'며 마음으로 도망치고 싶어진다. 내가 거기에 말을 얹는다는 건 관계를 해칠 소지가 된다. 무슨 큰일이 나지 않는 이상, 이제는 말을 아껴야 할 때다.

적합한 인재상은 언제나 '말을 아끼는 자'다. 회사는 일의 결과로 보여주는 것을 좋아하고, '그래, 그 일을 처리하느라 얼마나 뺑이쳤니?'라며 등을 두드려 줄 거라 생각하지 말자.

우리도 그런 말보다는 두둑한 보너스를 좋아하는 것처럼.


믿기 어렵겠지만, 일머리가 있는 사람은 많지 않고, 특히 자기 일 마저도 못하는 사람이 꽤 많다는 사실에 놀라지 말아야 한다.

일 못하는 사람은 다 이유가 있다. 일을 저렇게 못해도 회사에 다니고 있네? 나도 그렇게 해볼까?라는 생각이 든다? 아니, 우리는 좀 더 빠른 은퇴를 위해 일 잘하는 사람으로서 몸값을 높일 필요가 있다.

매년 KPI(핵심성과지표) 지수를 달성했다? 그렇다면 회사 내/외부에서 주목받기 마련이다. 그렇게 쌓은 신뢰는 연봉 협상이나 훗날 이직 시 기존 연봉 대비 얼마라도 높여 훨훨 날아갈 수 있다.




바다 위에 배를 그려 보았다. 거센 파도에서 배는 당연히 멈춰있지 않고, 계속해서 움직인다.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지 이제 3개월 됐는데, 어떤 부분이 부족한 지 보여서 어떤 그림은 그리는 걸 피하게 된다. 취미라는 핑계를 대며 타협하고 있는 것 같아 반성.

IMG_4238.jpeg 배, 바다

가정일, 회사일, 사람 사이 일, 취미로 하는 어떤 것도 '망할!'이라는 마음보다 '그러라 그래, 나를 괴롭게 하는, 지금 내가 잘 못하는 그런 일들이 날 망하게 하진 않아'로 버텨보자.

선을 하나씩 긋다 보면 거센 파도만 마주하는 것이 아니라 하늘도, 새도, 수평선도 웃으며 바라보게 되는 순간이 온다는 걸 잊지 말자.


연습하다 보니 점점 잘하게 됐어요,라는 가슴 벅찬 소감을 전할 날을 상상해 보며.


오늘의 그림일기 끝.